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라스 쉬프의 강연에 따르면
이 작품의 제목은 열정(Appassionata)보다
비극(Tragic)이 적절하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 비극 같은 이 작품에 카타르시스는 없고
괴멸만, 파국만 있다고 한다
정말 공감한다
1악장과 3악장 전체에 비극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특히 2악장에서 아타카로 이어진 3악장 시작 부분은
오케스트라가 끓어오르며 커튼이 열리는
베르디 오페라 종막의 장려한 최후의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낙서에 가까운 쉬프 강연 메모
1악장
알레그로 아사이
피소 1번과 같은 F단조 조성
미스테리한 도입부
napolitan transposition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트릴
멀리서 오는 듯한 운명의 모티브 딴따따 딴
왼손은 심장박동소리
풀오케스트라 효과의 eruption
great agitation, knocking rhythm
첫 주제의 장조 버전 tranquility
휴지부, 크레센도 없이 레가토만
피소 17번 템페스트같은 storm
2주제의 마운틴 클라이밍 같은 기초쌓기
운명의 모티브가 피아니시모에서 아포칼립스로 변화
연주 때마다 심장마비 일으킬 것 같다는 재현부
환상적인 coda
파괴적인 마지막 분출과 폭발
디에스이레같은 묵시록적 분위기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D플랫장조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
serenity, tranquility
행진곡풍의 solemn procession
dark sonority, deep strength
3단계 변주
1) 어둠에서 빛으로
2) 몰토 레가토의 아름다움
3) 빛으로 나옴 32분음표
변주 에필로그는 브라스-우드윈드-첼로-우드윈드 같은
더 큰 소노리티, 즉 관현악을 연상케 함
최종 음은 왼손 아르페지오
페르마타
danger로 진입, 트럼펫의 최후 심판 같은 느낌
3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프레스토
베토벤의 천재성
더 빠르게 더 빠르게의 재현부
헝가리안 차르다쉬, 마카브르 느낌
이 작품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필살기였다
결정타인 3악장에서 더 이상 빨라질 수 없으리라,
더 이상 촘촘해질 수 없으리라는 예측을
몇 단계에 걸쳐 넘어버리는 믿을 수 없는 템포의 건반 폭격은
들을 때마다 놀랍고 충격적이다
달인 요리사가 도마에 칼질을 하듯
고기와 채소를 토막내어 썰고 다지고 으깨고 짓이기다가
좌우로 휘리릭 뭉개기를 수차례 반복하듯
무자비하게 건반을 난도질한다
1,3악장의 강력한 캐릭터에 가려진
2악장 변주도 너무나 아름답다
총 7개 연주를 찾았다
1. 키에프(59 라이브)
엄청난 야만성과 꽉 찬 에너지로 폭주
3악장 프레스토 미쳐돌아간다
코다에서 왼손 도파가 도솔로 치명적인 음이탈,
그런데 이마저도 드라마틱하다
2. 프라하(59 라이브)
46분부터
키에프 연주와 비슷하지만 보정된 음질 때문인지 조금은 정돈된 느낌
3. 모스크바(59 라이브)
프라하 연주와 비슷하며
특히 3악장은 밀림 속 폭포수가 쏟아지는 느낌
4. 레닌그라드(60 라이브)
위 연주들과 차이를 모르겠다 타건감이 살짝 약한가
5. 뉴욕 카네기홀(60 라이브)
오래 전 명연주명음반에서 듣고 실신해 버린 그 연주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마치 생사를 걸고 하는 연주 같았다
연주 당일 리히터 개인적인 스토리가 있어서
감정적으로 더 휘몰아친 라이브였다고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스텝이 꼬여 미쳐돌아가다가
코다의 도파가 도미로 음이탈, 역시 이마저도 드라마틱하다
6. 뉴욕 웹스터홀(60 스튜디오)
실황보다 덜 미쳐돌아가지만 충분히 미쳐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리히터의 가장 완벽한 열정이 아닐까
참고로 요새 애용 중인 ‘미쳐돌아간다’는 표현은
디시의 클래식관련갤에서 어느 분이 사용한 표현인데
대체불가하여 나도 끌어다 쓰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나만 가나?
많이들 가서 눈팅하면서 간다고 드러내기도 뭐한 곳이긴 하다
7. 1992 라이브
77세 때 연주로 많이 느리다
젊었을 때 6분대이던 3악장이 8분대로 늘어났다
그래도 긴장감은 여전하며 이러한 느림이 장려한 파국의 느낌을 오히려 고조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