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역시 글이 길군요...
11번까지 가는데, 아무래도 저처럼 꾸물거리는 인간이 나눠서 올리다가는
주향님 떠나시기 전에 다 못보실 듯하여,
그냥 한꺼번에 올립니다.
요새 이 필자께서 까딸루냐 기행문도 쓰고 계신데... 아직 진행중이라
출발 전에 완결되진 않을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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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짐을 정리하고 한동안 정들었던 살라망까를
떠납니다. 까미노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피레네 산맥,
프랑스와의 국경지방으로 떠나야 하지만.. 게으런 제가
그곳 까지 한달음에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도중에 세고비아에 들러기로 합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동화풍의 성이 기억나시는지요? 이 성이 바로 세고비아에
있는 성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안에는 박물관도 꾸며져
있으니 중세 무기류 등에 관심 있으신 분은..(이런 식의
박물관은 웬만큼 규모가 큰 성이나 왕궁 등에는 많이 꾸며
져 있으니 참신함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성과 함께 또 하나의 세고비아의 상징은 도시 한 가운데
를 가로지르는 로마의 수도교입니다. 인근 산에서 몇킬로
미터나 물을 실어나르던 로마 시대의 수도교가 아직도 멀쩡히
서 있답니다. 그 아래론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고..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참치가 든 empanada(파이?)를 하나 물고 석양빛이 물든
수도교를 보며 시스템이 갖추어졌을 때의 인간의 능력이란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천년이 지나온 지금 저와 제 친구
들더러 이런 것을 만들어내라 하면 수십년이 지나도 힘들겠지요.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은 다 같을 진대 지식을 전승하고 분업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존재할 때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나 생각합니다. 로마가 멸망하고 반달족이나 고트족들이 이베
리아 반도로 몰려들어온 이후 이 땅의 지식수준은 1천년간 이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12, 3세기 아랍과 그리스도교가 충분히 교류하고 문화를
전수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문명은 활짝 꽃피게 됩니다.
외부문명과 유연하게 교류하고 관용의 정신하에 모든 것을
포용할 때가 문명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던 시절이란 것도 신기
하지요. 반면 종교적, 철학적 도그마가 강화되고, 어떤 권위가
절대적 진리로서 모든 것을 억누르기 시작하면 예외없이 국운도
삶의 질도 쇠퇴해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자신과 다른 것에
관대해 왔는지 생각하면서.. 비분강개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세고비아가 유명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물론 Cochinillo,
새끼돼지 통구이입니다. 그런데 허걱..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걸 포함한 Menu는..(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당시 가난한 학생이라
식당에서 A la carta로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다 점심용 메누 가격이며 저녁에 A la carta로 드시려면 아마 두 배
는 내셔야 할 겁니다.) 거진 다 2000Pts(만오천원)이 넘습니다. -.-;;
사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나라의 고기값 생각하면 이거 못 먹을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싸다.. 하면서도 먹을텐데..(퍼스트, 후식, 와인도 다 포함된 가격이니..)
당시로선 경악하며.. (석달동안 1000Pts. 넘는 식사를 해 본게 한손으로
꼽을 만 합니다.) 좀 더 싼 식당을 찾아 헤맵니다.
그리고 크지 않은 세고비아의 구시가엔.. 수십군데의 이 Cochinillo 전문점
이 있습니다. 고생 끝에 겨우 1500Pts 짜리 식당을 발견해 들어갑니다.
다른 것을 뭐 먹었는지 생각나지 않고.. 드디어 이 값비싼..(생각해보니
이 가격이면 우리나라의 6000원짜리 삼겹살이랑 별 값 차이가 없을 듯.)
요리가 나옵니다. 물론 혼자 가서 시킨 식사이니 돼지 한마리가 통째로
턱.. 하니 나오지는 않고.. 스테이크 크기만큼 잘라져서 한 접시가 나옵니
다. 황금빛으로 잘 구워진 껍질이 위로 향하고 있고.. 부드러운 지방과
살이 잘 구별도 되지 않을만큼 녹아들어 아래에 붙어있습니다. 바삭바삭
하면서도 졸깃졸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은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
베이징덕이니 뭐니 하는 비싼 것들은 먹어본 적이 없어 감동하면서 먹습니다.
이제 마드리드를 거쳐 피레네 산맥으로 향하기만 하면 되나.. 여기까지
온 김에 인근의 똘레도도 잠시 들리기로 합니다. 똘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남쪽, 즉 까시띠야 이 라만차 주의 북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라만차.. 많이
들어보신 이름이죠? 네, 돈끼호떼가 살던.. 바로 그 라만차입니다.
