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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하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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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스페인 기행문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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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그렇게 또 이틀이 지나고 다시 그라나다로 이동합니다.
알암브라가 있던 그 그라나다, 이슬람의 마지막 왕국이 항전하다
결국 1492년 항복함으로써 이베리아가 완전히 기독교인에게 재통일
되는 그 그라나다입니다.
여기도 역시 축제더군요. -.-;; El dia de la cruz 십자가의 날..
꼬르도바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길에 한국인 아가씨 한명이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탔습니다. 이 아가씨.. 스페인을 단 일주일만에 가로지르는
초 스피디한 여행을 하던.. 당시 29의 누나였는데.. 애석하게도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데다가 여자 혼자라는 두려움도 있어
스페인에서 바를 한 번도 안 갔을 정도로(그럼 도대체 어디서
먹고 마셨는지) 스페인의 맛을 느낄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식사는 그림이 붙어 있는 세트메뉴가 있는 관광객용 식당
에서.. 감자튀김과 고기구이가 나오는 그런 곳.. 세계 어느 나라던 그렇
겠지만 음식사진이 큼직큼직하게 식당 밖에 붙어 있고 손님은 오로지
외국인 뿐인 이런 식당들이 맛있긴 힘듭니다.
저도 당시 스페인 있은지 이주밖에 안되었지만... 그래도 고참티를
조금 내며... 방을 잡아주고.. 그 날 저녁 바에 모시고 갔답니다. ^^
술을 시키고.. 두 접시의 따빠를 시켰습니다. 하나는 볶은 햄과 habas
(이건 콩의 일종인데.. 누에콩인가? 하여간.. 스페인에선 꽤 대중적인
큰 콩의 일종입니다.) 또하나는 그냥 하몽 세라노. 근데 이 아가씨,
생고기는 못먹겠다고 하몽을 먹기를 거부, 조금 상처입었습니다. -.-;;
여기서.. 따빠와 스페인의 바에 대해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스페인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런 스페인식 바에 대해서 일부러
Tapas bar 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스페인에서
이런 표현을 굳이 쓰지는 않죠. 우리가 김치를 Korean 김치라고 부르지
는 않듯이.
바란 .. (이런 얘기까지는 너무 당연한 얘기죠?) 일반적으로 술과 간단한
음식, 그리고 커피를 파는 곳을 말합니다. 일단 바에 들어가면 당연히
긴 바가 보이고 바에는 몇가지 술을 따르기 위한 꼭지와 그리고 안주류의
여러 재료들이(혹은 반조리된 음식들) 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시스템과 좀 비슷한 것 같네요. 물론 하몽이나 초리소 등은 뒤에 주렁주렁
걸려있고. 바에 따라서 의자가 몇개 있습니다만.. 앉아서 마시는 경우보다
는 서서 마시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테이블은 네개 이하고.. 즉 한 바에
좌석수가 20개를 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동네 바 규모라면) 앉아서 술
이나 커피를 마시기 보다는 대개 서서 마시게 되니까요.
낮에는 주로 커피를, 밤에는 주로 술을 팝니다만 이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때문이고 낮에 술을 마시든 밤에 커피를 시키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스페인 커피는 단 세가지 단계로 팝니다. Cafe solo, cortado, cafe con
leche. 까페 솔로는 말 그래도 에스프레소, 꼬르따도는 에스프레소보다
2배쯤 되는 소주잔 모양의 유리잔에 커피와 우유가 반씩 타서 나옵니다.
이정도도 꽤 진합니다. 까페 꼰 레체는 큰 커피잔에 우유가 커피의 3배
정도로.. 이탈리아식 까페라떼나 프랑스식 까페오레와 문자적으로는
같은 뜻이죠. 여기에 자신이 원한다면야 꼬냑이나 아니스, 진 등 뭐든지
타 달라고 하면 되구요..
전 술은 대개 아침에 해장커피로만.. ^^
커피는 보통 100뻬세따(칠백오십원 정도)나 125뻬세따 정도.. 였나?
