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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blan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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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코네에 다녀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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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지난 월요일 P가 드디어(!) 도쿄에 왔다. 원래는 잘 꼬셔서 홋카이도를 갈까 했으나, 이제 막 와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을게 뻔하니 눈치만 보고 있던 차, 그러나 도쿄에서 8월 한달을 온전히 보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일인 법이다. 결국 가깝고, 계획 세우기 편한 하코네로 낙찰. 3년전 단체로 왔을 때 들렀었지만, 보여주는 곳만 보는 여행이었던지라 여유있게 못본 곳들에 가보고 싶었다. 언제가도 기분좋은 노천 온천이 있는 여관을 넣어서...
2.
하코네는 뭐니 뭐니 해도 시골치곤(사실 전체가 엄청난 규모의 관광 테마 파크란 생각이 들고 있다)교통이 편한데다, 신주쿠에서 오다큐전철을 타고 가면 왕복 요금에 하코네 내부 교통시설을 전부 이용할 수 있는 <하코네 프리패스>라는 걸 이용할 수 있다.
사실 하코네의 큰 재미는 이것 저것 타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 정상까지 여러가지를 바꿔타면서 올라가게 된다. 대강 둘러보자면 우선 기차를 타고 하코네 유모토라는 산밑 마을로 간 뒤, 여기에서 등산열차라는 쬐끄만 열차를 바꿔 타고 산을 오른다. 등산 열차는 비교적 완만한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데, 태백산을 넘는 기차에도 있다는 스위치 백이 있는 기차는 처음이다. 종점인 고라에 오면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보통 케이블카처럼 끈에 달려서 가는게 아니라 내부가 지면과 맞추어 계단식으로 되어서 경사를 올라가는 희안한 교통수단이다. 이걸 타고 소운산에서 내리면 드디어 끈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로프웨이]를 탄다. 로프웨이역 3개를 지나 종점은 하코네의 분화구 호수 아시노코변의 도겐다이. 여기에서 유람선을 타면 하코네의 모든 교통시설 이용 끝. 물론 이 외에 내부지역을 잇는 등산버스도 있다.
이 교통수단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하코네관광은 뛰어난 자연 경치라든지, 문화 유적 보다는 잘 포장된 관광 상품 단지를 감상하러 가는 느낌에 가깝다. 이건 사실 대부분 일본의 관광 명소에서 느껴지는 일이긴 하다. 꺼리만 하나 있으면 포장과 확장을 거쳐 천하의 관광명소로 둔갑을 한다. 볼거리를 대강 보고 숍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그 고장에만 있는' 것들로 가득찬 숍은 사실 제일 큰 관광의 포인트다. 그러고 보면 그 숍에 반드시 있는, 엄청나게 공들인 포장에 맛은 그게 그거인 일본 과자는 정말이지 관광지와 쌍동이다.
하코네는 그러한 일본 관광지 중 최고봉 답게 온 산의 동선을 묶어놓은 길 위에는 오는 사람 심심하지 말라고 수 많은 볼거리를 마련해 놨다. 그 볼거리들이 하코네, 혹은 일본을 이해하는데 직접적 연관이 있을 필요는 없다. 하코네 산자락에 [미술관]내지 [뮤지엄]이름이 붙은 곳은 지도에서 대강 세봐도 18군데. [페라리 박물관][오르골 박물관][어린왕자 뮤지엄][테디베어 뮤지엄]같은, 일본과 관계는 없되 실로 일본스러운 곳을 비롯해 기타 미술관에는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조각공원, 일본 현대화가를 전시하는 미술관에서 도자기를 주로 취급하는 미술관, 심지어 프랑스 인상주의 중심 미술관까지 있다.
이렇게 보면 하코네라는 데의 정체를 묻고 싶어진다. 너는 화산 유원지-자연체험 코스냐? 미술관 집합소냐? 교통기관 전시장이냐? 궁극의 온천여관지냐? 내방객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스펙터클 혹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면 된다는 서비스 정신의 발로인지..적어도 볼거리 없단 소린 못하게 해주마인가, 다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 된다는건가.
3.
