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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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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행 잡담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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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예정되었던 일정을 당겨서 와야 했습니다. 집 식구들이 일본에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달 있다가 왔으니 단기 체류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되며, 사실 더 있고 싶은 생각이 희박해지는 시점에서 적절했다고 사료됩니다.
5월 말부터 독일 체류지를 거점으로 영국 런던과 옥스퍼드와 버밍햄(스트랫포트 어폰 에이본까지), 아일랜드 더블린과 던레리, 이탈리아 밀라노 베니스와 로마, 체코 프라하와 터키의 앙카라 이스탄불을 각각 일주일 정도씩 머물다 왔고, 더블린과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서 예약을 끝내고 갔습니다. 7월에 갑작스럽게 미친 마음이 들어 더블린을 가겠다고 작정하였으며 그 작정에 이어 이스탄불을 번갯불에 콩볶듯이 유럽인파에 섞여서 다녀왔습니다. 유럽 최성수기 시즌의 한 복판에서 최저로 다녀올 수 있는 모든 수단 방법을 강구하였으며 그 와중에 베를린에서 가장 성실하다는 여행사가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통설로 전해듣던 게르만인 방식의 전형이던 그 독일인들이 히스테릭한 한 아시아 인간의 신경질과 독촉에 넌더리가 났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 와서야 슬며서 고개 들건만 반성은 없습니다 ;;
베를린에서는 광란의 월드컵 기간을 보내야했고 훌리건들에 대한 공포를 핑계삼아 포츠담과 한자동맹도시들, 슈베린, 하노버에 다녀왔습니다. 독일 과학기술의 결정체라던 ICE를 타고 방문했던 기억은 매우 좋게 남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베를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보냈습니다. 이체를 타고 독일의 로맨틱 가도의 도시들과 성곽 순례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미 체력은 오래전 바닥을 친 상황이라(자금 역시 동반 바닥을 쳤으므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최고의 도시는 아일랜드 던레리였고 최악은 불결함과 뻔뻔함과 손쉬운 돈벌이로 중무장한 이탈리아의 도시들이었습니다. 런던은 최악과 최고를 두루두루 획득했습니다.
매우 많은 일이 있었지만 사실 크게 별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도시에서 지하철과 버스와 트램, 루아스 Luas등을 무수히 타야했으며 간혹 현지인의 차를 빌기도 했습니다. 이지젯, 라이언 에어, 저먼 윙등 유럽 저가 항공사에서 프리미엄 고객 등록 요청 메일이 오기 시작하였으나 당분간 모른 척 할 것이며:) 터키와 그리스 편 오뉠 항공의 아틀라스 젯을 새로 발견한 것도 수확입니다. (그 항공사는 경유지와 시간이 좀 이상한 전세기가 많았지만 어쨌든 요긴하였습니다) 체류기간동안 단 하루도 비가 오지 않았으니 운이 좋다면 좋다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단 독일에서 비대신 우박이 내렸다지요-_-)
