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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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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런던 빠리 여행기-.. 빙자 잡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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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런던 파리 여행기-...빙자 잡담>
-주향님 도미 기념으로 바칩니다! ^ ^ 연말 특집 여행기.
12월 19일부터 6박 8일간 런던과 파리와 홍콩이라는 그럴듯하지만 실속은 하나 없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주향님 떠나시고 바로 출발이었던지라 석별의 념에 젖을 틈도 없이 여행객들의 스산한 가방들 틈에 서있었습니다. 전날까지도 세액공제와 각종 연말 결산에 따른 시시한 종이들 틈에서 관할 공공기관의 직원들과 다투고, 친인척들 거의 모두에게 쉬쉬하며, 난삽하게 밀린 일들로 발등을 활활 태우다가.. 스파이처럼 떠나야했습니다. 뭣 때문에 나갔느냐구요. 결혼 ** 주년 기념차였습니다. 물론, 아는 분들, 배아프시라고 쓰는 말이지요. 안 그렇다면 제 배가 아플지도..(-_-;; )
2년 전 신혼여행으로 갔던 호주의 골드코스트가 생각납니다. 트레머리(이 새색시 머리를 뭐라고 해얄지 모르겠습니다)를 풀지도 못한 채 10시간 가까이 날아가 만난 호주는 비참할 지경으로 더웠습니다. 긴 긴, 공항 근처 도로들의 길고 고독한 길들을 달릴 때 만났던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차량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컨테이너 박스안에 뭐가 들었었을까? 제 상상의 대상은 갈고리에 매달린 긴 소들입니다.
이상하게도 제게 이국적인 풍경이란 다름 아닌, 대형 할인매장에 진열되던 수입산 품목들의 광활한 태그들을 기억하는 일로 둔갑한 지 꽤 오래되었지요. 그 가격표들은 원산지,라는, 지극히 외국?스러운, 이국적인, 타향이라는 표식을 달고 아침이고 밤이고 생활속에서 마주치는 나그네들이었는지라..
호주의 도로를 달릴 때 주렁주렁 매달려 가던 쇠고기들이 막막히 떠오른 것은 낯선 땅에 대한 나름의 화학반응이겠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가끔 왕가위 감독이 ‘해피투게더’에서 회귀 못하는 홍콩 게이였던 양조위가 떠돌이하던 타국으로서 그 차가운 고깃간을 설정했던 장면에 경탄합니다. 닐조단의 ‘푸줏간 소년’에서 그토록 ‘난 이방인이야’를 외쳐댔던 소년의 고독의 실체는 모르지만, 어쨌든 푸줏간이었어야 했다는 사실에도 저는 동의합니다. 길게 매달린 쇠고기야말로, 참 낯선 외국으로 다가온다는 이 불가해한 느낌은 무엇이랄지.... 혹시 인간 쇠고기 살을 뚝뚝 잘라놓았던 베이컨 그림을 너무 오랫동안 쳐다봐서 그런걸까요..? 복합적인 개인의 역사 속에서 한 순간 마주치는 감정의 잔상을 납득이 가도록 설명한다는 것은.. 참 괜찮은 예술가들이나 해내는 일일 듯...
브리즈번 행 호주 퀀타스 항공의 낡은 경비행기를 탔을 때 남편은 바다가 띠로 둘린 지상을 보며 바이얼린의 현같다고 하더군요. 지극히 무거운 엉덩이와 중력의 절대적인 안정성을 희구하는 신경증 환자에게 경비행기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묻지 마세요. 바이얼린의 현이라구.. 케네디 2세와 케롤린 베셋을 두 알의 사과처럼 떨어뜨려 죽인 그 경비행기가 제게는 모든 경비행기의 이미지였을 뿐... 백번 양보해서 바이얼린과 연관짓더라도 지넷 느뵈가 빠져죽고 그녀의 추종자역시 사라졌던 그 바다위의 비행만이 이미지로서... 그 ‘현’들이 정상적인 ‘사람드나드는’ 길로 변할 때까지 사지를 바짝 오그리고 있어야했다는..