그 많은 박물관 중 간 곳은 [유리의 숲 뮤지엄]이랑 [오르골의 작은 뮤지엄]이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그림을 주로 소장한 [아시노코 미술관]도 가볼까 했지만, 그림이란게 있어야할 곳에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다, 도대체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무작정 모으기 콜렉션은 별 매력 없다. (는건 사실 핑계고, 그냥 생각 없이 즐겁고 싶었기 때문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작품 감상할 기분이 아니었다) [조각의 숲]도 땡볕에 조각을 보며 산책할 기분이 들지 않아서 패스.
결국 간 두 곳은 뭔가 감상적/감각적 소녀취향의 집합소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유리의 숲은 <베네치아 글래스>를 전시한다고 해 놓은 집 답게 전체를 베니스 풍으로 꾸며놨다. 18-19세기 골동품 크리스탈과 현대 크리스탈 작품을 전시해 놨고, 당연히 전시장과 맞먹는 크기의 숍을 가지고 있다.
입구에서 본 유리나무와 전시동 건물
왼쪽이 카페. 다리도 베니스를 본땄다.
[오르골 뮤지엄]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종류별로 전시된 오래된 오르골을 돌아가면서 하나씩 연주해 보고..숍에서는 소리 좋은 정밀한 오르골을 팔고 있다. 드뷔시의 [월광]과 [갈색머리 아가씨] 오르골에 그렇게 어울리는 곡일줄 몰랐다. 만엔만 해도 샀을텐데..(둘이 다니다 보면 서로간에 엄청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사재기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참 둘 다 아무것도 안사고 꿋꿋했군..)
4.
여름에 일본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 이벤트라면..뭐니 뭐니 해도 불꽃놀이(하나비)다. 사실 날짜를 잡을 때 아시노코의 불꽃놀이를 고려했다. 하코네 정상의 호수 아시노코에서는 7월부터 8월에 걸쳐 수 많은 하나비 이벤트가 있다. 그리고 8월 6-7일은 중간 규모의 하나비가 있단다. 동경의 수많은 하나비들은 몸싸움이 두려워 못갔지만, 여기라면 여행온김에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여행이란건 사서 고생하는 맛이니, 한가지쯤 고생을 더한들 대수랴. 호반 위의 불꽃이 터지며 하늘과 물이 동시에 물드는 광경을 보는건 분명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이었다.
그러나..산의 변덕을 누가 예측 할 수 있을까. 1시간 일찍 도착해 호숫가 좋은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는 안개가 산을 타고 내리는 장관과 함께 '귀로 즐기는 하나비'라는걸 체험했다--;;안개가 잔뜩낀 호숫가. 한치 앞이 분간 안가는 희뿌연 밤하늘이 퍼퍼벙 하는 소리와 함께 뿌옇게 붉은색, 푸른색으로 멍하니 물들어가는 모습이라니..그나마 본 건 물가에서 뿜어나온 몇발 뿐....
맑기만 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
가장 돈(택시비)을 많이 쓰고도 허무했던 장소다.(불꽃놀이 하는 시간이면 모든 대중교통 수단이 끝난다)
5.
어쨋거나..중요한건 여관인데.. 인터넷에서 급하게 찾은 여관 치곤 괜찮았다. 아직 창업 40년 정도니까 역사가 깊은 다른 여관들에는 비할바가 아니고, 방도 11칸밖에 없지만 아직도 빈방이 남아 있다는건 사실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몇군데 방이 없다는 선고를 들은 이후인지라, 그 때까지 안팔리고 남은 물건에 대해서는 불신이 있을 수 밖에..도중에 숙소를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게으름 때문에 그냥 밀고 나가기로 결정. 하지만 바꾸지 않길 잘했다.
노천탕은 예상대로 '남녀시간교대제'였지만(작은 여관이니 남탕 여탕이 따로 없다) 사진에서 본 것 보다 나았고, 사람도 없어서 친구랑 단 둘이 천천히 놀 수 있었다. 수다스런 주인 할머니는 '안개속의 하나비' 때문에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시간 외 목욕탕을 쓰게 해주는 일에 꽤나 유세를 부렸지만, 친절하고 깔끔한 전형적 '일본사람'이었고..하지만 정말이지 노인들이 떨리는 손으로 서비스를 해주는걸 가만히 앉아서 받는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여관 홈페이지에 있는 노천 온천 사진. 사진엔 안나왔지만 왼쪽 담 너머가 대숲이다. 히노키 나무로 된 목욕통에 들어가서 은은한 나무 냄새를 맡고 있으면 바람이 대숲을 스치는 소리가 난다.
