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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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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헤세의 안개속에서_11월과, 우울과,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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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님의 에세이
혼자 읽기 아까워 안부겸 퍼왔습니다.
새벽안개속을 건너 집에 오다
난지 작업실을 며칠간 못나갔었다.
보강이 있어서 월화수목 나흘간 강의가 이어졌고, 따로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아서였다.
금요일이 되어 모처럼 나가서 출석부에 싸인을 하고,
나를 반겨주는 난지 강아지 똘순이(나중에 따로 한번 똘순 포스팅을 할 생각)와도 노닐고
오랜만에 보는 작가들과 야식을 먹으며 잡담하고, 밀려 아쉬운 작업도 좀 더 하다가
언제나처럼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출발했다.
최근의 늦가을비때문인지 한강변 공기가 습기로 충충했는데
양재무렵을 지나 경기권에 접어들면서, 특히 매봉터널을 지나 구룡터널 접어들면서
드라이아이스속을 통과하는 것처럼 안개가 심해졌다.
어릴때 <애수>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그 소위 런던포그라는 현상처럼 자욱했다.
이렇게 짙은 안개는 특히 운전시작하고는 처음이었다.
한새벽인데다가, 십미터앞도 채 보이지 않아, 차들이 급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여야 했으니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운치있는 정경의 그 초현실적인 느낌이라니.
중고생때 접했던 헤르만 헤세의 싯구절이 자동으로 떠올라버렸다.
사실 안개만 끼면 이 시가 생각난다.
고딩 1년 어느날이었다. 아침등교길에 안개가 잔뜩 끼어있던 날
국민윤리수업에 들어온 여선생님이 날씨이야기를 하시며 대뜸 시를 읊어주셨다.
(내 성장기의 기억속에는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안개속에서
- 헤르만 헤세
안개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덤불과 돌들 모두 외롭고
나무들은 서로 볼 수가 없어
모두 혼자다
내 삶이 아직 밝았던 시절
세상에 벗들로 가득했으나
지금 안개 내리니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진실로 어둠을 알지 못하는 자들
어리석어라
어쩔 수 없는 힘으로 조용히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갈라놓은 그 어둠을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고독한 것
어느 누구도 서로를 알지 못하고
모두가 저마다 혼자일 뿐
유년기 또는 성장기에 일어나는 일들은 오래도 각인되곤 한다.
성함은 기억나지 않는 그 선생님은 그 날 이후에도
강풍이 몹시 몰아치던 어느 날 교정을 서성거리며 시를 읊고 계시더라는
같은 반 아이의 회고가 있었는데... 그때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제사 돌이켜보면 참, 그러시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아니 그 시절이라 가능했는지도, 아무튼.
시 전문이 온전히 생각나질 않아 넷을 검색해서 다시 보니
예전에 무심코 흘렸던 부분이 유난히 다가온다.
3연에 '어쩔 수 없는 힘으로 조용히/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갈라놓는 그 어둠'
이것은 우울증에 대한 묘사가 틀림없다.
작년에, 어려운 시기에 후배가 보내줘서 읽었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거듭 묘사되던 어떤 증상들, 저자가 표현하기로 '낮은 곳으로, 자신의 안으로 이끌어'
내적여행을 유도하고, '상처입은 치료자'가 될 수 있게도 해주는,
닥치니 피해갈 도리가 없었던 '우울증'에 대한 여러 정의들 중 하나와 닮아있다.
저자는 이 어둠을 외면하고서는 삶의 진정한 면모들에 직면할 수 없음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헤세도 그걸 알고 있었으리라.
안개속을 걸으니 이상하다... 누구나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평범한 말들인데
살아가면서 느끼는 보편적 감정을 대변해주니 이런 것이 詩의 힘인가보다.
그리고 이미 듣고 읽어 아는 구절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의 다른 국면을 보게 되니
이런 때 세월가고 오래살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잊을 수 있다.
검색하는 김에 독일어 원문까지 퍼와봤다.
독어를 배워본 적 없는 나로서는... 독일어 싯구가 다 어느 가곡의 노랫말인듯 뵌다.
Im Nebel
Herman Hesse
Im Nebel
Seltsam, im Nebel zu wandern,
Einsam ist jeder Busch und Stein,
Kein Baum sieh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Voll von Freunden war mir die Welt
Als noch mein Leben licht war,
Nun, da der Nebel fällt,
Ist keiner mehr sichtbar.
Wahrlich, keiner ist weise,
Der nicht das Dunkel kennt,
Das unentrinnbar und leise
Von allem ihn trennt.
Seltsam, im Nebel zu wandern,
Leben ist Einsamsein
Kein Mensch kenn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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