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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위니프레드 바그너의 고백 1,2부]
원제:
Winifred Wagner und die Geschichte des Hauses Wahnfried von 1914-1975
(위니프레드 바그너와 반프리트 하우스의 역사 1914년부터 1975년까지)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 감독
1976년
1,2부 도합 약 300분
유튜브 영어자막

리하르트 바그너와 코지마의 며느리이자
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총감독이었던
위니프레드 바그너의 닷새간 인터뷰를
5시간 분량으로 영화화한 지버베르크 감독의 작품
인터뷰 당시 위니프레드는 78세..
30년간의 침묵을 깬 공개적 발언이었다고 한다
마침 토니 팔머의 TV시리즈 ‘바그너’를 통해
바그너의 일대기를 대략 훑어본 다음이라 그 연장선에서
바그너 사후 오늘날까지 바이로이트를 지켜온
바그너 가문에 대해, 특히 20세기 바그너 가문과
아돌프 히틀러의 문제적 관계에 대해
살필 수 있는 흥미롭고 유익한 텍스트였다
지버베르크 감독은 자신이 위니프레드와
다른 편에 서 있음을 드러내면서도
그녀를 충분히 존중하는 시선을 취한다
영화를 통해 본 위니프레드 바그너는
이조시대 양반 가문의 식솔을 이끌던 종부의 이미지를 가진,
유능한 경영자이며 독립적인 여성이자
놀랍도록 역사의식이 전무한 호러블한 인간이었다
요컨대 그녀는 나치였고 히틀러 숭배자였으며
인터뷰 내내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인간에게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면 히틀러에 대한 그녀의 견해와
그러한 시선으로 박제된 인간 히틀러의 일부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을 위해 영화 속 위니프레드 바그너의 증언을 요약해 본다
그녀는 영국 태생으로 1914년 바이로이트로 건너온 뒤
리하르트 바그너와 코지마의 아들 지그프리트와 결혼했다
지그프리트와는 28살의 나이 차이가 났다
바그너가 죽고 난 후 가문에 들어왔기에
바그너와 생애가 겹치지는 않으며
시어머니인 코지마와는 사이가 좋았다
코지마의 죽음, 그리고 남편 지그프리트의 이른 죽음 후
위니프레드는 남편의 누이들을 제치고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책임자이자
가문의 저택인 반프리트의 주인이 된다
열광적인 바그너 애호가로
바이로이트와 반프리트를 꾸준히 찾았던 히틀러와는
나치당이 부상하기 이전인 23년부터 알고 지냈고
45년까지 친분을 유지했다
1차대전 이후 중단된 바이로이트 축제는 24년에 재개되고
2차대전 중에도 히틀러의 지원 아래 축제는 계속된다
전쟁 중 바이로이트 극장 자체는 손상이 없었던 반면
반프리트는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고
게스트하우스는 한동안 미군이 머물다 가면서 황폐해졌는데
위니프레드는 이를 옛 사진과 전쟁 직후 사진을 비교해 보여준다
딸 프리들린트가 어린 시절
괴벨스의 무릎에 앉아 있는 사진도 보인다
프리들린트는 훗날 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미국으로 떠나 나치를 비판하는데
영화 속에서 위니프레드는
‘그 아이는 늘 자기가 대단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뭔가를 제대로 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비난한다
위니프레드는 전범재판소에 기소되어 나치 부역 혐의로
바이로이트 축제와 유산을 관리하는 것이 금지되고
근신 처분을 받는다 그리고 축제에 대한 권한은
아들 빌란트와 볼프강에게 위임된다
초기에 빌란트는 예술 쪽, 볼프강은 행정 쪽을 담당했다
그때부터 위니프레드는 축제에 관여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51년부터 축제를 이끌며 동생 볼프강과 함께
히틀러의 흔적을 지워나가고자 했던 아들 빌란트에 대해서는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끌어내렸을 뿐’이라며 비판한다
그녀는 자신이 국가사회주의자였음을 부인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히틀러의 인간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히틀러와의 관계에 있어 그의 정치적인 부분과
그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분리할 수 있다고, 즉
자신이 아는 히틀러와 요즘 사람들이 그의 탓으로 돌리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히틀러가 나치 정권을 위해 바이로이트 축제를
악용했다는 비판은 말이 안 되며
오직 바그너의 팬이자 가문의 친구로서
바이로이트를 찾았을 뿐이라고 한다
또한 괴링, 로젠베르크 등 나치 간부들도
히틀러를 따라왔을 뿐이고 이러저러한 단체들이
바이로이트를 방문한 총통의 얼굴을 보겠다고
몰려들어 환호하던 순간들을 증언한다
히틀러는 오후에 극장으로 출발해 대여섯 시간되는
이를테면 신들의 황혼을 보고 돌아와
새벽 서너 시까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정오경에 일어나 가족들과 점심을 함께했다고 한다
축제 기간이 아닐 때도 히틀러는 이곳을 찾았는데
여기서 가족의 일상을 누리며 휴식을 취했으며
아이들에겐 좋은 삼촌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살아서 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언제나 그랬듯 그가 여기에 있고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지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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