저보다 두 달 앞서 간 남편은 업무 개시전에 이미 북유럽 방문을 끝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의 소원대로 ‘원초라는 말의 원초적인 구현’ 인 피오르드의 설원과 깎아지른 절벽을 체험했고, 거대한 수송선이 유레일 열차를 푹 싸안고 북해를 건넜던 기억은 아마 오랫동안 그의 삶의 심저에 원대한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겨울의 북유럽이 보일 자연의 무시무시한 추위와 포용력 없는 설원에 대한 ‘가혹한 체험 욕구’가 어떤 형태로 충족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북구는 자신에게 엄혹했던 순간들을 차갑고 순정하게 얼려놓은 하나의 의사 체험관처럼 보였습니다. 제 추측처럼 피오르드의 광활함이 그런 의미로 소화되었다면(그러나 이것은 아전인수격의 엉뚱한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고나..) 저 역시 차제의 프로젝트로서 북구를 마음속에 쟁여 보렵니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모로코와 스페인까지를 모두 끝내놓고 저를 픽업하기위해 런던에 왔었는데 동선의 범위나 평소의 행태로 미루어 혹시 아프리카 콩고까지 한 바퀴 돌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없습니다: ( 간혹 책상에서 발견되던 갈라파고스 군도도 의심의 한 축이며..) 혼자서 코펜하겐-스톡홀름-말뫼-웁살라-탐페레를 거쳐 모로코와 스페인의 몇 개 도시를 거쳤던 행로였다고 합니다. 2006년판 유레일 타임 테이블이 거의 걸레쪽처럼 되어 있는 광경을 포착하였는데, 물증으로 삼아 추후 취조를 준비할 작정입니다
남편이 런던에 오기로 했던 날의 픽업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런던 지하철이 테러경고로 인해 느닷없이 운행정지를 하였고 두 번째 방문이었던 저의 히드로 공항 첫날은 “한국의 ***는 환전소 앞으로 와주세요!” 라는 장내 아나운스를 두 번이나 시키는 촌극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픽업자가 예약된 호텔을 모르고 있었기에 혼자서 가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치밀었던 분노의 게이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남편은 엄청난 고생을 하며 한 시간이 넘어서야 나타났고, 런던 교통 체제의 악몽은 마지막 떠나는 날까지 우리 둘을 괴롭혔습니다.
이것 외에는 다 좋았습니다. 뭐 나쁠 일이 있어야지요. 여행객 신분에다가 돈을 쓰러 간 상황에서야...
여행에 대한 환상이 거의 전무한 사람이 여행을 한다면 어떨지요. 제 자신이 여행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가졌던 의문입니다. 기대하고 꿈꾸는 긴박한 즐거움이 신기루에 의존해 살아가는 이처럼 박약한 정신에는 왜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 신기루를 현지에서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찾아 가는 몸의 작용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게는 그 수순이 거꾸로 왔습니다. 몸이 가고나서 마음에 뭔가가 솟구치기를 기다리게 되었거든요.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요. 절반만 진실일 거에요. 여행은 사실 대단히 구체적인 활동이고 그 목적이 특수한 비현실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일상과 반목할 뿐, 어떻게 보면 여행의 순간들과 여행의 과정들만큼 현실적인 행동은 없으니까요.
<독일-베를린의 일시 체류자>
유럽은 바야흐로 월드컵 조증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고 모든 기능은 관광지의 하이피크 시즌에 맞춰져 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베를린이 주된 생활의 근거지였던 만큼 현지의 온갖 난장판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습니다. 6월 초부터 7월 폐막식까지 베를린에서는 국기/깃발을 필두로, 삼색 가발과 맥주와 음악이 나부꼈고 주된 근거지 초역(Zoologischer Garten) 주변과 쿠담거리, 제국의회 의사당 주변에서는 베를린에서 자취를 찾지 못했다던 소동들이 한 달 내내였습니다. 한 마디로 특별한 기간 내의 특별한 체류였다는 말을 현지인에게 들었습니다. 그들은 베를린 市에도 역시 특별히 소중한 시기이며 이 시절을 맞은 당신들의 행운과 개인적인 경험들에 감사하라고 하더군요.
