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 주부들은 귀향 귀성에 제사음식에 이래저래 피곤하기만한 명절. 요즘 안좋아진 몸을 반영이라도 하는지, 진짜 한소리 들을 정도로 잠만 자다 왔어요. 아침에 늦잠 자고, 성묘가는 차에서 내내 자고, 성묘 갔다오자마자 자고, 외갓집 끌려갔다가 잤다가 술마시고 자고... 결국 마지막날, 친인척들과 대륙별로 섞어마시고 문자 그대로 뻗었다가 일어나니까 열두시네요. 숙취만 남아 머리는 아프고, 자려 해도 잠은 안오고 뒤척이니 두시. 결국 컴퓨터를 켰습니다.
몇일 뒤면 명함으로 아시게 될(이건 정말로 아시게 될겁니다ㅋㅋ), 현대자동차 대학생 홍보단 일 하면서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어요. 명확히 끝맺음 해줘야 하는 일이기에 지난번 일본때처럼 흐지부지는 안될듯 싶으나, 글이라든가 사진이라든지 여러 부분에서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봐주시고요(그곳에 쓰는 여행기 전문입니다), 사진같은건 나중에 더 올려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리도 가보고싶었던, 하지만 여행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끽해야 유럽, 인도 여행의 스탑오버쯤으로 치부되는 그곳. 홍콩, 마카오에 7박8일이나 있다 왔습니다. 자, 그럼.
- 도대체 이 여행의 시작은 뭐였을까
왜 홍콩행 티켓을 끊고 짐을 쌌던 걸까. 어렸을 때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라서? 여름 훈련을 마치고 온 내게 주는 휴식? 내년 입대하면 한 2-3년은 비행기 탈 일이 없어서? 시작은 이랬다, 캐나다 행을 포기하고(어쩜 밴쿠버 행 티켓 씨가 마를 수 있나. 어렵사리 구한 티켓은 200만 원대, 그 돈 주고는 도저히 못가겠더라. 있지도 않은 액수였지만) 나름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대다 ‘그래, 어디라도 혼자 조용히 떠나자.’ 하고 짚은 데가 홍콩. 개강을 일주일 앞둔 화요일, Air India에 몸을 실었다. 구글 어스, 여행 서적 탐독을 통한 사전답사와 은행 강도 뺨치게 치밀한 동선 계획. 따위는 천성적으로 못하는지라 책 한권 없이 떠났다. 어차피 가면 여행자용 가이드 맵 있을 텐데 뭐. 이번 여행에 컨셉이라도 정하자면 그곳에 ‘젖어들기’ 정도가 적당하겠다. 7박 8일이란, 홍콩으로 다소 긴 체류 기간을 잡은 것도 느긋하게 둘러보고 오자는 이유. 게으른 탓에 짐 싸기도, 여행자 보험 가입도, 환전도 출발 당일 아침에 부랴부랴.
< 내 자리는 라이트 윙백, 비행기 타면 찍는 그 사진들 나도 좀 찍어보자. >
한 시간의 시차를 거슬러 오후 여섯시 홍콩 국제공항 도착, 지금쯤 가면 분명 타죽을거란 친구들의 저주와는 달리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습도가 좀 높긴 했지만. 공항버스를 타고(우와, 2층짜리다!) 숙소인 침사추이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보니 좀 늦은 저녁시간. 마실 이라도 나가 저녁식사 하자는 생각으로 샤워를 하고 숙소를 나왔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다. 지저분하고, 시끄럽고(정말이지 광둥어의 성조는 견딜 수 없다), 여기저기 공사판. 그래도 골목골목 보이는 촌스럽고 큰 간판들은 예쁘더라.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noodle with chicken soup를 시켰다. 면발은 천사채를 씹은 것 같아 별로였지만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니 좋다. 아, 나는 이제 음식부터 이 공간에 서서히 녹아들어가는 건가. 여행하는 동안의 계획은 대충 이렇다. 큰 일 없으면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브런치 먹고, 산책 하고, 독서하고. 남들 다 가는 뻔한 관광지 보다는 이 나라의 독특한 냄새가 나는 곳의 조그만 귀퉁이에 조용히 내 자리를 펴고 앉아 이곳을 느껴보고 싶었던 거다. 아무리 발악해봐야 관광객 티를 벗겠냐마는. 아, 외모적으로 이미 팔할은 여기에 동화된 것 같았다. 사실 여행하는 동안 현지어 아니면 일본어로 말 거는 경우가 꽤 있어 ‘내 외모의 국적은 어디인가.’라는 절망 섞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했다. 자, 이곳 생활 시작이다.
- 홍콩엔 이런 것들이 있어요
우선 MTR, 지하철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MTR만으로도 홍콩 전역을 갈 수 있으며 노선 간 환승 거리도 짧아 편리. 우리나라 노원역 7호선에서 4호선 간 극악의 환승거리 따윈 없다. 가격은 대개 10HKD정도(참고로 1HKD는 약 135원, 요즘 환율 그래프가 사인곡선 수준으로 춤을 추는지라 잘은 모르겠다). 나 역시 MTR을 많이 이용했지만 개인적으로 버스를 좋아한다. 역시 홍콩은 2층 버스. 근데 이 녀석 지금 내리는 데가 어디라 방송을 안 해준다. 차 안에 노선도도 없다. 지극히 현지인 중심의 시스템인지라 멍 때리면 끝장, 게다가 난 그 안에서 졸아버리는 우를 범한지라 완전 엉뚱한 곳에 내렸다, 버려졌다. 참으로 다행인건, 그 곳에서 일본 수제 햄버거인 mos burger를 발견했기에 그냥 웃으며 들어갔다.
