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
- 영화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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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프렌치 디스패치]



영화의 구성은 잡지의 구성을 따르고
영화 장면들은 고퀄의 잡지 사진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처럼 보이며
장면 연결, 즉 편집의 리듬은 독자가
잡지의 페이지를 넘기는 방향성 및 속도감과 유사하다
구성은 다음과 같은데 5는 맨 앞의 0과 다시 연결된다

0. 오프닝
1. 지역색(Local Color) 섹션
2. 예술과 예술가 섹션
3. 정치와 시 섹션
4. 맛과 냄새 섹션
5. 쇠락과 사망 섹션

각 섹션의 내용은 외부인이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가지는 판타지인 예술(미술, 천재화가),
68혁명, 음식 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화면상의 시각 정보와 내레이션(=기사문)을 통한
청각 정보가 너무 많고 그 둘 간의 대응 또는 반어 구조까지
이해하려면 한 번의 감상으로는 안 되는 영화다
놓친 부분 흥미로운 부분을 돌려가며 여러 번 봤다
스타 배우들이 등장하는 2와 3의 비중이 크지만
보들레르풍의 시적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진
간결하고 풍자적인 도시스냅숏인 1과 멜빌 스타일의
범죄느와르에 요리/셰프라는 모티브를 결합한 4가 가장 비범하다
4에 활용한 애니메이션은 전형적인 프랑스 애니메이션으로
어릴 적 드물게 접했던 프랑스산 그림이야기책,
예를 들자면 내 경우 르네 고시니와 장 자크 상페의
<꼬마 니꼴라>의 그림체와 그런 것들이 심어준,
같은 서양이라도 ‘아메리칸’과는 분명히 달랐던
‘프렌치'의 인상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며 염두에 둔 잡지는
그의 청년기에 영향을 주었다는 뉴요커 지라고 한다
나는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에서
겨울날 난롯가에 네 자매가 모여 만들던, 일종의
디킨즈풍 문학놀이였던 피크위크 주간신문이 떠올랐다
문학 못지않게, 아니 문학 이상으로 문학적인 비평 언어로
영감을 주곤 했던 몇몇 필자들과 인생 잡지들도 이 순간 떠오른다
세트 사물배치 구도 색감 타이포그라피 등 쏟아지는 미술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내레이션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리모컨 앞뒤로 돌려가며 마구 받아적었다
기념으로 위대한 셰프에 대한 기획기사인 4에 나온
로벅 라이트 기자의 맛에 대한 표현을 몇 개 옮겨본다
우선, 경찰청장 전용식당 수석셰프인
네스카피에 경위의 디너코스 1단계로
주방에서 서빙된 칵테일에 대한 묘사

“희뿌연 자줏빛 식전주
맹렬하게 향긋하여 약효를 뽐내는 듯
아스라이 나른하며
야영지와 교실에서 쓸 법한
진공 플라스크의 축소판 같은 잔에 담긴
얼음장처럼 찬 점성체가 주문을 건다
이어지는 60초의 공백을 산산이 깨뜨릴 주문이었다”

식사중 갑자기 전화가 오고
경찰서장 아들 납치사건이 터진다
구출 작전의 일환으로 납치범들에게 간식을 갖고 간 셰프는
적들 앞에서 맹독이 든 음식을 시식한 후 죽었다 살아난다
적들과 달리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자의 서술에 따르면
“계절을 거듭하며
기름지고 간이 센 각종 요리와 소스로
철저하게 단련된 초인적인 위장 덕이었다”

다음은 기자 앞에서 셰프가 고백하는 대사

“풍미가 있었습니다
무에 들어간 맹독 소금에...
풍미가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맛본 풍미
쓰고 꿉꿉하고 알싸하고 매콤하고 기름진
흙의 풍미
그런 맛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딱히 유쾌하지도 않고
맹독성이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풍미였습니다
내 나이엔 아주 드문 일이죠”

셰프가 말하는 흙의 풍미는 곧 죽음의 맛이었을 것이다
이에 기자가 말한다

“경위님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셰프의 답변

“용감한 게 아닙니다.
전 그저 모두를 실망시키기 싫었을 뿐입니다.
전 외국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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