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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하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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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re] 공간에 관한 노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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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사고서 알았답니다.
제가 자연의 풍경을 찍는데 썩 관심이 없다는 것을.
한창 꽃들이 만발하던 때에도,
요새처럼 푸르름이 넘치는 계절에도,
아, 아름답다, 감탄은 하면서도
그걸 프레임에 담는 것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여행가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찍긴 했지만, 돌아와서 세어보니 역시
마을이나 음식 사진이 더 많더군요 ^^)
일단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재현할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제가 그리고 싶고, 또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무래도 인공적인 대상과 공간이었던 까닭이겠죠.
꽃에 풀에 산과 들은
그저, 감상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제 삶과 밀접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서울로 돌아와 단단한 아스팔트를 밟는 순간
느껴지는 안정감.
아, 내 집에 돌아왔구나, 하는 :-)
작년에 이사한 이후로
혼자만의 새 자리가 생기고 동선이 엄청나게 짧아지면서
제 공간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부터, 그곳들은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터인데.
그 모든 공간들 몸에 그대로 배어 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를테면, 하루에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되는 공간 덕분에
군살이 구석구석 붙는 것이라든지... :-)
저는 서울의 남쪽 끝에 오래 살았답니다.
몇군데 옮겨 다니긴 했지만 언제나, 새로 조성된 동네의 대단지 한복판이었어요.
고만고만한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곳에 살면서,
"집"의 이미지란 제게는,
언제나 고립되고 아늑한, "구석"이었습니다.
성냥갑 속에서 찾아드는, 문을 잠그면 아무도 손대지 않는 그런 구석이요.
언제나,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그런 구석에 처박혀 혼자 노닥거리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강너머를 생활권으로 삼게 되었는데,
하루하루가 발견의 기쁨이었어요.
한남대교를 하루에 두번씩 넘는 것이,
아침의 강과 저녁 불빛이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는 것이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발견한 서울의 오래된 동네들,
종로의 극장들과
어머니가 아버지와 연애를 하셨다던 대학로의 오래된 찻집,
광화문 역이 생기기전, 3호선 경복궁 역에 내려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걷던 길,
교보문고 뒷편의 메밀국수 집과
전설인 줄 알았던 피맛골,
관광지가 아닌, 좋은 산책길로서의 고궁,
그, 소격동...
(그 동네 옆 이름은 "사간동"이라는군요. 크하... 정말 멋진 이름 아닌가요?)
그런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처음으로 "걷기"의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집안에 웅크리고 있기 좋아하는 제 생활과
5분이상 걸으면 피곤해 하는 제 몸을
반쯤은(전부는 아니지만), 바꿔 주었어요.
서울에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오래된 도시에 사는 기쁨을 생각했습니다.
강을 넘어 이사올 생각을 했을 때
반쯤은 겁도 났지만- 뭐니뭐니 해도 내가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게-
그런 공간에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나다에 다녀오면서
이화동을 지나 창덕궁 앞으로, 재동과 소격동(백상기념관 앞으로)에서 광화문을 지나며,
길게 걸린 연등들을 보았습니다.
색색으로 은은하게,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경복궁의 담 밑으로 늘어선 불빛과 합쳐져서,
그길, 정말 예쁘답니다 요새.
사진은, 언제나 기대만큼 담아내질 못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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