베를린의 무미함, 건조함, 알 수 없는 압박감과 가라앉은 우울함은 그 도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제 마음에 쏙 들었으며 여성과 아이와 신체 부자유인을 위해 고려된 대중교통의 치밀함과, 70%가 넘게 계획되고 조성된 시커먼 숲들, 공원등의 녹지와 생활 터전의 조화 덕분에 진정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전이 있기 전, 초역에서 음악 축제가 있었는데 현지인이 연주하던 ‘우크라이나 볼레로’를 잊을 수 없으며 발락을 밀어내고 명품 백화점 카데베의 전면 유리를 도배하고 있던 박지성의 ‘나름 귀여운?’ 얼굴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데베 맞은 편의 야채 고기 시장과 제국의회 의사당 앞 레스토랑 ‘아인슈타인’에서 먹었던 슈니첼의 맛과, 감리교 목사분 내외와 점심 만찬을 들었던 숲 속 레스토랑의 사슴고기와 산딸기 소스도 생각납니다. 이러한 먹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것은 오후 1시에 문을 닫았다가 저녁 6시부터 오픈하는 베를린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바와 레스토랑들의 상시적인 미팅능력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만이 조금씩 모여들어 매일 ‘묻지마 미팅’이 열렸으며 독일인들이 엄청난 수다장이라는 것과, 그 수다의 향연 뒤에는 자기애 및 개인주의의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어 보였다는 것,,. 이런 추측은 언제나 그렇듯이 무용한 것이겠지요. 이곳에서야 자기애 및 개인주의의 상처를 인터넷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추측이 그렇듯이요.
베를린의 샤를로텐 부르흐 지구에서 베키라는 이름의 스타일리쉬한 흑인 여성이 운영하는 한 근사한 옷가게는 정기적으로 놀러가던 곳이었습니다. 초역에서 라테우스 스테글리쯔라는 남서쪽 거리를 홀로 걷다가 길을 잃어 잠깐 지도를 들고 들어가게 된 인연이었습니다. 모스키노 풍의 세련된 유럽식 의류들을 팔고 있었는데 단번에 한국표 원피스를 보더니 출처를 묻더군요.
그녀의 본적은 바베이도스였고 로마에서 7년, 런던에서 8년 의상실을 운영하다가 독일에 온지 5년째라고 하였는데 전공은 비교문학이었지요. 그녀의 특이한 이력과 가공할 쾌활함, 베를린에 대한 나름의 끝없는:) 견해 때문에 그 옷가게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베를린이 상처가 많은 도시고, 사람들은 분단과 통일의 파장에서 생겨난 변화를 아직 모두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이 도시의 무겁게 가라앉은 침통함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동독인들이 통독 십 수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부적응자, 자아 실종자, 과거 칩거자로 사회적 심리적 전락을 거듭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고요함은 단지 체념의 소산일 뿐이라는 비극적 결론을 내리고 있더군요. 그러나 독일의 파워, 독일인들의 저력과 이 사회를 지탱해 온 서독 사회의 기독교적 합리주의와 냉철한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해 그녀의 신뢰는 매우 단단했습니다. 이 민족주의자/극우주의자였던 사람들의 내면에서 들끓는 아우성은 궁극적으로 자국에 대한 최고의 경애심에 모든 에너지가 귀착되고 있으며 독일의 사회보장능력은 결국 그 경애심의 소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극우주의의 그늘에는 극도의 개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총평이었는데, 이는 여행객 입장으로서도 독일의 사소한 체제들, 일상의 문제들을 대하던 와중에 느꼈던 것들이기도 합니다.
여름 정기 세일로 터무니없는 가격에 근사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고, 뚱뚱한 독일 아줌마들보다 당신에게 팔고 싶다는 ‘한국 아줌마식’ 아첨을 잊지 않아서 또 한 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녀의 남편은 베컴도 울고갈 충격적인 독일 미남으로서, 베를린의 엄청난 실업률로 인해 3년째 휴직중인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이 기묘한 커플은 자신들보다 더 이상(할지도 모를)한 아시아 여자의 방문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는 그녀가 소개해준 바베이도스의 유명한 고무춤을 한 번 구경하렵니다. 허리가 발목에 닿는다고 하니 어떻게 안 볼 수 있겠어요? 베를린을 떠날 때 일정에 쫓겨 사진을 찍지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안녕 베키. 이 자리를 빌어서.