이번 런던과 파리에서는 호주에서, 그리고 그 이전 어느 나라, 어느 지방가는 고속도로에서든 마주쳤던 ‘컨테이너 트럭 안에 매달린 소들’에게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소들 대신에 여자들과 석고상들과 그림과 꽃 가게들이 보였고, 다리위에 부는 바람과 여행객들-그것도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단, 그렇다고 해서 런던의 괴이한 을씨년스러움까지 소들과 함께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났던 숱한 아랍 청년들은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의 고든 와르넥을 늙혀놓은 형상이었고, 백인 여자들은 엠마 톰슨에게 후줄근한 양장을 입혀놓은 품새였으며 백인 남자들은 풀몬티의 캐릭터들이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는 모양처럼 보이더군요. 쓸쓸하고 고루하며 축 쳐졌으되 묘하게 긴장된, 무표정하고 과묵한 사람들과 거리였습니다. 그 도시에 살고 있지도 않고, 오래 있어보지도 못한 주제에 호텔을 왔다 갔다했던 시간이 밤 늦은, 혹은 새벽이다보니 그렇게 되었던가 봅니다. 차가운 날씨를 저주하던 제가 활기를 비껴갔는지도 모르죠. 사람들과의 대화는 재미없없고, 오직 한 명만이 무한한 호의를 표명했으니, 그는 대영 박물관 앞 버트란드 러셀 거리에서 헌 책 방을 열고 있던 한 남자였습니다. 파운드의 위세에 눌려 피죽으로 연명하다가 만난 그 대형 헌 책방은 장서 오만권 이상을 두 서너 가게에 나눠서 열고 있었는데 떨리는 손으로 9권을 고르자 ‘한권’을 덤으로 주더군요. 사실 덤으로 받고 싶었던 것은 존 르 까레가 아니라 수잔 윅스의 신작 로맨스 소설이었거늘..(어째서 에이본 페이퍼백 주제에 하드커버보다 3파운드나 비싸단 말이...) 어쨌든 옆에 있던 사람은 몇 년 동안 먼지쓰고 들어앉았던 물건이 나가서 속시원한 김에 선물을 줬을 것이라는 말로 저의 ‘공짜’에 대한 흥분을 눌렀습니다. 그런 후에 중국인 거리에서 도무지 뜻을 알 수 없지만 유명하다는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한 점만을 먹고 다 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돼지 내장’이라더군요. 아.. 지금도 음식에 대한 무지로 인해 온전히 기능하지 못했던 저의 후각에 감사할 뿐입니다.
다음날, 대영 박물관에서 제임스 루이스 경이 그린 조지왕의 와이프 샬롯테 공주의 초상화에서 넋을 잃었습니다.
꺼질 듯 섬세한 선으로 미묘한 뉘앙스의 품위를 담아낸 전신상인데 조지왕이 결혼 선물로 줬다는 진주 팔찌와 공단 구두를 신은 조그만 발이 어떤 굳건하고도 암묵적인 계급적 질서와 이 질서에 협착된 여성의 매력을 화사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샬롯테 공주는 흔히 말하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화가가 살려낸 부분은 왕족에게 배인 순도 높은 가냘픔이더군요. 초상화의 얼굴에서는 사고력의 그늘이 스며 있었건만 신체 어디에서도 노동의 흔적을 찾을 길 없는 증발된 근육들과 근육의 집인 드레스만이 증류수처럼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수많은 아름다움의 갈피들 중에서 유독히 가냘픔에, 무너질 듯 꺼져가는 연약함에 사정없이 현혹되는 어떤 눈이라면, 반드시 이 ‘우아하지만 가당찮은 계급의 매혹’을 느끼리라 봅니다. 저야 물론 사정없이..그 증류되는 느낌속에 고스란히...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11월 세 주간에 걸쳐 15세기에서 19세기에 그려진 여성 초상화들의 의미를 탐색하는 코스강좌가 열렸다고 하더군요. 입맛을 다시며 무릎을 쳐대는 저에게 옆사람은 ‘잘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코스 강좌비가 40파운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말이죠. 흠...-_- (본인은 여행이 고되질까봐 걱정되어서라고 해명을..)
