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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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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기] 세계로 가는 '기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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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기차' - 1999. 7. 4 -
일단 유럽 대륙에 들어서면 큼직큼직한 이동은 대개 열차에 의
해 이루어진다. 그 신속하고 유기적인 철도 체계를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유럽은 이런저런 나라들의 산술적 집합이 아닌, 하나의 제
국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것만 같다. 파리나 비엔나, 부다페스
트, 로마는 어느 어느 나라의 수도이기에 앞서 유럽이라는 제국의
고도(古都)이자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철도의 기점들이다. 제국의
혈관, 마을과 마을을 이어줄 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마저도 자유롭
게 넘나드는 유럽의 철도망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에게 완강하게
박혀 있던 '국경'의 개념이 어느덧 감동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한다.
비행기와 비교하면 기차는 퍽 낭만적이다. 이륙과 착륙이 있을
뿐 그 사이의 여정이 비몽사몽간에 소멸되고 마는 비행기 여행과
달리 기차 여행의 경우엔, 출발에서 도착까지의 과정이 풍경과의
교감, 풍경에 매개된 상념들로 채워진다. 여기엔 시정(詩情)이 있
다.. 또한 특유의 규칙적인 기관음으로 말미암아 기차는 비행기보
다 훨씬 음악적이다. 그래서일까, 풍경이 사라지고 암흑 속에 속도
와 리듬만으로 존재하는 야간열차는 주술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
킨다. 어둠 속으로 휙휙 내닫는 야간열차의 레일 위로 막스 폰 시
도의 음성이 최면을 걸듯 나직하게 깔리던 [유로파]의 인트로.
기차와 기차역 주변 정경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나
라 소도시의 기차역, 특히 시골 간이역의 정취 같은 것도 특별하
지만, 뭐랄까 상상 속 유럽 대도시의 기차역은 숱한 이방인들이
남기고 간 고독의 잔영과 더불어, 기차의 발명과 관련된 그 최초
의 흥분, 즉 시대 정신으로 충만하다. 이에 대한 증언, 이를테면
모네의 <생라자르역> 같은 그림엔 근대적 공업 기술력의 결정체
라고 할 철도와 역사(驛舍)에 대한, 매혹과 황홀이 서려 있다. 유
리 지붕이 대칭 구도를 이루는 역사 내부에 기차가 막 달려오고
있다. 검은 동체에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증기와, 지붕을 통해 역
사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한데 어우러져 창조하는 인상, 거기
엔 변화하고 있는 시대의 에너지가 생동한다.
근대화를 생각할 때 근대화의 또다른 이름인 서구화에, 식민지
경험까지 한꺼번에 떠올려야 하는 복잡한 사정 때문에, 우리네 공
업기술의 발전사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시선은 적잖이 분열적이
다. 철도와 기차역에 대한 인상이라는 것도 우리에겐 어린 시절
아련한 향수의 일부쯤으로 채색되기 마련일 뿐 기술력에 대한 시
대사적 감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서양인들에겐 그게 아니었
나 보다. 그들에게 기술의 진보는 곧 긍지였다. 실제로 기차역은
그 시기의 종교였으며 근대 산업의 궁전이었으며 신인류의 성전이
었다고 말해진다. 같은 세기에 서양에서 발명된 '영화'의 첫사랑은
하고많은 소재들 가운데 '기차의 도착'에 헌정되었고 작가들 또한,
기차에 대한 감동을 앞다투어 증언하였다.
이하, 투르니에의 에세이 <철도와 도로> 중에서 발췌
"1950년 이전의 어린이들은 운이 참 좋은 편이다. 아이들은 과
거에 있었던 매우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으니까. 예를
들면 증기기관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광경 같은 것.
물론 우리는 증기기관차보다 더 크고 위엄있고 뜨겁게 속삭이며
한숨짓고 바람을 일으킬 뿐 아니라 견고하며 우아하고 멋있고 관
능적이며 강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증기기관차의 화부
란 직업이 이런 소년들에게는 유일한 동경이었다. 더구나 이 사람
은 이마에 커다란 빛가리개 안경을 걸치고 검댕을 칠한 얼굴을 과
시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에밀 졸라는 기관차의 화려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소설 <인간 야수>에서 화부와 기관차와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
다. 리종이라는 이름의 기관차의 강철로 된 밑부분은 불같은 열정
으로 불탄다. 이 철도라는 구경거리는 위대한 몽상가에게 포착되
지 않을 수 없었다.
졸라의 생전에 등장했던, 터널과 고가교와 건널목지기의 집과
같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건설된 철도는 프랑스 전역을 사방
으로 뻗어 아주 작은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하였으며 그 길이는
20,000킬로미터에 달하였다. 이 시기에 모든 것은 수노새와 당나귀
를 이용해 수동(삽, 곡괭이, 발파기)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상기
해야만 한다.
철도계(界)는 무엇보다도 특권이 많고 계급이 뚜렷한 세습적 사
회 계급인 철도종사원의 동업조합으로 구성되었다. 이곳의 신앙은
시간엄수였다. 왜냐하면 천체에서 별들이 중력에 이끌려 돌 듯 기
차는 철도망을 돌아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이 거대한 시계가 수년 동안 여행과 지상 운송을 완전 독점하리
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자동차가 나타나 모든 것을 위
태롭게 하는 날까지 지속되었다.
- 중간 생략 -
[인용]
나에게 빌려다오,
너의 큰 소음을, 그 부드럽고 빠른 속력을,
밝게 조명된 유럽을 가로지르는 너의 밤의 질주를,
오, 호화기차여!
노란 가죽 통로를 따라 어렴풋이 들리는
가슴 아픈 음악,
육중한 청동 문걸쇠가 달린 에나멜 칠 된 출입문 뒤에
수천 명이 잠들어 있을 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너의 통로를 서성거린다.
그리고 나는 빈과 부다페스트를 향해 달리는 너를 쫓는다,
수천 개의 너의 목소리에 나의 목소리를 섞으며,
오, 특급열차여!
발레리 라르보의 <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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