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년 가량 끌어오다
사나흘 에너지를 쏟아 마무리한 책이다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러셀 셔먼의
피아노라는 악기와 피아노 연주자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로운 잠언들이자
좀 더 넓게는 음악인들이 처한 현대의
문화적 환경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였다
본격적인 비평 문체가 아닌,
유니크한 통찰력과 자유로운 시적 표현으로
풍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한편으로 깐깐한 사유를 요구하는
조금 깊이 들어간 음악교양서..로 읽었다
러셀 셔먼은 스토이어만의 제자이자
손민수 피아니스트/교수의 스승이며
손민수는 임윤찬을 지도했다
그렇게 이어진 교육철학과 영향관계의 암시가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밑줄 긋고 발췌하자면 한이 없지만
결국 내게 (음)악서는 음악을 듣기 위한 방편이므로
책에 언급된 작품들을 기록해 두고 들으려고 한다
쇼팽 발라드 g단조의 페달 사용
라피협 3번 1악장 2주제의 허망한 이상주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드뷔시 전주곡 중 브뤼에르Bruyères(히스꽃)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op.2-1 서두
슈만 피아노 5중주 2악장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6번
슈만 시인의 사랑(알프레드 코르토 반주 샤를 판제라 노래)
리스트 단테 소나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op.109
쇼팽 A플랫장조 폴로네즈 op.53(고도프스키 연주)
쇼팽 F샵장조 녹턴 op.15-2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c단조 호보켄20
모차르트 피아노 4중주 g단조 K.478 1악장 2주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2번 F장조 K.332 1악장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1번 B플랫장조 op.22 1악장 전개부 2악장 아다지오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 op.120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op.57
리스트 자장가와 쇼팽 자장가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리스트 회색 구름Nuages Gris
드뷔시 모음곡 판화 중 그라나다의 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op.2-1 전개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 op.10-3 마지막 악장
슈나벨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저 중에서 뽑아본 플레이리스트
* 슈만 피아노 5중주 E플랫장조 op.44
p.210-211에 나온 이 2악장의 으뜸 주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
체념과 저항, 절망과 도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듣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며,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 주제의 본질은 마치 돌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어떤 잔인한 천사가 남긴 서판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호소력을 감당할 수가 없다. 구원과 죽음의 일체를 부르짖고 있는 이 곡은 중력과 인과의 법칙을 거부한다
* 슈만 시인의 사랑(코르토/판제라)
* 모차르트 피아노 4중주 g단조 K.478
* 쇼팽의 자장가와 리스트의 자장가
p.309에서 두 자장가를 비교한 대목-->
쇼팽의 자장가에서 아기를 어르는 효과는 반복되는 화성적 바탕 위에 놓인 일련의 변주곡-뒤로 갈수록 장식이 많이 붙는다-에 의해 이루어진다.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는 이 두 가지 흐름(하나는 팽창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된) 사이에서 형식이 표류한다. 샤콘과 비슷한 이 곡의 지배적 구조는 바흐와 그 이전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리스트의 자장가에서 아기를 어르는 효과는 쇼팽의 자장가에서처럼 똑같이 반복적이지만 무질서한 특징 때문에 더 중독적이고 반음계적인 화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쇼팽의 자장가는 진행이 차분하고 끝없이 반복되지만, 리스트의 자장가는 초시간성의 추구와 황홀경의 순간이 합쳐져서 감각을 어지럽힌다. 물론 둘 다 넋을 잃게 할 만큼 아름다운 곡이다. 쇼팽은 뒤를 돌아보고 리스트는 앞을 내다본다.
* 아르투르 슈나벨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최후기 소나타 네 개의 경우
내로라하는 명인들의 강력한 연주들에 익숙해진 나머지
슈나벨 연주의 에너지 레벨이 떨어져 보인다는 점만 제외하면
전곡이 너무나 단정하고 아름답게 배열되어 있으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약한 번호들의 존재감과 매력도
새롭게 다가온다 베토벤 피소 전곡 연주는
이것만으로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당분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은 아르투르 슈나벨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은 조르디 사발로 가겠다
p.s
지난 주말 풍월당 김문경씨 강의에서
메인 주제인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사이사이로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 몇 개를 감상했다
라흐마니노프의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중 4곡 타란텔라를
세르게이 바바얀과 함께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서..
소설 <유리알 유희>에서 헤세가 지고한 천상의 기예로
형상화한 유리알 유희라는 퍼포먼스의 가장 근접한 지시체는
역시 인간의 피아노 연주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새해맞이 인사로 강의 도입부에 소개된 곡도 다닐 연주였는데
바흐의 유명한,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었다
푸가의 기법을 완주한 직후의 앙코르곡이라고 했다
매년 유럽의 신년음악회를 도배하는 슈트라우스 왈츠류는
도대체 15분 이상을 못 듣겠으며 소위 신년음악회라는 것을
바흐의 작품만으로 꾸려도 좋지 않을까.. 라고 하시는
김문경씨 말씀이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나날이 '자연인'이 되어가는 다닐.. 다음달 내한 예정인데
한국 오면 청담동 헤어샵에 한번 데려가고 싶다는 만담도 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