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름 |
주향 |
 |
| 제 목 |
여행기 9 - 바르셀로나 (3) *완결* |
|
단체투어가 종료되면서 여행동료들이 공항으로 떠나버린 후
남겨진 저희 모자는 갑자기 이 머나먼 이국의 도시에
우리 둘뿐이란 생각에.. 해방감보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걱정이 많은 아들에게 미적거리고 서툰 모습 보여주기 싫어
잽싸게 택시를 잡아타고 약속했던 동물원에 갔습니다.
바르셀로나 동물원이 자랑하는 화이트고릴라를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쳤었거든요.
이 도시를 상징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도안이 귀여워서
표지판도 찍어보았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뭐 볼 것도 없고..
이 녀석 앞에 앉아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드문드문 보여주는 녀석의 표정이 일품인데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승민아빠 나이네요. 63년생인가 64년생이라니.
동물원에 오면 좋은 점.
동물 말고도 사랑스러운 스페인 아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단체투어에서 해방된 그날 제일 먼저 찾아가서 먹은 음식은
맥도널드 햄버거였습니다. 현지음식에 시달려 온 지 열흘..
승민이가 맥도널드 간판을 보자마자 환장을 하며 졸랐거든요.
시내관광버스의 도우미 아가씨에게 특별히, 맥도널드 나타나면
무조건 알려달라고 부탁하여 내린 곳은 까딸루냐 광장이었습니다.
감격의 진미 버거!
아, 말은 잘 통했냐구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소문대로 스페인은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곳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영어 안 되긴 저도 마찬가지니까 그냥 원시적으로 죽을 쑤기로 했습니다.
기본 노선이야 침묵 및 과묵의 미덕일 수밖에 없고 ^^
목적지는 고유명사니까 대충 발음하거나 메모를 보여주었으며
관광객 대상의 자잘한 구매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다행히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원 유로? 투 유로? 오케이! 등등. 도대체 이거 말고 무슨 할 얘기가 있나요..
커피 종류를 에스프레소와 까페 콘 레체(우유가 많이 들어간 커피)
두 개만 외워가지고 갔는데 매우 유용했으며
그럼에도 어느 까페에서 승민이를 위해 핫 초코를 주문했는데
얼음 넣은 콜라가 나왔길래 덜덜 떨며 그냥 마셨던 일화가 있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시원찮은 영어하는 쪽이
영어권 도시에서 시원찮은 영어하는 쪽보다 아무래도 나은 것 같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자고로 언어 그 자체보다는 심리적인 문제거든요.
뉴욕의 번잡한 패스트푸드점이나 상점에 들어가
주문씩이나 하면서 왠지 떡될까 봐 바짝 쫄아있던 기억이 있는 반면
예전에 갔던 프랑스나 이번 스페인의 도시들에선
도무지 문장 근처에도 못 가는 수준의, 형편없는 영어단어 이어붙이기마저도..
마음만은 편했습니다. 뭐랄까요, 유럽인들은.. 내가 그들에게 말 붙였을 때
거절당하거나 거부당할 것 같은 느낌이 상대적으로 적어요..
말을 걸어야 하는 고통은 상대의 말이 안 들리는 고통이라든가
상대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 되돌아오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 그리고, 스페인 말은 정말 빨라요.
왜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에 나오는 그녀들, 아시죠?
가이드 선생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빠른 것 세 가지.
1. 장례식(뜨거운 기후에 음식이 부패할까 봐)
2. 말
3. 사랑
바르셀로나에서 만 이틀간의 자유여행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도전해 볼 만한 당일 프로그램으로 근교인 몬세라트나 피게레스,
두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odi/amo가 권했던 몬세라트 수도원도 끌렸지만
살바도르 달리 그림을 볼 수 있다는 피게레스 쪽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서울 살면서 근교 기차여행 엄두도 의욕도 못 내는 주제에 만리타국 나가서는
잘도 다니니..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내가 알 게 뭡니까..
기차역 안에 붙어있던 [오, 그레이스] 포스터입니다.
이 영화 보셨는지요? 아직 안 보셨으면 비디오 권합니다.
여러 군데 잘렸다는 말도 들리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배경이 아마, 영국의 콘월 지방일 겁니다..
여기도 한번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차창 밖 풍경
피게레스 도착. 날씨가 어찌나 좋던지.
역에서 미술관까지 걸어가도 될 만한 거리임을
이 사람 저 사람 눈치코치로 때려잡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한 이십여 분 이상 헤매다가
표지판을 발견하고 반가웠습니다.
미술관 가는 길에 본 장터에서 하몽을 팔고 있었습니다.
달리 미술관 내부. 메인 홀입니다.
피게레스에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습니다.
까딸루냐 광장에 있는 입간판입니다.
서울의 시청이나 광화문쯤 될까요..