낮시간 동안에는 바에 가볍게 간식을 먹거나 끼니를 때우러 오는 일도
많습니다. 이 때 많이 먹는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보까디요나.. 그리고
또르띠야.(Tortiila) 또르띠야라고 하면 아니, 그건 멕시코나 중미에서
많이 먹는 옥수수 가루를 부친 전병 같은 거 아냐? 라고 물으시겠지만
스페인에서 또르띠야란 오믈렛을 말합니다. 스페인에서의 스페인어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아시다시피 스페인에서는
4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스페인어는 그 중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 재정복 과정에서 통일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 까스띠야어를 말합
니다. 그 외에 까딸루냐와 발레아레스 제도에선 까딸루냐어, 갈리시아에
선 갈리시아어(포르투갈어와 흡사), 바스크 지방에선 바스크어가 공용어
로 사용됩니다.)와 중남미에서의 스페인어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많죠.
스페인에선 자동차를 대개 coche라고 하는데 이건 과테말라에선 돼지를
뜻합니다. 제가 '돼지는 어디서 탈 수 있어요?'라고 한셈이니 얼마나 웃었
겠어요?
다시 또르띠야 이야기로 돌아서서.. 오믈렛이긴 하지만 우리가 브런치때
먹는 그런 오믈렛과는 아주 틀리답니다. 감자를 많이 넣고 마치 카스테라
처럼 구워낸 오믈렛이라고나 할까요? 높이가 대개 수센티 혹은 그 이상
넓이는 피자 정도의 크기로 구워냅니다. 그리고는 손님이 주문하면 케이크
자르듯이 조각으로 잘라주는거죠. 스페인 전역에서 먹히는 단순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자를 넣은 게 가장 기본
이지만 참치나 햄 등 다른 재료를 넣기도 하구요..
<연출된 조리예.. 가 별로 맘에는 안듭니다만>
그냥 간식용으로도 먹고 술안주로도, 그리고 보까디요를 만들어서도
많이 먹는답니다.
그리고 바는 바, 반드시 술을 팝니다. 가장 중요한 술은 맥주와 와인이겠죠,
물론, 리큐르나 증류주류의 다른 술도 물론 팝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부터.. 일단 맥주부터 시작합시다.
전 솔직히 스페인 사람들이 병맥주 마시는 걸 본 기억이 없습니다.
(슈퍼에서 파니 집에서 먹기야 먹겠죠. ^^) 어쨌거나 바에서는 당연히
생맥주를 마시고 이 바가 전국 방방곡곡에 없는 곳이 없으니...
거리에서 마시고 싶을 때도 잔채로 들고 나오는 일도 많고.. 또 테이크
아웃 수요가 많은 곳에서는 1회용 컵에도 담아줍니다.
상표는 제 기억으로는 산 미겔(San Miguel) 하나 밖에 본 기억이 없는데
더 있으려나.. 스페인의 건조한 공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청량한 라거입
니다. (제 기분으로는 스페인이나 멕시코처럼 건조하고 더운 곳일 수록
라거가 잘 어울리는 듯. '날도 덥고 온 세상이 녹아내리는 듯 하니 에일
한잔 하세.' 이런 건 어색하잖아요? ^^)
저처럼 술 약한 사람은 Clara로 주문하면 맥주 반에 탄산수 반을 타줍니다.
이렇게 마셔도 좋답니다.
맥주는 보통 Copa와 Tubo 두 단계로 팔고 보통 Copa 보다 더 큰
Copa Grande로 파는 곳도 있습니다. Copa는.. 음.. 보통 와인잔으로
쓰는 그런 잔 모양에 훨씬 폭이 넓고 깊은 그런 잔이고 Tubo는 보통
우리의 맥주잔 모양의 그러나(Tubo 자체가 파이프, 관 이런 뜻입니다.)
더 긴 잔에 나옵니다. Tubo의 양이 좀 더 많죠.
동네 바의 일반적 가격은 Copa가 125뻬세따, Tubo가 150 뻬세따입니다.
(대략 천원 정도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와인도 바에선 거의 잔으로 팝니다. 그냥 그 동네의 양조장에서 적당히
받아온 것들이죠. 한 잔에 역시 맥주와 비슷한 가격 정도에 팝니다.
그냥 Tinto (적, 사실은 검은, 먹물, 잉크 이런 뜻이지만)인지 blanco(백)
혹은 Rose인지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와인 또한 더 큰잔으로도 주문
가능할 테구요. 와인을 데울 거든지, 혹은 뭘 탈 거든지 하면 미리 말씀
하시고..
