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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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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캄보디아 여행기] 사이공의 하늘과 땅-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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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캄보디아 여행기] - 2001. 1. 15 -
* 4박5일의 베트남/캄보디아 여행기입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 크리스
토프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원제: 안남)>를 다시 읽었습니
다. 지극히 간명한 연대기적 서술. 그 안에서 풍경이 드러나고 시가 읽
히는 문체. 비록 번역문체였지만 흉내내어 여행기를 써 봅니다. 저도
모르게 흉내내게 됩니다. 적어도 도입부만은. 그런데 뒤로 갈수록 내
꼴이 나옵니다..
<1부 사이공의 하늘과 땅>
1. 친구들
2000년을 접는 시점에 나는 조금 색다른 여행길에 올랐다. 99년 여
름, 혼자 돌아다녔던 프랑스 여행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여행으로서
나 포함, 8명의 소대 인원이 패키지 코스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베트
남/캄보디아 여행이었다.
소개하면 우리는 계모임이다. 대학의 같은 과 동기이며 졸업 후 모
두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었다. 그 중 절반은 최근 2, 3년 사이에 고등
학교 교사가 되었다. 모두 여자이며 절반은 기혼, 절반은 미혼이다. 우
리는 만 13년간 한 달에 한번씩 거르지 않고 만났다. 처음엔 교과서를
들고와 교재 연구를 했으며 학급운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늘
상 학생들을 얘기하고 학급을 얘기하고 교장교감을 얘기하고(이쪽은
주로 욕) 교육현실을 얘기했다. 몇몇은 결혼을 하였고 자녀를 낳았다.
해직되었다 복직한 친구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 전교조가 합법화되었
다.
어느 해부턴가 우리는 함께 여행을 가보자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인당 100여 만원 정도 적립된 것이 지난 해였고, 한 친
구가 이 돈이 얼마 안 있어 누군가의 조의금으로 나갈 수도 있다고 말
한 이후 우리는 더 미루지 않고 떠나기로 뜻을 모았다.
방학이라곤 하지만 기혼자들 때문에 5일 이상의 여행은 무리였다.
경비를 초과하는 여행도 부담스러웠다. 중국과 베트남이 물망에 오르
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베트남이 좋았다. 베트남만 갈 것이냐 앙코르
유적이 있는 캄보디아까지 포함할 것이냐로 잠시 옥신각신했다. 그 와
중에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뻔하였다. 우리는 불길했다. 8명이나
되는 인원이 여행을 함께 다녀와서 갈라서지 않으면 기적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다행히 우리는 모두 착했고 남의 눈치를 보는 타입들이었
다. 도대체 그러지 않았으면 13년이란 긴 세월의 우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젠 우정이란 말을 써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날을 정해서 만났을 뿐, 개인적 왕래가 잦은 편이 아니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함께 한 정도였다. 생일을 챙겨준 적도 없
었다. 서로간에 일정한 거리가 존재했다. 1에서 8까지 순번을 매긴다
했을 때 1이 여덟 명 각각과 유지하고 있는 거리에 차등은 거의 없었
다. 그런 우리가 4박5일간의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꽤 깊은 우정을 다져온 사이임을 깨
달았다. 이제 보니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들이었다.
2. 출발
떠나기 전 한 달 동안 우리는 인터넷에 까페를 하나 만들어 근황을
주고받고 여권준비에서부터 여행사와의 교섭, 환전, 준비물에 이르기까
지 여러 사항들을 함께 점검했다. 그리고 출발 직전 어느 하루엔 대학
로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베트남 음식들을 맛보았다. 음식점
이름은 그린파파야향기였다. 그날 우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날 이륙했다. 나는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이 여행
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지만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아 서운했
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 학급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요번 크리스마
스때 뭐하실 거에요?' 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얼씨구나 신이 난 나는
기다렸다는 듯 온갖 우아를 떨며 최대한 얄밉게, 나 그때 서울에 없어.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리며 어, 여
행 가세요? 하고 묻는다. 난 간결하게 대답하여 신비감을 조장하고 싶
었다. 응. 그러자 학생들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한다. 어디요? 나, 더
이상 얄미울 수 없을 정도로 공주 증세를 보이며, 반팔 입는 곳으로
가, 라고 말한다. 학생 전체: 우와, 좋겠다..