메마르고 인구밀도도 낮은 이 라만차 주에서.. 전 북쪽에 치우친 유명한
관광도시라 할 수 있는 똘레도에만 잠시 들렸을 뿐이니 라만차.. 를 안다
고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크기가 남한의 네배나 되는 스페인을.. 석달
동안 모두 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라만차를 포함해서.. 스페인의
절반 정도는 다음 기회에 탐험할 곳으로 남겨둡니다. 아직은 젊고.. 남겨
진 인생은 기니.. 언제라도 또 올 수 있을거라 믿었습니다.
똘레도.. 는 그 이름만으로도 중세 스페인의 문명의 상징입니다. 이 곳에
번역소가 설치되고 수많은 아랍과 기독교 학자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기독교 세계에서는 잊혀져서 아랍어로만 남겨진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과
아랍의 선진 과학기술 서적들을 번역해 기독교 세계에 소개했습니다.
이슬람의 메스끼따와 유대교의 시나고가, 그리고 기독교의 교회가 어색하
지 않게 공존하던 곳.. 지금도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잘 남겨진 중세의
거리들 외에 이곳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엘 그레꼬가 이 도시의 여기저기에 그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지요.
흔히 벨라스께스, 엘 그레꼬, 그리고 고야를 스페인의 3대 화가라고 하지요.
(물론 현대로 오면 피카소나 달리.. 도 있겠습니다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이들을 까딸루냐의 화가로 여기지 스페인의 화가로는 인정하지 않을 것 같
습니다.) 제 또래의 젊은이라면.. 벨라스께스의 궁전풍, 혹은 엘 그레꼬의
종교풍 보다는 고야의 처절한 시대정신과 자아몰입에 빠질 확률이 높겠지만
스페인 곳곳에서 이들의 흔적을 발견하며 그림을 맞대는 것은 화집으로
쓰윽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는 또다른 감동을 줍니다.(저야 뭐, 미술에 문외
한이라..)
엘 그레꼬에 대한 저의 원래 감정은.. 페인트화 같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페인트 화공이 벽에 그린 그림을 기억하시는 지요. 강렬한 색상,
그리고 검은색의 외곽테두리... 그리고 길쭉하게 늘어진 인물들...
어쨌거나 신앙심이 철철 넘치는 주제들에 한국에서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화가였는데(하긴 뭐, 미술 전반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요. -.-;;) 스페인에
오니 어느 성당, 어느 수도원, 어느 성에 걸려 있어도 아, 얘는 엘 그레꼬가
그린 거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으니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
똘레도에는 그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집은 물론이고
그 유명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도 이 곳에 있지요.
(단 이 그림 하나만 보기 위해서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
엘 그레꼬는 문자 그대로 ''''''''그리스인''''''''이란 뜻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스페인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웬지 외로웠을 것 같습니다.
상당한 댓가를 받았지만.. 혼자서 저녁을 먹을 때도 음악가를 불러 옆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하는 등 낭비가 심해.. 결국은 가난한 외톨이로 생을 마감
했지요. 같은 이방인으로서.. 웬지 그의 외로움이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 똘레도 전경. 건물이 늘었다 뿐. 현재의 똘레도도 아, 여기구나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Laocoon. 엘 그레꼬 양식이 어떤 건지 잘 보여줍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이 그림 하나를 보러 천원을 내라면 내실런지.. ^^
먹는 얘기를 너무 안한 것 같군요. 혼날라.. 똘레도에서는 메추라기였던가..
아니.. 뭔가 이름이 아주 독특한 야생조류였던 것 같은데.. 하여간 이걸 먹습
니다. -.-;; 그리 크지 않은 새 두마리가 다정하게 접시 위에 놓여있고 멕시코
의 몰레 풍에 가까운 소스가 곁들여줍니다. 연하디 연한 뼈들을 사정없이
씹어먹어줍니다. 애도를 표하며 와인도 한 잔. -.-;;
똘레도는 인기 관광지입니다.(마드리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유가 큽니다.)
그리고 전 스페인을 통틀어 일본어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인
에게 인기 있는 탓인지 모든 관광용품점들마다 일본어 간판이 다 붙어 있고
일본어로 말을 걸어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지요.
하지만 대개의 관광객들은 오전에 단체 관광버스로 몰려와서 몇 시간을 머물
다 사라질 뿐.. 몇일 머물다 보면 꽤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언덕위에 앉아 있는
작은 도시.. 해질녘엔 언덕 아래 벌판이 석양에 붉게 물듭니다. 관광중심지에
서 조금만 빠져나가면 도시의 뒷쪽 벽을 만납니다. 뒷 편 아래론 아름다운 강
(이름이 과.. 뭐였더라. -.-;;)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정말 잔잔하지요.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나가도 좋습니다.