병으로는 .. 글쎄요. 이렇게는 바에서보다는 레스토랑에(많은 레스토랑
이 바 또한 운영합니다. 바 또한 레스토랑을 겸하는 곳이 많아 저렴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많구요. 아, 설명을 안드린 것 같군요. 식당에는
Restaurante와 Comedor 두가지가 있습니다. 꼬메도르는 대중 식당인
반면 레스따우란떼는 좀 비싸고 격식을 갖춘 곳이죠. 바에서 겸업하는
곳은 대개 꼬메도르가 많습니다.)서 드시는 게 더 일반적일 듯. 바에서는
그저 잔술이..
스페인 사람들은 한 바에서 오래 취하도록 마시는 일이 잘 없습니다.
각 바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특기로 내세우는 안주도 다르고 술맛도
다르고 하다보니.. 한 번에 한두잔만 마시고 또 다른 바에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스페인 애들과 6번까지 옮겨봤네요.
저긴 대합이 일품이야. 저긴 생선구이 전문점이지. 저기 병아리콩 볶음
도 별미지. 새우와 문어가 싸다구. 갑오징어 볶음이라면 저기, 이틀동안
숙성된 상그리아가... 이러면서
자꾸 옮여다니게 되는거죠. ^^
뭐, 님들이라면 수십번도 해 내실 듯.
술만 있다면 곤란하겠죠? 역시 술보다 중요한 건 안주. 드디어 Tapas
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바의 윗쪽으로 가능한 안주거리가 쓰여져 있습니다. 물론 눈앞에도
재료들이 보이니 골라서 말하면 담아주거나 요리해주죠.
현재에는 이 안주들은 세가지로 서빙됩니다. Racion은 큰 접시로 한
접시, Media racion은 작은 접시, 그리고 Tapas는 일인용만큼만 찻잔
용 접시만한데 서빙 된답니다.
요만큼이죠.
이 따빠의 관습은 19세기말 바로 이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와인병을 열어두면 거기에 쉬파리 등이 알을 까기가 쉽죠.(쉬파리는 알이 아니라
구더기를 바로 까던가?) 이걸 막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일단 마개를 연 와인병
위에 작은 빵조각이나 초리소, 햄조각 등을 얹어 두곤 했답니다. 이걸 버리지
않고 안주로 먹기 시작했고, 이 관습이 발달해 오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빵조각
위에 햄이나(스페인에서 햄이라 하면 그냥 하몽으로 이해해 주세요. 미국식의
햄은 안먹습니다.) 치즈, 초리소 같은 걸 얹어 주게 된거죠.
따빠의 사전적 의미가 '마개'라는 뜻입니다.
현재는 따빠라고 하면 어떤 안주든 한명이 먹을 만큼 조그맣게 담아 주는 걸
말합니다만 안달루시아의 일부 지역(특히 시에라네바다 지역)에서는 공짜
따빠스의 전통이 살아 있어 술을 시키면 빵조각 위에 하몽이나 치즈, 초리스를
얹은 것을 두개 정도 줍니다. 전 공짜를 밝히는 지라.. 아주 좋아했습니다.
(안먹고 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자리에서 다 버리더군요. 전 그런 것 황급히
얻어먹곤 했습니다.)
가격은 물론 재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개는 따빠는 천원대, 반접시는
삼사천원대, 큰접시는 육칠천원대입니다. 정말 다양한 안주류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을 예를 들면 조개, 새우, 오징어, 하몽, 초리소, 순대, 돼지귀,
내장, 치즈, 또르띠야, 콩류, 올리브, 정어리, 안초비, 문어, 꼬치구이류 등입니다.
물론 나름대로의 독특한 안주를 자랑하는 바들은 인기가 높죠.
전 대개 점심은 식당에서 Menu del di'a를 먹고 저녁은 바에서 적당한 걸 반접
시 정도 시켜서 먹었습니다. 빵과 와인만 곁들이면 이정도로도 가벼운 식사로
손색이 없답니다.(빵이야 무제한이니 뭐. ^^ 제가 특히 좋아하던 저녁식사용
안주는 모로식 고등어. 고등어를 카레맛이 나는 아랍풍으로 조린 것. 최고에요!!)