아, 페리도 중요한 교통수단. 구룡 반도(침사추이)와 홍콩섬(센트럴)을 오가는 이 녀석도 참 많이 탔다. 가격도 2.2HKD로 경제성은 물론 습하고 더운 홍콩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유람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여 통근수단으로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페리 안에서는 사진을 찍는 선글래스의 관광객과 무심히 책을 읽는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가 공존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 페리 난간에 다리를 쭉 뻗고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바보웃음이 절로 나는 상황. >
마지막으로 홍콩하면 떠오르는, 밤거리를 오가는 2층 전차. 트램이라는 녀석인데, 일단 최고다. 창문도, 에어컨도 없고 물론 버스와 같이 방송도 노선도도 없지만 그런 건 일단 한두번 헤매다보면 저절로 습득. 가격은 한정거장을 가도 종점 가서 처졸고있어도 무조건 2HKD! 하루는 밤에 트램만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니. 이럴 땐 무조건 2층에 앉아야한다.
< 다시 홍콩에 간다면 제일먼저 트램을 탈 것이다. 최고, 최고! >
홍콩이 좋은 건 미치도록 싼 맥주값, 홍콩이 싫은 건 더 미치도록 비싼 담뱃값. 기네스 병맥주가 2천원도 안하니 어찌 beer friendly정책을 펼치지 않을 수 있으리. 덕분에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엔 맥주와 친구먹었다. 국가 정책인지, 담뱃갑엔 각종 끔찍한 사진이 붙어 있고 가격도 4천원에 달한다. 입국 시 3갑 이상 반입 금지란 얘길 듣고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래도 거리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너구리 사냥꾼들. 니코틴이든 알콜이든 카페인이든, 막아도 할 사람들은 다 하더라.
< 담배에 발목이 왠 말이냐! >
- Bem-vindo a Macau, 마카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표지판 밑에는, 이렇게 영어 대신 포르투기스가 자리해 있다. >
3일째엔 일찍 일어났다. 배를 타고 1박 2일 여정으로 마카오를 갔기 때문. 포르투갈에 대한 애정이 자국민 못지않은지라, 포르투갈령인 마카오에서 그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포르투갈 음식도 실컷 먹고. 태풍이 온다는 얘길 들어서 주인아줌마한테 물었더니 손을 흔든다, 아무 이상 없다면서. 도착하니 그런대로 맑은 날씨와 홍콩보다 더 강하게 들리는 광둥어 억양(미치겠다), 그리고 곳곳에 영어 대신 쓰여진 포르투기스. 정말이지 관광도시 맞나 싶을 정도로, 여기 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 그렇다고 포르투갈어를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Quanto custa?(얼마에요?) 같은 짧은 몇 마디를 던져도 못 알아듣는다. 내 발음이 이상한건가. 택시 타고도 여기 가자고 한참을 떠들다가 결국 지도를 꺼내게 만든다. 한국 관광 온 외국인들도 이런 느낌일까. 아무튼,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세나두 광장(Largo do Senado). 홍콩보다 퇴폐미(?)는 떨어지지만 건물에도 거리에도 여기저기 유럽의 정취가 많이 배어있다. 아니, 혼재라는 말이 알맞겠다. 최고다, 마카오가 최고다. 이건 가보면 안다(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 혼자 여행한다는 것
< 세나두 광장, 마카오엔 유럽의 건축양식과 중국의 생활양식이 혼재해 있다. >
우리나라만 그런 건지, 혼자 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밥 먹기, 영화 보기, 술 마시기, 여행하기 등. 나 역시 여행할 때를 빼고 혼자 밥은 잘 못 먹겠다. 그 외에는 서슴없이 잘만 하는데(설마 혼자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나를 상상하시는 건 아니겠지) 혼자 여행을 간다니 많이들 놀란다. 위험하지 않은가는 2차적 문제, 심심하다 혹은 외롭지 않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하는데 그 눈빛은 ‘새끼 궁상떤다...’라고 묻는 듯. 그러니까, 마카오에서 첫 식사를 하던 포르투기스 레스토랑이었다. 자리를 안내받아 앉았는데 테이블에 죄다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 순간 혼자 앉은 나에게 시선집중, 아 싫다. 급기야 바로 옆 테이블에서 처자 여럿이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토론을 나누기 시작한다(귀는 열어놓았음). 이럴 땐 날 차라리 외국인으로 봤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완벽한 이방인이 되고 싶어서. 내 외모가 아무리 한족의 범위를 벗어났지만 내 머리 위엔 이미 한국 젊은이 절반이 넘게 쓰고 다니는 그 야구모자가 얹혀있단 말이다(이걸 쓰고 다닌 게 실수였다). 어쨌든 난 신경 안 써, 나 혼자 잘 논다니까. 그 쪽 테이블에 담배연기를 ‘후~’하고 소심하게 날려주고 나왔다. 물론 이런 불쾌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타지에서 만난 ‘안방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와 정 깊은 눈빛을 나눈 경우도 많으니까.
지금 나는 이 글을 다방 구석에 ‘혼자’ 처박혀 쓰고 있다. 나 이상해요? 이상하냐니까?
< 혼자 여행하면 아쉬운 것 중 하나가 내 사진. 그래서 이렇게 셀카 아닌 셀카를 남 몰래 찍어야 하는 고충도 있다. >
< 2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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