트라팔가 광장에서 우연히 탄 버스가 한량없이 어느 외진 길로 가는가 싶더니 Hackney street라는, 관광객과 무관해보이는 골목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역시나 예의 ‘늙어보이는 고든 와르넥’ 청년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 이후로는 정말로 다 귀찮아지고 런던탑까지 칼바람을 맞고 걷고 싶다는 대책없는 낭만자객의 기분을 맞춰줄수도 없었지요. 그 밖의 일이라면, 퀸토 서점에서 샀던 책 한 권이 나중에 홍콩에서 사면 2파운드 가량 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격분했다는...-_-
빠리의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에서는 비와 사람과 다리아픔에 시달렸다는 기억이 가장 강합니다. 오르세 뒷 골목의 카페 콰지모도에서 알랭들롱과 꼭 닮은 주인아저씨에게서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나고 비가 한량없이 내리는 거리의 한 근사한 악세사리 가게에서 ‘하마터면’ 브로치를 살 뻔 하였으나 옆사람의 냉정한 한 마디로 그만두었습니다. 브로치 가게 주인은 캐나다와 파리에서 쥬얼리 샵을 운영하는 이야기며 한국인 친구에 관해 수다를 떨더니 갑자기 남한이 공산주의국가인지를 묻는 분열증적인 행각을 벌이지 뭡니까. 장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르세 앞 거리처럼 각종 인종이 득실대는 곳에서는..
이번 빠리는 제게 ‘할머니들’로 기억될 듯 합니다. 정확히는 중년의 나이 이후의 여자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상당히 많은 이 나이대 여성들이 독특한 화장과 안정된 멋을 추구하였고 말끔하게 머리를 손질하고 고도로 길이든 모피코트를 척척 입어내고 있더군요. 장갑과 우산과 가죽 구두는 보기좋은 앙상블을 이루었고 체형이 제멋대로였음에도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상당히 여성스러웠습니다. 얼굴과 입가에 활력이 넘쳤고 스타일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와 체형에 대한 고려가 ‘객관적으로도’ 기분좋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쾌활하고 호의적이었는데.. 하긴 상제리제 거리에서나 알짱거렸으니 당연하지..
홍콩으로 오는 비행기안에서 프로그래머라는 프랑스 여성 줄리와 옆자리였습니다. 거의 지구 반바퀴를 돌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재혼한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이더군요. 남자친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랍니다. 여행에서 로스트 하이웨이를, 푸줏간의 소들을 보는 제게 그녀는 하나의 다른 도시를 감촉할 수 있는 단어들로 말해주었습니다. 남불 니스 근처에 사는데, 여름의 정원, 화원이라는 이름으로 그 곳을 부른답니다.
글쎄요. 여행에서 무엇을 얻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엑스께지무아, 하며 다가서던 동행자의 성실한 얼굴을 새로 발견한 일도 그 하나가 될거에요. 아니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처럼 호텔의 창가에 앉은 새벽의 여자들을 여행지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으로 발견할지도 모르지요. 단지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마음속의 로스트 하이웨이를 정말로 로스트해버리고 소들에게도 굿바이한 후, 긴 긴 고속도로를 생각없이 달려서 근심없이 돌아오는 겁니다.
ps. 샹제리제 거리 ‘퀵Quck' 햄버거 매장내의 화장실에 갇혔다가 점원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문이 고장나 생긴 일이었는데 고소공포증에 이은 폐소공포증 환자에게는 고혈압을 일으킬만한 일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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