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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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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트럭 운전사는 삼계탕을 먹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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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중의 한 편입니다.
오늘 삼계탕 먹은 기념으로 올려봅니다.
트럭 운전사는 삼계탕을 먹었을까? - 무라카미 류
* 삼계탕 - 닭의 내장을 빼내고 그 안에 찹쌀과 인삼을 넣고 푹 곤 한국 음식
'빌리스 바'는 24블록, 애버뉴 오브 아메리카에 있는 토플리스 바(topless bar: 여급이 가슴을 드러내고 서빙하는 바)이다.
올해 들어 영화 일로 자주 뉴욕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그 술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빌리스 바에는 네 명의 댄서가 고정적으로 나온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도 댄서는 열 명 정도이고, 나이도 생김새도 인종도 가지각색이다. 매일 밤 춤추는 여자도 있고 주 3회 그것도 심야에만 춤을 추는 여자도 있는 반면, 월요일 밤 10시부터 한 시간만 나오는 여자도 있다.
한 시간 춤추는 그 여자는 내년 3월에 초연될 오프브로드웨이의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젊은 댄서인데, 손님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녀는 흥행주에게 특별 지원을 받고 있어서 돈이 별로 궁하지 않을 터이지만, 빌리스 바가 너무 마음에 들고, 친숙해진 손님들 때문에 리허설이 없는 월요일 밤만 춤을 추러 오는 것이다.
그녀가 춤추는 월요일 밤 10시가 되면 빌리스 바는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다. 토플리스 바의 댄서가 비록 오프브로드웨이의 단역이긴 하지만, 오디션에 합격한다는 것은 뉴욕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어서, 단골 손님들도 그녀를 무척 기다리는 눈치였다.
다른 댄서는 한창때를 지나 브로드웨이의 무대는 꿈도 꿀 수 없는, 피부가 늘어진 여자들뿐이다.
그러나 댄서들은 이상하게도, 아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닳아빠진 샤기 카펫(shaggy carpet: 털이 3-5센티미터나 되는 융단)이 깔린 무대에 서서는 늘 밝게 웃으며 유방과 엉덩이를 흔들어댄다. 무대라는 것은 지극히 특수한 장소인 모양이다.
검은 융단막이 내려오는 슈베르트 극장이건, 천장에서 쥐똥이 떨어지는 토플리스 바이건, 댄서가 라이트와 시선을 받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젊은 날의 꿈이 깨어지고 새까만 발뒤축으로 춤을 추는 여자들이, 오디션에 합격한 젊은 여자를 시기한다는 것은 내가 아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젊은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빌리스 바에는 다른 두 사람의 동양인 댄서가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출신인데, 두 사람의 춤은 단순한 고고에 지나지 않고, 피로에 지친 미국 남성들의 동양 여자 기호를 조금 만족시켜줄 뿐이다.
"저 두 사람은 동양의 수치야. 아가씨는 동양의 자존심이고."
한국인인 그녀에게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직 그녀가 오디션에 합격하기 전, 아마도 올해 5월이었을 것이다. 5달러만 팁을 주면 댄서가 옆에 앉아 술을 따라준다.
"수치, 자존심, 그게 무슨 뜻인데?"
그녀는 내가 사주는 달콤한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물었다.
"저 베트남 여자와 필리핀 여자는 춤이 형편없어. 미국인 손님들의 베트남 추억을 자극하는 정도일 뿐이야."
"미국인에게 베트남이란 고통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들은 저 여자들의 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느꼈을지도 모르잖아. 물론 내 춤을 칭찬해주는 건 정말 고마워."
내가 영화 일을 한다고 하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웃없다. 영화라는 말을 듣고 일순간 흥분을 느꼈다가, 내가 스크립트 라이터치고는 너무 젊어서 거짓말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일본인은 보통 10년은 젊어 보인다. 수년 전, 역시 영화 일로 LA의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로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더니, 어른이 되면 피워요, 하고 아줌마 비서에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어떤 영화를 만드는데?"
명함을 보고 나를 신용한 듯 그녀는 두 잔째 술을 홀짝이며 노골적인 관심을 보였다.
"주인공은 트럭 운전사야."
"<콤보이> 같은 것? 액션 영화인 모양이네."
"아냐, 그 트럭 운전사는, 뭐라고 할까, 심한 자폐증 환자인데, 그는 도로를 싫어해."
"도로를 싫어하다니, 좀 이상한 사람인 모앙이군,"
"모형을 만들어."
"그가?"