바는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하루종일 생활의 중심지입니다. 굳이 스타벅스가
"The third place"를 외치며 개점해주지 않아도 그 개념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가
바로 스페인의 바입니다.(이탈리아의 바나 까페보다 훨씬 더 그렇습니다.)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바에서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봅니다.(당연히 모든
바는 신문을 갖추고 있으며 스페인인의 대부분이 바에서 신문을 읽는 듯 합니다.)
점심도 바에서 먹을 수 있고 배고플 땐 보까디요나 여러 간식도 즐길 수 있습니다.
목마를 땐 음료수도 마시고 언제나 마을 주민이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사교의
장소죠. 텔레비젼을 갖추고 있어서 축구경기가 있는 날엔 모두 바에 모여서
응원합니다. 어떤 바들은 스틱으로 하는 소형 축구대도 갖추고 있죠.(어떤 건지
아시죠?) 그리고 저녁이면 모두들 축구를 보면서 술을 마십니다.
술을 파는 곳이 바이지만 바는 어른들만의 공간은 아닙니다. 애들도 바에 드나들며
과자나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사 먹습니다. 특히나 작은 마을의 바는 그야말로
온갖 사교 및 문화생활의 중심지지요.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오락기도 갖추고 있습
니다. 신기하게도 스페인에서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습니다.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오직 커다란 통에 든 떠먹는 것 뿐이고 일반 하드바나 콘은 다
바에서 판답니다. 그러니 이것도 바에서 사먹어야하지요.
어떤 식으로 뭘 주문해도 좋습니다. 콜라에 진을 타 달라든지, 환타에 럼 한잔을
타달라고 해도 다 해줍니다. 단.. 가끔 야외에 차려놓은 바가(특히 가게 없이 키오스크
처럼 있고 의자만 한가득인 곳) 있는데 이런 건 조심해야 합니다. 야외의 신선한 공기아래
먹는 대가는 일반바의 두세배 가격으로 돌아오니까요.
(뭐 바에서 먹는 것과 테이블에서 먹는 것, 그리고 야외의 테이블에서 먹는 것의 가격이
다른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라나다에서도 값싸고 음식좋은 식당이 기억은 나는데 막상 뭘 먹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스페인에서도 이런 곳은 줄서서 기다리고 또 합석도 당연시됩니다.
아, 이제야 생각났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Restaurante와 Comedor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레스따우란떼는 식탁보가 있고 Comedor는 그냥 흰 종이가
깔려있답니다. ^^ 물론 한 사람이 먹으면 그걸로 싸서 통째로 치워버리죠.
이런 곳에서 스페인 사람이랑 합석을 하게 되면 볼펜을 꺼내서 낙서를 많이
하게 되죠. 못알아듣는 말은 써줘야 하고, 한국지도도 그려줘야 하고, 또 그사람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는 식의 부탁은 정말 많이 받거든요.
이곳에서 피자를 먹은 기억도 나네요. 이탈리아 음식에 있어서 썩 뛰어난
스페인.. 이란 말은 죽어도 못하겠지만..(파스타를 정말 많이 먹는데도
거의 토마토소스 일색이고..) 그곳의 시금치 피자는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이탈리아에 다녀온 소감으로 말해도 그건 이탈리아식이 아니라 스페인식이라고
말하는게 더 나을 듯합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둘 다 지중해 연안에 있고 기후도 꽤 비슷한 점도
있고 문화적으로도 수많은 교류가 있었고, 훌륭한 올리브유와 와인과
치즈를 생산한다는 점에서도 참으로 닮았지만.. 음식은 다른 부분이
어찌 이리 많은지... 같은 쌀요리도 리조또와 빠에야라는 전혀 다른
컨셉으로 발전해 버렸듯이.. 스페인이 이탈리아에 절대 이길 수 없는 부분은
밀가루 음식과 그리고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에 대한 열정은 이탈리아의
일백분의 일만큼도 못미칩니다. 하긴 세상 어떤 나라가 아이스크림으로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스페인 음식(특히 까스띠야)은 이탈리아 음식에 비해서 훨씬 소스에
의존하는 바가 적고 심플하면서도 소박한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제가 먹는 가격대의 음식에서는. 당시엔 학생이었으니까요. )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곳곳에서 신선한 재료의 맛을 잘 살리고 또 독창적인 식재료와
미의식을 발견할 때가 많아 적어도 반년정도 여행하면서 질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독자성이 정말로 강해 까스띠야 음식과 바스크
음식, 까딸루냐 음식과 갈리시아 음식은 정말 각기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것 같은 다양함이 있죠.