3. 녹색, 오토바이, 그리고 소녀들
여행의 1부는 호치민에서 이루어졌다. 호치민. 이 도시의 옛 이름은
사이공이다. 나는 사이공이라고 부르겠다. 그쪽이 어감이 풍부해서이
다. 사이공은 먼저 활엽수의 세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파리가 크다.
이것이 사이공의 첫인상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색상
은 녹색이었다. 녹색의 논, 녹색의 나무, 녹색의 숲, 온통 녹색이었다.
초록으로 표현한다면 짓무른 초록, 습기를 머금은 나른한 초록, 먼지와
소음이 다량 배합된 초록이니까 결국 녹색이 돼 버린다. 이러한 사이
공의, 특히 도심 이미지는 더함도 덜함도 없이 영화 [시클로]에서 묘사
된 이미지와 합동이었다. 이 영화는 매우 탐미적인 작품이었지만 동시
에 생생한 현장감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진득진득한 녹색에 매료
되기 시작하였다.
자, 이러한 밑그림 위에 동영상이 펼쳐진다. 동영상의 첫 번째 주인
공은 엄청난 스펙터클로 육박해오는 오토바이 무리들이었다. 오토바이
는 사이공 주민들의 주요 이동 수단이다. 도대체 걸어다니는 사람을
못 본 것 같다. 특히 퇴근 무렵 사이공 도심에 쇄도하는 사단병력의
오토바이떼에 우리는 경악하고 말았다. 그들은 복면까지 쓰고 있어 마
치 시위군중들 같았다. 그들은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었다. 우리가
사이공을 떠나는 날까지. 일로매진하는 행렬일 뿐, 한눈 파는 걸 못 봤
다. 그토록 열심히, 힘차게 가야 할 데가 있다니 부러운 일이다.
사이공을 배경으로 한 이 아름다운 영화 장면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순백의 아오자이를 차려입은 여고생들이다. 그들은 히로인
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자전거를 타고 일제히 몰려나오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너무나 황홀하였다. 진흙탕 속에 피어난 연꽃들 같았다.
4. 메콩강 환각체험
그대 동으로 흐르는 물에게 물어보라
헤어지는 마음과 그 물줄기, 어느 것이 더 긴가.
여행동호회에 올려진 어떤 글에서 훔쳐 온 문구이다. 참 좋다.. 메콩
강은 티벳에서 발원하여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을 통해
남지나해로 흘러들어간다는 인도차이나의 젖줄이다. 이 강은 과연.. 거
대한 흙탕물이었다. 우리는 엔진 소음이 강한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
넜다. 선상에서 코코넛 음료를 마셨다. 야자 한 덩어리를 품에 안고서
과일 속에 차 있는 물을 대롱으로 빨아마신 다음 허연 과육을 긁어먹
었다.
강의 지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배가 닿았다. 거기에 과일농장이
있었다. 열대과일들을 먹었다. 파인애플과 파파야를 배불리 먹을 수 있
었다. 붉은 껍질에, 과육이 마치 무에다 통후추를 박아놓은 것같이 생
긴 드래곤 프루트라는 과일이 있었다. 용안이라는 이름의 엽기적인 과
일도 있었다. 대뇌 속에서 막 들어낸 안구처럼 희끄무레하고 끈적끈적
하기 이를 데 없는 구형의 과일이었다. 망고와 두리안은 제철이 아니
라고 해서 못 먹었다.
우리는 야자수가 우거진 좁은 밀림 수로를 카누로 건넜다. 고요 속
에 오직 찰랑 찰랑 노 젓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비정전]의 타이틀씬
과 엔딩씬을 수놓던 밀림 장면을 기억하는가. 아마도 그 장면은 필리
핀의 열대였었던 것 같지만.. 어쨌거나 그런 꿈결같은 화면의 입자, 그
런 정도의 아다지오, 아니 렌토의 속도감, 그런 식의 수평트래킹을 연
상하면 된다. 정신이 몽롱하였다. 나는 아편을 한 대 피우고 그대로 드
러눕고 싶었다. 한 30여 분 지나서 우리는 대해로 빠져나왔다. 그것은..
정말 대해라고 표현할 만한, 광대하게 출렁거리는 바다였다. 그런데 바
다가 아니라 강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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