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
- 영화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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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파워 오브 도그]와 [퍼스트 카우]

두 편 다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장르 범주를
인식하며 감상할 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파워 오브 도그]는 아예 중간중간
존 포드 [수색자]의 유명한 컷을 모방하며
영화의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는데




예상보다 더 냉정하고 전복적인 영화였다
첫 3분의 1지점까지는 얼핏
야만의 땅 서부에 굴러들어온 문명이
박해받는 스토리로 보이다가 이후 3분의 2지점까지는  
서부극의 중심인 카우보이의 남성성을 탐구하는
기묘한 심리극으로 팽팽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야만은 보기보다 복잡다단한 구성체였으며
문명이 선한 피해자이기만 한 것도 아님이 드러난다
영화는 정교하게 계산된 범죄스릴러로 급박한 파국을 맞는다
바짝 날 선 도끼에 통나무가 쩍 갈라지며 쓰러지는 느낌이었다





소름끼치게 잘 만든 영화였다
감독과 배우들은 오스카를 타게 될 것이다
음악은 조니 그린우드
이 사람은 어느덧 영화음악계의 탑 티어가 된 듯
이 영화에서 단 하나 아쉬운 것은 몬타나 배경이라면서
뉴질랜드 로케이션이었다는 점이다 그 풍경은
서부인 척할 뿐 내가 알고 좋아하던 서부가 아니었다
서부극과 서부신화의 상징인 카우보이의 남성성을
조롱하는 영화인만큼 굳이 몬타나여야,
미국땅이어야 할 필요도 없는 영화긴 했다
나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지만 전문가 논평들 중엔
이상하게도 한창호씨의 부정적인 언급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이분의 코멘트에 자극이 되어
차일피일 미루던 감상을 한달음에 마칠 수 있었다
아래 출처는 한창호씨 블로그
“결론부터 말하면, 많이 기대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취향의 문제다.
개인적으로 서사에 트릭 쓰는 것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우선 그 점이 불편했다.
속이는 것 같아서다.
서부 카우보이들이 중심이다. 혹은 중심처럼 보인다.
그 카우보이들을 희화화할 필요가 있을까?
자기 이야기만 진정성을 갖고 하면 되지, 타자를 '개의 권세'로 몰아갈 필요가 있을까?”


[퍼스트 카우]를 보면서는
단편영화였다면 더 완성도가 있지 않았을까..
좋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장편에 담기엔
내용물이 너무 단순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난 후 여운이 오래 간다
특히 같이 사는 사람에게 지난밤에 본 이 영화 이야기를 해주면서
새삼스럽게 뒤늦은 감동이 밀려왔다 나 자신의
스토리텔링에 도취되어 더 그러했을지 모른다?!





[파워 오브 도그]와 달리 이 영화는
가짜 서부가 아닌 진짜 서부에서 촬영되었다
그때 그곳에 살다 갔던 착하고 힘없는, 그러나
소박한 꿈을 가졌던 보통 사람들의 가혹하고 신산한 삶들 뒤로
오레곤의 늦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 위에 향긋한 빵냄새가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백석의 시가 생각났다

선우사膳友辭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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