6.
아무튼 뭐니 뭐니 해도 하코네라면 역시나 빼놓을 수 없는건 지옥 계곡, 정상의 아시노코와 주변 삼나무숲.
로프웨이의 중간역 오오와쿠다니는 이름을 그대로 해석하면 '펄펄 끓어오르는 계곡'쯤 되려나..위로는 유황 가스가 진동을 하고 밑으로는 유백색 물이 흐르고 있다. 지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뜨거워서 그 물에 계란을 삶아서 판다. 그러나 이 썩은 계란 냄새같은 유황 가스 속에서 과연 또 삶은 계란을 먹어야 할 것인가..
위로는 유황가스가 차있고, 아래로는 유황물이 흘러서인지 집단 폐사한 나무들이 눈에 띈다.
정상의 아시노코 광경은 언제나 하코네 안내 책자에 단골로 등장한다. 단, 대부분의 사진에서 보이는 '거울같은 호반에 비치는 후지산'이라는게 1년에 3-4번 볼까 말까한 광경이라는게 문제지만. 어제 하나비에서 우릴 물먹였듯이 안개가 끼기 일쑤인데다, 바람도 세서, 잔잔한 호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만든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없는 해적선 유람선는 감점 요소.
반면 호수로 길(도리이)이 나 있는 하코네 신사는 호수의 풍경에 묘한 정취를 준다. 신사와 속세를 연결하는 문인 '도리이'는 어느 신사에나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물을 향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어서인지 정말 저기서는 뭔가 신비한 기운이 오고 갈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난 도리이를 보면 어렸을 때 능에 가면 서 있던 그 빨간 문같은 것(이거 이름이 있는데..생각이)이 생각나곤 해서 별 거부감이라든가 하는걸 느껴본 적 없는데, 지난번에 엄마가 왔을 때, 전혀 새로운 의견을 들었다. '저 지붕의 선이 꼭 칼날 같은 것이 섬찟하니 기분 나쁘구나.' 그러고 보니 문화와 지붕선의 모양에 대해서는 뭔가 연관을 짓는 연구를 본듯도 한데..아님 말구.
아마도 옛날에는 배를 타고 이 곳으로 올라 왔을 것이다.
아시노코 주변은 오래된 삼나무 숲이다. 하도 이런 저런 가게와 온천 여관들로 가득한데다 버스와 유람선이 다니니 여기가 산 정상이고, 오래된 숲이라는걸 잊곤 하지만 적어도 구석엔 이런 길이 있다.
 
7.
P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으니, 지방엘 다녀오면 반드시 햄버거를 먹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70년대 중반에 서울에서 태어나 강남에서 주로 생활을 한 P에게는 아마도 고향의 음식이 햄버거인가보다. 이건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코드의 부재 내지는 혼재와도 연결이 될지도 모르고, P의 개인적 입맛 문제일지도 모른다.
일본에 와서도 그 습관은 변하지 않으니, 중요한 것은 우리는 도쿄에 돌아가서 '맛있는' 햄버거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아..맥도날드나 롯데리아는 가고 싶지 않다.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햄버거는 '모스버거'라는데 두 사람의 의견은 일치한다. 유기농 야채를 쓰고, 주문 받고나서 만드는 '모스버거'는 코엑스몰 지하를 비롯해 몇군데 지점이 있는 '크라제 햄버거'보다 덜 호화롭고 덜 비싸다.
그러나 '모스 버거'지점...차타고 지나가다 보면 꽤 눈에 띄는데 막상 가려고 하면 없다. 몇년 전 여행왔을 때 갔던, 역에서 좀 멀었던 가게를 찾을 수 있을지, 아직도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기억을 더듬어가며 찾아간 길에는 아직도 옛날 모습 그대로, 가격도 그대로인 빨간 간판이 있었다.
모스버거의 대표작 [모스버거]와 여름 한정[난 타스코]
미식여행쪽은 포기한 우리가 1박2일간 일부러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가며 찾아먹은 유일한 음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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