어쨌거나.. 한동안 플라멩꼬의 선율에 흠뻑 빠져들었던 저는(개인적으론
왜그리 판소리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던지. 플라멩꼬 대회의 예선전 때는
입장이 무료라 하루에 몇시간이고 즐길 수도 있습니다. 유명한 프로의 공
연은 딱 한 번 봤네요. 입장료는 자그마치 1만7천원. 단 한 번 누린 사치입
니다. ^^ 하지만 판소리 대사가 알아듣기 힘든 것처럼 플라멩꼬 가사는
지금 들어도 한 마디도 못알아 듣겠어요. T.T) 그라나다를 떠나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 향합니다. 문자적으론 '눈덮이 산맥'이란 뜻이죠. 스페인의 최고봉
(삼천미터대)이 이곳입니다.
물론 이를 등반하려면 전문적인 알피니스트 장비가 필요하고 저의 최종
목적지는 하몽 세라노의 성지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마을인 뜨라벨레스
입니다. 꽤 높은 험지지만 이젠 도로도 뚫려서 하루에 한 번 버스가 다닙니다.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차로 휙 왔다 갈 수는 없는 일. 이틀에 걸쳐 걸어서 올라
가기로 합니다.
그래서 도착한 .. 지금은 이름도 생각이 잘 안나는 작은 마을. 이곳부터는
모두들 공짜 따빠가 있습니다. Viva Espan~a ! 그런데.. 이 곳도 그 날이 축제
날. 인구 삼백의 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축제라고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
와서 그 마을에 두개 있는 숙소가 모두 차버리고 빈방이 없답니다. 바에서
울먹이고 있으니 바주인이 누군가 마을 주민의 빈방을 알선해 줍니다. 헤에.. ^^
이렇게 작은 마을의 축제는 대개 밴드를 동원 마을 광장에서 밤새도록 노래
하고 춤을 추는 걸로 하이라이트를 맞습니다. 많지도 않은 마을 젊은이들은
춤을 추며 끼리끼리 짝을 찾고(가끔 제 눈에도 사랑의 스파크를 튀기는 놈들이
보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모두 참가하죠. 하나밖에 없는 바에선
끊임없이 술과 음식을 공급하고.. 이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한국에서 나이트 한 번 가 본적 없던 전.. 이때는 어찌 춤을 춰야 하는지
몰라서 다소 어리둥절 했답니다.(물론 스페인에서 같이 놀 애들이 생기면서
결국 디스코떼까에서 막춤 추는 건 배우게 되었지만.. -.-;; 스페인 애들은
잘 춘다고 그럽디다. -.-;; 젊었었다구요.) 아마 이날밤, 음.. 나도 춤을 좀
배워야 겠군.. 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국 돌아와서 살사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춤은 나중에 중남미와 유럽 그리고 결국 쿠바에 이르기까지
혼자 하는 여행에 많은 친구와 할 거리를 가져다 준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네요.
(소시적 얘깁니다. ^^)
다음날 숨을 몰아쉬며 한나절을 걸어 다른 조그만 마을에 도착해 다시 짐을
풉니다. 인상적인 먹거리는 아니지만 이 날 먹은 메누의 본요리는 닭구이였던
걸로 기억납니다. 대개 세컨드 메뉴는 이렇게 단순한 경우가 많습니다. 양갈비가
그대로 숯불에 구워져 나온다던지 커다란(일반적인 한국의 식용닭보다는 꽤
큽니다.) 닭이 반마리 구워져 나온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좀 더 흥미롭고
독특한 메뉴는 퍼스트에서 발견하는 일이 많습니다. 세컨드는 고기를 먹어준다
는 의미가 있을 뿐, 사실 양조차도 퍼스트가 많답니다.
