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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odi/a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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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routemaster와 함께 하는 출근길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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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출근길에는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얘기한 적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일본인과 유태인이 많이 산다고 해서
JJ Line으로 불려 지기도 하는 Jubilee Line을 타고 시내로 향하는 것
이 저의 일반적인 출근 방법인데, 시간이 많거나 날씨가 유난히 좋거나
하면 버스를 이용합니다. 취업 알선 정부 기관(?)인 Job Centre+앞에서
13번을 타고 버스 종점까지 가서 조금 걷거나 다시 잠깐 버스를 타면
회사까지 갈 수 있거든요. 사실 정말 여유가 있는 날이 아니면 이 루트는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지하철보다 2배 정도 더 시간이 걸리거든요.
무척이나 오래 걸리는, 기어가는 듯한 버스 이동이긴 하지만 일단은 버스
가 지나가는 길들 때문에 버스 속에서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번잡한 Finchley Road가 길 한 복판에 떡하니 서있는, 그 동네와
같은 이름의, Pub 'Swiss Cottage'를 지나고 나면 어딘가 낭만적인 그
이름만큼이나 예쁜 주택가인 St John's Wood가 나오고, 집 구경이 조금
지루해질 즈음이면 Sherlock Holmes의 Baker St.에 접어듭니다..
서울 관세청 근처에서 걸어 다니다가 고개 넘어 압구정으로 걸어가면
비슷한 느낌이 들까. 인적 드물고 조금은 가라앉고 여유로웠던 거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갑자기 몰려드는 인파에 정신이 없어지는 기분.
명동성당에서 밖으로 나오는 듯한 기분? 사람과 가게에 뭍혀 버리는 듯한.
Baker St.을 지나 Oxford St., Regent St.을 접어들 때의 느낌이 그렇거든요.
종로를 연상시키는 좁은 보행로를 활보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것보다
더 좁은 차로를 메우고 있는 버스와 자동차들 + 온갖 가게, 그 가게들 마다의
간판들..
이 13번 버스를 타면, 계속해서 Trafalgar Sq와 극장들로 유명한 West End
까지 갈 수 있는데요, 그 버스 노선 자체가 변화가 심하고 시내를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노선을 흥미롭게 만드는 건
그런 '소프트웨어'적인 것들 만큼이나 버스 자체의 '하드웨어'가 주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버스야 말로 런던의 빨간 이층버스 하면 생각나는,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인도 시골에도 굴러 다니고 있을 만큼)-우리 나라의
복주머니 택시, 포니 1 택시 정도의- Routemaster 버스 이거든요.
<<앞면>>
<<뒷면>>
딱 보기에도 구식이다 하는 느낌이 올 정도로 내부 구조는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두명이 앉으면 불쾌할 정도로 딱 붙어야 엉덩이라도 걸칠 만큼
좁아 터닌 좌석, 90도 등받이, 서면 머리가 닿을 만큼 낮은 천장.. 특히 장애인
이나 유모차를 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버스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떨어지면 죽는다 싶게 가파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버스가 즐거운 이유는 아래층 맨 앞좌석과 윗층 맨 앞좌석,
그리고 개방되어 있는 승차구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림에도 보이듯이 1층의 왼편 앞좌석은 버스의 맨 앞과 거의 동일한 위치에 놓
여 있습니다. 운전석이 앞에 나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이겠죠? 버스를 이렇
게 운전하듯 앞에 앉아서 타다 보면 바깥 구경은 잘 할 수 없습니다. 위치상 시
정면 시야도 상당히 좁고 그냥 모든 것이 쉭 다가왔다가 휙 지나가 버리는 기분
을 받게 되죠. 기차를 타고 가면서 멍하니 옆 철로를 바라보는 느낌? 별 흥미없
는 TV를 보는 느낌? 몽상, 망상, 온갖 잡생각을 하게 되죠. 예. 바로 몽상가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특히 날씨라도 좋은 날엔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 딱 좋은 자리
죠. 양 옆과 바로 앞의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기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승차구. 달리는 버스...
그런가 하면 2층 앞좌석은 관광객 혹은 잠시나마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은 사람들
을 위한 자리라고 할 수 있겠죠. 운전사와 동일한, 그보다 2미터도 넘게 높은 자
리에서 밖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 시야와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들은 지붕들
가로수 윗자락 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거리를 내려다 볼 수 밖에 없고 구석구석
자세하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촘촘하게 보이던 사람들의 행렬도 위에서
보면 조금은 여유있어, 틈이 있어 보이고, 지나가는 포르쉐 안의 아저씨는 뭐하고
있나 살펴 볼 수도 있고 아르마니 양복 입은 아저씨 가운데 머리가 비었네 하면서
괜히 실없게 잠시 웃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버스 안에서 자유롭다는 것, 좀 느슨하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
습니다. 이 구형 Routemaster에는 차장이 있고 앉아 있으면 와서 표 검사를 하기
때문에 2층에 올라가서 있거나 사람이 좀 많다 싶으면 돈 안내고 몇 정거장 가는
건 식은죽 먹기죠. 물론 모두들 돈을 내고 낼 생각을 하겠지만 마음 먹으면 나, 저
버스 돈 안내고 타서 저기 까진 갈수도 있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끔 주는 편안함.
이런 느슨함의 극치는 바로 버스 승.하차시 느낄 수 있는데요 그림에서 잘 보이는
지 모르겠지만 이 버스, 승하차구 문이 없습니다. 능력만 되면, 마음만 먹으면 달리
는 버스를 잡아 타도, 버스에서 뛰어 내려도 뭐라 그러는 사람 아무도 없죠. 특히
시내같이 차가 밀리는 구간에서는 버스 정류장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버스 정류
장은 저기지만 내가 가야 하는 곳이 여기면 그냥 내려 버리면 그말이죠. 문하나 없
는 것이 주는 그 차이란..
하지만 이런 버스 찾아보기도 이제 더 힘들어 질 것 같습니다. 이제 이런 구형버스
대신 문이 달린, 우리나라 버스들 같은, 2층 버스나 아니면 북경에 다니는, 가운데
휘어지는 허리가 달려져 있는 긴, 버스로 교체를 한다고 하더군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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