여행 안내소가 있고.. 누구나 아는 곳이며.. 교통편이 용이하며..
하여튼 관광이 시작되고 마감되는 도시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헤매다가도 일단 이곳으로 오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립니다.
버스 투리스틱.
시내 관광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관광객에게 매우 쓸모있는 교통수단입니다.
남쪽라인과 북쪽라인 두 개의 라인이 있으며
도시를 순회하면서 주요 관광지에 정차합니다.
하루종일 타고다녀도 되고 어디서나 승하차가 가능합니다.
차체는 이렇게 생겼고
이층은 야외입니다.
도시 남쪽은 항구입니다. 지중해안입니다.
이곳에 서면 이비사나 마요르카 섬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도시 안에 이렇게 다양한 것들이 있어 지루할 틈은 없습니다.
해안가의 공중전화.
이 도시의 공중전화는 이런 모양과 색깔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전화부스 옆의 조형물은 가로등입니다.
가로등만 찍어도 사진첩이 하나 제작될 수 있을 정도로
가지가지 재미난 디자인의 가로등들을 보았습니다.
가로등, 입간판, 담벼락에 부착된 포스터들과 더불어
바르셀로나 시의 미장센을 조성하는 인상적인 소품이라면
가로등 행렬을 따라 '끝없이' 나부끼는 저 양날개형의 깃발식 광고물이랄 수 있습니다.
대학로라든가 서울 도심 곳곳에서도 이런 깃발식 광고물을 본 적 있습니다.
그런데 왜 '끝없이'인고 하니 대로나 소로, 이면도로를 막론하고
차가 다니는 거의 모든 길의 소실점에 이르도록 언제나 한 종류의,
단일한 깃발이 걸려있기 때문인데, 그 결과, 보행 중이거나 차량 이동 중인
우리의 시야엔 이 깃발 행렬이 영화필름의 잔상처럼 맺히게 됩니다.
이를테면 보르헤스 전시회(지 싶은데)를 예고하고 있는 저런 헝겊이
저 거리의 가로등 가로수 행렬을 따라 수십 장이 나부끼고 있죠.
우리가 도시를 활용, 향유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보행 및 차량 이동 중에 이루어지는 시각 체험일 텐데
보행이거나 차량이거나 '이동'이란 것은 일정한 속도를 전제로 합니다.
걸어가는 이의 시야, 버스나 택시의 차창 밖으로 난 시야..
그것을 채우는 내용물이 뭐냐.. 내용물이 전시되고 채워지는 방식은 어떠하냐..
도시 미관과 관련한 보다 문화적이고 세련된 쟁점이 아닐는지요..
도시와 인간이 대화하는 한 방식으로서의 잔상 축적에 의한 시각적 체험.
지천에 널린 광고의 전략들이며 그 근본 원리는 다분히 영화적입니다.
몬주익 언덕에 있는 미로 재단입니다.
마침 페르낭 레제 전이 열리고 있었고
생선뼈 발라놓은 듯한 미로 특유의 데생 및 원색적인 회화,
타피스트리 등등.. 진정한 까딸루냐의 예술가로 사랑받는 미로의,
심플하고 유머러스한 작품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스케일이나 공간설계, 미감, 심리적 안정감 등등
여러 면에서 만족감이 컸던, 굉장히 아름다운 미술관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가시면 일정에서 빼놓지 마시라고 권유합니다.
미술관 옥상에 전시된 미로의 조형물
관광버스 위에서 목적없이 돌다 바라본 항구 주변 야경입니다.
제가 바르셀로나에 있었던 그 주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개봉영화는
바로 이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간 문화가이드 책자에서도
크게 다루고 있었고 곳곳에서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미리 보고 온 작품일 뿐 아니라 거품 물고 감상문까지 썼던 작품이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바르셀로나 공항 담벼락에 그려진 미로의 작품.
바르셀로나의 택시들은 이렇게 생겼구요.
담배 물고 있는 남자는 보노같이 생겼죠.
아, 그러고 보니 스페인 미남들을 잊었군요.
안토니오 반데라스, 라울 곤잘레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같은 남자가
길바닥에 널렸다니 미남 사진 좀 찍어오자 굳게 다짐하고 떠난 여행이었건만
워낙 주변머리 없는 아줌마라 트라이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세계 속에 탐닉하며 오직 이미지에다 성적 에네르기를 탕진하며 살다 보니
막상 리얼 매트릭스 속에선 불감증이 되고 마는 듯.
음.. 스타일 좋은 남성들, 각국의 공항 내에는 좀 보입디다..
여행에서 덧없는 쾌락과 실용적 지식 말고 얻어지는 '깨달음' 따위는 별로 없다.
이것이 기본 입장입니다만 한 가지는 인정합니다.
세상을, 사물을 새롭고 경이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훈련은 된다는 것.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