베를린은 기묘하게 단조롭고 독특하게 평면적인 도시였습니다. 론리 플래닛의 단언처럼, 도시의 분권화가 확연하여 뉴욕이나 파리나 로마처럼 명품 쇼핑가나 괄목할만한 관광표식이 한 구역에 집중적으로 몰려있지 않았고, 그 점이 이 도시의 관광지적 요소를 많이 감소시키면서 한 편으로 제 마음을 많이 움직였습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녔어도 계속 엇비슷하게 다른 점들이 나왔고 이탈리아 도시들이나 프라하 정도의 강렬함조차 전혀 없는 메마르고 일상적인 내부의 규율들이 방문객들에게 고만고만한 숙제를 던졌습니다. 독일의 다른 한자 동맹 도시들이나, 하노버, 함부르크, 하다못해 잠깐 다녀왔던 슈베린과도 전적으로 틀렸으며 가장 통독적인 도시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베를린은 일주일이면 모든 것을 보지만 일년을 살게 되면 볼게 너무 많아진다’ .고 하던 현지인 말이 기억납니다. 제게 이번 방문지의 최대 콘트라스트는 로마와 베를린이겠고, 물론 저는 압도적으로 베를린에 몰표를 주렵니다. 로마에서 저를 움직였던 것은 피에트로 대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모아지는 햇살 한 점으로서 그나마 콜린 매컬로 소설‘가시나무새’의 드라마판 중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찍은게 아닐까하는 그 회고 덕분이거든요. 로마의 어마어마한 건축물들과 서구 문화의 총체적인 역량이 모두 집결된 듯한 사적들(대부분 베르니니가 남긴 건축예술의 시각적 쾌감들)과 현지 이태리 내부의 방만함과, 일방적인 쾌활과, 저질의 상업능력과 특수한 평가절상이 이루어진 듯한 리라에서 유로화로의 전환은 얄미운 배합으로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노란색 셔츠에 연두색 바지를 입고 금줄 목걸이와 베르사체 메두사 문양의 허리띠를 하고 돌아 다니는 남자들이 그렇게 많은 곳이 이태리 말고 어디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 술 더떠 그 남자들이 전부 ‘한국인도 울고 갈’ 마마보이들이라는 점도...
베를린 필하모닉과 소니센터는 거의 매일 지나다녀야 했고, 쿨투어포룸에서 뒤러의 초상화전이 열렸으나 체코와 터키를 다녀오느라 건너뛰어야 했던 것은 아쉬었습니다. 대신, 목요일 공짜 관람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페로가몬 박물관’에서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박물관에서 받았던 깊은 충격으로 인해 바빌론의 이쉬타르 문에서 촉발되어 앗시리아와 비잔틴 문명에 대한 즉흥적인 확인 욕구가 인 나머지 이스탄불행을 결정지은 것은 망발인 동시에 제일 잘한 처사같습니다.
저 유명한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을 마침내 구경할 수 있었고, 매끈한 차가움, 부러질 듯한 긴 목의 황홀한 여성미는 매우 가슴에 남았습니다. 완벽하게 균형잡힌 코-턱선과 우아한 광대뼈를 받치고 있는 목뼈에 대해서는 ‘여성의 목선, 새로운 미의 발견’이라는 제하의 논문이라도 쓸 수 있겠더군요. 동행자는 ‘너무 모가 난 시장판 얼굴’이라는 촌평을 통해 재를 뿌렸지만..;;;
옷장수 베키와의 일화 뿐 아니라 초 역 앞의 홀츠 서점에서는 재미난 일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영어 소설들을 갑자기 세일하곤 하였기에 가끔 들러 몇 권을 사 던 와중에 피카소를 빼닮은 한 독일 아저씨로부터 끈덕지게 여가용 범죄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저 문고판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는 ‘죄’밖엔 없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톰 클랜시나 하다못해 존 그리샴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존 그리샴의 Bleachers를 추천했더니 서점 직원이 어디선가 나타나 끈덕지게 나딘 고디머 소설들을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딘 고디머가 범죄 스릴러 작가라는 착각을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에 관한 일련의 리포트같은 ‘사라진 자본주의 세계’가 엽기 살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피카소 독일 남자는 즉시 존 그리샴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서점 직원은 나중에 실토했습니다. 한 손님으로부터 나딘 고디머가 범죄 스릴러의 대가라는 소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뭐 어느 곳이나 있는 풍경이겠죠;;;