"응, 그는 미국 전역을 나타내는 커다란 모형을 방 안에 가득 채워두고, 자신이 달리는 도로, 모텔, 주유소 같은 것들을 정확히 배치하는 거야."
"그럼 결혼도 안 했겠네?"
"안 했어. 그건 왜 묻지?"
"결혼해서 아이가 있으면 방 안에 모형을 놓아둘 수 없잖아? 장난쳐서 부숴버릴 테니까."
"맹점이란 말, 알아?"
"블라인드 스폿? 알고 있어. 일본식 표현인 줄 아는데? 뭔가는 놓친다는 뜻?"
"맞아, 그렇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생리적인 의미의 블라인드 스폿이야. 망막상의 한 점인데, 그 트럭 운전사는 미국 도로의 완벽한 모형을 만들려고 하지만, 기억이 일부 잘려나가고 없는 거야."
"그건 이상해."
"응, 우리처럼 이렇게 빌딩만 가득한 도회지에 사는 인간은 알 수 없을 거야. 그는 아무것도 없는 하이웨이만 달리는 사람이야.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오로지 사막과 약간의 선인장과 도로, 늘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거지."
"그건 나도 알아. LA에서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동부 쪽으로 왔으니까."
"그는 그런 풍경을 정확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나서, 아파트 방에 앉아 모형을 만드는 거지. 그러면서 죽 이어져야 할 사막과 도로의 영상이 늘 몇 군데 짧은 순간 잘려나간다는 것을 알게 돼. 그의 일상이란 트럭 안과 아파트밖에 없고, 머릿속에는 늘 모형 만드는 일밖에 없어. 그래서 도로의 영상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되는 거야."
"눈이 나쁜 모양이군."
"그 잘려나간 영상을 그는 블라인드 스폿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는 그 블라인드 스폿 그 자체의 모형을 만들고자 결의하는 거지."
"그 사람, 눈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아?"
"눈이?"
"응, 피로하면 시력이 약해져, 몰라? 나도 눈이 피로해지기 쉬운 타입인데, 그럴 때면 삼계탕을 먹어."
"삼계탕?"
"응, 알고 있지?"
"서울에서 먹어본 적이 있어."
"고려 인삼이 눈에 좋아."
삼계탕이란 닭 요리의 일종이다. 닭 한 마리를 그대로 넣고, 그 속에 찹쌀과 인삼을 넣고, 수프를 부어 몇 시간 푹 삶은 것으로, 그걸 먹으면 감기도 낫는다고 한다. 수프는 담백한데 닭은 젓가락만 갖다대도 살이 떨어질 정도로 부드럽게 삶아져 있고, 인삼의 강렬한 향기도 풍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생명을 입 속에 넣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 삼계탕을 먹으면 좋겠어."
나는 그렇게 말했다.
공간을 가득 메운 손님들이 박수를 치며 길을 열어주는 거운데,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합성가죽 수트와 핑크빛 레그 워머(leg warmer: 장딴지 보온을 위한 원통형의 니트 제품) 차림으로 빌리스 바에 모습을 드러내고, 무대로 올라가, 예전처럼 약간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손짓으로 브래지어를 벗고, 20분 정도 춤을 추었다.
춤이 끝나고, 손님들의 열렬한 박수 세례를 받는 그녀와 눈길이 마주쳤다.
축하해, 하고 내가 맥주 조끼를 눈 높이까지 들어올리자. 그녀는 내 얼굴이 기억난다는 듯이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빌리스 바에는 한 시간밖에 머물지 않았다. 다시 박수를 받으며 빌리스 바를 나설 때, 트럭 운전사는 삼계탕을 먹었어? 하고 나에게 물었다. 먹었지, 하고 대답하자, 나도 사흘에 한번 먹어, 하고 36번가에 있는 한국 식당을 가르쳐주었다. 블라인드 스폿이라는 영화는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트럭 운전사가 만드는 블라인드 스폿 그 자체의 모형 이미지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는 추상적인 것이 되리라 생각했던 이미지 모형을 좀더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라인드 스폿은 행복의 상징이어야 한다.
삼계탕은 펄펄 끓는 뚝배기채로 테이블에 올라온다. 펄펄 끓는 우윳빛 수프 안에, 닭은 마치 거대한 바위산처럼 솟아올라 있다. 젓가락을 갖다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뼈에서 떨어져나와, 쫀득하고 하얀 덩어리로 변한 찹쌀과 함께 수프 속에 녹아든다. 봄에 녹아내리는 빙산처럼.
녹아내림이 그냥 그대로 행복으로 변해버리는 추상물, 블라인드 스폿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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