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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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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행기 5 - 그라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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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일정이 끝났습니다. 탕헤르 항으로 와서
스페인 남단 알헤시라스 항구로 귀환하기 위해 표를 삽니다.
탕헤르로 갈 때와 달리 돌아오는 뱃길은 쾌청합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양분하는 지브롤터 섬.
알헤시라스 항구를 가득 메운 모로코행 여객선 티켓 판매소들.
언제고 준비돼 있는 세우타와 탕헤르로 가는 배편들.
여행지의 길거리 이정표들도 그러하지만 이런 항구의 배편들,
기차역, 공항, 각종 터미널에서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떠나는 시각과 목적지가 열람된 교통편 보드 들,
예외없이 견딜 수 없는 객수를 자아내곤 해요.
방금 돌아왔는데 다시 떠나고 싶어집니다.
다시 안달루시아 내륙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말라가 코스타델솔 등 호화로운 휴양지 이정표가 난무하는,
지중해쪽 해안선을 따라 그라나다로 가고 있습니다.
승민이 표정이 시무룩하죠. 졸려서요..
생크림같이 덮인 시에라네바다의 은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알함브라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교도의
마지막 거점이 그라나다 왕국이었다죠.
그 이슬람 왕조의 영화가 남아있는 곳.
고색창연한 리리시즘의 세계.
물과 돌과 식물과 정원이 이루어내는
고요한 오후의 실내악에 저절로 귀 기울이게 되는 곳.
생각보다 스케일이 작은 대신 더함도 덜함도 없이
경제적으로 조성된 미적 공간이었습니다.
단아한 궁과 정갈한 조경 상태, 이국적인 문양들..
이곳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산책이고 휴식이며
영감과 사색의 시간이 되는 듯했다.. 고 말은 하는데
사진은 시원찮습니다. 건축물은 기울었고
노인네처럼 바늘귀같은 구멍이나
어두침침하고 서늘한 정원들만 골라다니며 찍었습니다.
알함브라를 방문한 시간대가, 맑은 날 석양 무렵이어서 그런지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운율까지 더해져
매우 시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네, 여행기를 쓰면서 두 번 여행한다더니.. 이렇게 쓰다보니
그날의 기분들이 생생히, 좀더 명료하게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역시.. 추억은 미화됩니다.
알함브라 일대를 산책하던 저 시간, 여행 다섯째날에 이르도록
밥 세끼 꼬박꼬박 먹어주면서 화장실 한번밖에 못 간,
그런데 향후 언제나 돼야 또 가게 될지 기약이 없어 더 암울한,
게다가 눈치보니 나말고 남들은 최소 두 번은 갔더라는 사실에 더 비관되는,
만성과민성대장증환자의 신체 상태와 정서란..
짐작하다시피 그다지 상쾌한 처지가 못 되었던 것이죠..
우리네 추억의 앨범엔 그런 것들이 자진제거되려는 경향이 있나 봅니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여름날의 휴가기간 같은 때,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생각 말고 알함브라 부지에 있는,
좀 비싸더라도 예쁜 호텔에 며칠 머물면서
해뜰녘부터 해질녘까지 이곳만 마냥 거닐어도 좋을 것 같다는.
알함브라 산책을 마감할 때쯤엔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땅에 박힌 가로등의 간접조명이 하나둘 켜지면서..
돌아가는 고단한 발길을 아래로부터 데워주던 그 저녁.
다음 사진은 알함브라에서 바라본 그라나다 시입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이 보이고, 클릭해서 확대해서 보시면
저 먼 산자락에 토굴들이 뻥뻥 뚫려 있지요.
집시거주지역인 사크로몬테입니다.
저희 일행은 알함브라를 방문한 이날 밤
바로 저 사크로몬테의 한 토굴에서
집시가족이 벌이는 플라멩코쇼를 관람하게 됩니다.
밤 9시. 호텔 앞에 대기중인 마을버스만한 차를 타고
사크로몬테의 예약된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마을버스로만 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언덕에 있는 한 토굴에 도착했습니다.
로시오네 쿠에바라고 문패에 써 있습니다.
로시오네 가족이 사는 토굴이란 뜻이랍니다.
대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공연장 입구의
오색찬란한 조명이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플라멩코쇼가 벌어지는 공연무대를 타블라오라고 한다죠.
공연 모습.
우리 팀 열댓 명과 일본인 여행객 열 명 정도, 그밖에 서양인들 해서
불과 삼십 명 정도 들어가니 꽉 차 버린 토굴 속입니다.
음료 한 잔을 마시게 되어있는데 저는 상그리아를 마셨습니다.
머리통 보이는 아저씨들 좀 있으면 붙들려 무대로 끌려나갑니다.
세비야의 플라멩코쇼도 유명하다 하며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의 세련된 쇼도 많다는군요.
어떤 쇼가 더 나은지 비교할 길 없으나
그라나다의 토굴 속에서 집시 가족이 펼치던 이,
소박하고 토속적인 플라멩코쇼를 쉽게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토굴 속의 특이한 인테리어입니다.
세숫대야나 냄비 같은 가재도구들로 내부를 장식해 놓았어요.
플라멩코쇼가 끝난 후 그라나다의 밤거리를 산책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까페가 다 문을 닫았더군요.
라임빛깔 조명만 은은하게 길을 밝힙니다.
사크로몬테 지구를 벗어나면 곧
아랍인 부자나 성직자들이 거주했다는 알바이신 지구입니다.
언덕 정상의 산 니콜라스 광장에서 바라본 알함브라의 야경이에요.
낮에 알함브라에서 이쪽을 바라본 사진이 저 위에 있지요.
사진이 잘 나와 기쁩니다.
'그라나다'의 뜻은 '석류'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해서
스페인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1. 조용하고 한적하다.
2. 풍경이 아름답다.
3. 있을 건 다 있다.
4. 네바다 산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5. 1시간이면 자기차로 휴양지인 바다로 갈 수 있다.(말라가, 코스타델솔)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 얘기 같죠?
확실히.. 사진 덕분에 여행에 대한 진술이 수월하게 풀립니다.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건너오니 세상이 훨씬 컬러풀하죠?
아, 저 사진들.. 어찌된 일인지 가이드의 설명을 짐짓 피해가며
한눈을 팔았을 때, 딴청을 피웠을 때 얻어진 게 대부분이랍니다..
이번 여행 중 저는 현지 가이드의 역할에 대한 편견을 비교적 많이 극복했습니다.
좋은 분이었고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가이드의 '설명'이란, 짧은 시간 안에 난폭하게 구겨넣어진
방대한 지식과 해석들이라.. 이것이 시각적 집중력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알아서 한눈팔기/딴청피우기 전략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결코 쉽진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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