포츠담-상수시 궁전에서 본 와토의 로코코 그림들은 베를린의 샤를로텐 부르그 성의 ‘근심없는’ 정원들을 떠올리게 했고, 철학자 볼테르가 하루 자고 말았다던 궁전의 볼테르 방은, 권력의 철학에 대한 판타지, 철학에 대한 정치의 숭배가 우습게 발현되고 외면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하여 흥미로왔습니다. 로코코의 백미라던 이 궁전의 주인은 결국 정신병으로 죽었다니 가벼움과 쾌락이 지구상에 발붙이기 힘든 건 왕권 차원에서조차 사실인가 봅니다. 저는 와토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그 천박한 화려함과 표피에 대한 숭배와 가치없는 발랄함도 매우 좋아하지만, 이불 쓰고 몰래 좋아할 정도의 양식은 있습니다. 설마 정신병까지야..;;;
상수시는 극기 훈련을 연상시키도록 넓었고, 차후 이스탄불에서 둘러보았던 톱카피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만큼은 못했지만 베르사이유보다는 나은 판타지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노버에서는 ‘ YOU WILL NEVER WALK ALONE' 이라는 커다란 플랭카드와 한 손에는 축구화를 손에 든 마틴 루터의 우스꽝스러운 입상이 커다랗던 루터파 교회앞에서 무척 유쾌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선교사로 짐작되는 한 독일인 아저씨가 출입이 통제된 입상위에서 특별히 사진을 찍어주었고 루터파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그 지역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아시아인의 개종에 대해 큰 열의를 보였습니다. 아마 종교에 대한 우리의 무지 정도를 알았다면 그 수고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독일에 대한 중점적인 이미지는 아마 도시 슈베린과 베를린 근교의 슐라텐제 호수에 갔던 그 심상 그대로라고 생각됩니다. 잔잔한 호수를 둘러싸고 카약과 요트경기가 벌어지는 한 쪽에서는 검정 오리들 사이로 수영을 즐기는 청소년들과 검게 탄 어른들이 물에 뛰어들고, 농담을 하고, 머리를 말렸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새카만 숲 속 오솔길을 물 뚝뚝 흘리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외줄 뒤에서 우리는 서울에서의 평화 없던 순간들과, 가끔은 정지된 시간의 무기력에 대해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일상적인 조용함속에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맛 볼 만큼 이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살았다는 느낌, 보통 여행의 상념들, 유럽의 어떤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그, 가족의 시간에 대한 느낌들 말입니다. 아마 한국인으로서 가장 이질적이었던 이 느낌의 바탕은, 거대한 박물관도, 언어도, 유적도 아니라 그 일상의 차분한 무기력과 조용한 평화였다고 전 생각합니다.
베를린에서는 단기 체류자가 누릴만한 조잡한 인식의 한계 덕분에 별다른 문제없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가끔 저 아시안이 어디서 나타났지, 싶은 따가운 눈길을 받을 때는 독일주민들로만 구성된 우리의 아파트 앞에서였는데 미소와, 조그만 체스처와 쓰레기 봉지만 들고서도 동질감을 획득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다는 점도 한 번 말해두렵니다.
-베를린 체류는 다른 여행지와 좀 다른 느낌이라 다 까먹기 전에 오자마자 간단히 적어봅니다. 영국 버밍햄과 아일랜드 더블린과 이스탄불과 프라하는 기억될 수 밖에 없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오히려 제게는 순위에서 밀려나 있습니다-_-
-오자 마자 이 짓을 하다니... 그나마 아직 기억나는 것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영국 체코 이스탄불에 관해 수다가 나올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기를 현재로선 바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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