이날은 일요일이었던 듯,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산간마을이라 더 그랬겠지만, 미사를 보는 사람들의 평균연령이 60은 되어
보입니다. 스페인의 국교가 가톨릭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이제 미사를 보러 가는
일도 잘 없답니다. 하지만 생활 속에 스며든 가톨릭적 관습 그리고 사고관을
완전히 지우려면 수백년은 더 흘러야 할 듯 합니다. 전 어린 시절 부모님 때문에
성당을 다니기 시작한 지금은 그야말로 야메신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여행
도중엔 종종 성당에 들러게 됩니다. 성당은 미사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고 이렇게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성당을 잘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낮에는
그저 침침한 석조물이었던 성당이 촛불을 켜고 사람들이 성가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미사기도문은 새계 어느나라나 똑같으니 그 나라말을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특히나 이렇게 작은 시골의 성당은.. 그 속의 작은
성상 하나 성화 하나도 커다란 까떼드랄에서의 화려한 컬렉션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말 신성하고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집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에
남아있는 소박한 그림들에서 옛사람들의 상상력을 발견하고 키득거리는 웃음
을 참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 먹는 얘기가 아니니 빨리 생략.(혼날뻔 했다.)
이튿날 새하얀 정상이 더욱 가깝게 보입니다. 중무장을 하고 하산하는 한무리의
알피니스트를 만난 후 다섯 시간 동안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가 아닌 론리플래닛 지도(물론 가이드북 지도로는 최강이지만 역시
축척이..)에 의존했기에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해가 서산
으로 내려앉기 시작하자 온갖 상상이 다 듭니다. 시체에서 신원확인이 가능하도록
유서라도 써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다행히도 한무리의 양떼를 만납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하지만
임무에 충실한 양치기 개에게 습격을 받아 바지가 찢어지고 피가 철철 흐릅니다.
양떼의 주인이 뜯어말려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광견병의 공포가.. 하지만 임무에
철저한 견공의 반짝이는 눈빛으로 볼때 제대로 된 개라고 믿습니다.(이상하게도
이번 터키에 갔을 때도 도착한 첫날 한시간만에 경찰견에게 물려 바지가 찢어졌
습니다. -.-;; 내가 개들에게 원수가 진 건지..)
다행히도 전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었고.. 한 시간 뒤에 뜨라벨레스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최고의 하몽 세라노를 생산하는 곳으로 이름이 높을 뿐만 아니라
마치 지하에 있는 듯이 하얀 돌 속에 지어진 집들 때문에 스페인 내에서도
약간은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별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남의 집 지붕에 올라가
있기도 합니다.) 낮에는 단체 관광 버스도 종종 들러지만 자고 가는 사람은
별 없는 듯. 바에서 관리하는 지하의 뻰시온엔 저 혼자 뿐입니다. 높은 산이라
꽤 추워 다리에선 피를 흘리며 부들부들 떨면서 자야했습니다. 물론.. 하몽은
사먹었지요.
이런 날씨야말로 하몽을 만들기는 최적의 조건(우리 나라의 황태와 원리는
같을 듯 합니다.) 마을에는 하몽 공장이 여러군데 있고.. 또 트럭으로 돼지의
뒷다리들이 도착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 놈들도 이 일교차 높은 곳에서
싸늘한 바람을 맞아가며 잘 숙성되어 11개월 후엔 훌륭한 하몽이 되어 세상에
기여하겠죠. 저보다는 여러가지로 세상에 유익한 돼지들입니다.
다음날 점심은 아마 송어를 먹은 듯 합니다. 스페인의 산악 지역에서 종종
먹게 되는 송어는..약 30센티 길이의 낚시로 잡은 것입니다. 배속에는 하몽을
넣고 구워내죠. 제겐 송어란 이런 생선이라 어류도감에 나오는 길이 70센티
정도의.. 혹은 여러분이 야외에 나가셔 드시고 오시는 송어회나 송어매운탕의
맛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답니다. 가난한 탓에 아직 한국에선 송어를
한 번도 못먹어봤죠. 한국에서 송어란 생선은.. 자가용이 없으면 거의 먹을
수 없는 생선인 듯.(항상 교외에..) 얼마전 터키에서 드디어 다시 송어구이를
먹었습니다. 몇년이 지나도.. 그 놈은 그놈인 듯.
그 다음날,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의 절벽과 계곡들은 그야말로 박력이 넘친답니다. 이 곳을 끝으로
저는 드디어 안달루시아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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