관광객들에게 빼앗겨버린 도시 같지만.. 해가 질 즈음엔 이미 도시는
똘레도시민들의 수중으로 되돌아옵니다.
똘레도라고 축제가 없을 리 없습니다. 똘레도의 성체절 축제는 3대 축제에
맞먹는 명성이 있습니다. 제가 도착했던 즈음도 마악 축제가 시작하려는
찰나.. 저녁이 되니 거리 여기저기서 음악회가 열리고 시민들이 모여듭니다.
저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옆자리의 노부부가 말을 걸어옵니다.
역시나 모든 화제는 결국 자식들, 손자들 자랑으로 빠지고.. 도시에 나가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큰아들 얘기.. 보스니아에 파병나가 있는 막내 아들
걱정을 합니다.(스페인의 의무 복무기간은 11개월입니다.)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 저녁은 먹었냐길래 아직 안먹었다고 하자 갑자기 할아버지는
총총히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2부가 시작되고도 20분이 지나서야 도착하신
할아버지는 음악회가 끝나자 돌아가서 먹으라고 비닐봉지를 내미십니다.
속에는 집에서 만들어 하몽과 토마토가 든 보까디요 하나와 바나나 하나,
그리고 음료수가 들어 있습니다. 아들뻘 되는 외국인 총각 하나가 타지에서
배나 곪고 있지 않은지 걱정이 되신 모양입니다. 그냥 눈물이 맺힙니다.
대낮에 잠시 다녀갔으면 짜증스런 관광지로 남았을뻔한 똘레도가 조상들로
부터 물려받은 집에서 수백년을 살아오며 자식들을 키우고 가족들을 지켜낸
사람들의 도시로 다시 다가옵니다.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옵니다. 이모부가 스페인에 계시던 시절 친하게 지내
셨다는(은행원인 이모부는 아르헨티나 지점에 파견을 자원. 스페인어 하나
도 모르시면서 스페인에 보내져 공짜로 11개월이나 연수를 받으셨댑니다.
그 시절 주로 하시던 건 골프. -.-;; 아르헨티나에서 3년 근무하고 돌아오
셨는데.. 스페인어는.. 뭐.. 저보다 좀 못하시더군요. 이런 것 보면 은행원
도 할만한 직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식당의 사장님을 찾아가
(태권도 사범으로 홀홀단신 건너와 성공하신.. 뭐 그런 스토리입니다.)
필요없는 짐은 다 맡깁니다.(줄창 걸어야 하기에.) 공짜밥도 먹여주신 그
분이..(지중해산 홍어로 만든 홍어무침 같은 거.. -.-;; 한식당은 비쌉니다.
비빔밥도 만오천원. 가장 싼 볶음밥도 오천원. 김치 한 접시에 삼천오백원
입니다.) 작년에 까미노를 다녀오신 한국에서 파견된 예수회 신부님을 한
분 소개시켜 주십니다.
꽤 많은 도움을 주신 정신부님께..(그 수도원에서 단촐한 미사도 같이..
여러 나라에서 오신 십여명의 수도사들이 한꺼번에 여정의 축복을 빌어
주는 기도를 해 주시는 일이 어디 흔한가요? ^^ 그리고 대체로 신부님들이
밥도 잘 합니다. -.-;) 싸구려 카메라를 하나 빌립니다.(거의 강권하다시피..)
검은 플라스틱제의 싸구려이긴 하지만.. 셀프타이머 기능도 있어 결국 저도
사진을 찍게 됩니다.(자기 사진은 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거의 셀프로.. )
그 분이 신으시던 두꺼운 양말 같은 것도 고스란히 얻고..(이거 없었으면
혼 났을 듯.) 싸구려 침낭을 하나 산 뒤...
밤차를 타고 다시 산세바스티안으로 향합니다. 빠이스 바스꼬에 있는 이곳은
스페인의 북쪽 해안에 있습니다. 스페인 식도락의 본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구 이십여만의 도시인데..(이곳에선 남자들로만 구성된 아마추어 미식가 클럽 같은
곳들이 조직되어 직접 요리를 개발하고는 한댑니다. - 그냥 들은 얘기.) 하지만
바스크 요리를 먹는 건 다음 기회에나. 도대체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바스크어
도로 표지를 지켜보며 밤차에서 언 배를 움켜잡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가면서
그날 저녁께 드디어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론세스바예스의 유서깊은
수도원에 도착합니다.
스페인쪽에서 도착하는 사람들은 깨끗한 방수자켓에 반짝이는 트레킹화를
신고.. 반대로 이미 프랑스쪽에서 산맥을 넘어 온 사람들은 진흙을 잔뜩
묻힌채.. 수십명의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모여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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