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미하일 잔데를링
1부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 서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피아노 임윤찬)
2부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알아도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모르며
지휘자 미하일 잔데를링은
쿠르트 잔데를링 아들이라는 사실만 알 뿐
오직 임윤찬만 생각하며 간 공연
윤찬이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멘델스존의 서곡이 귀에 안 들어왔고
윤찬이 연주의 여운에 사로잡혀
2부도 건성으로 들었다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의 아름다운 멜로디 말고는..
유명세에 비해 매력포인트를 잘 몰랐던 이 곡을,
이번에도 임윤찬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유리알 유희를 통해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음악인 듯 듣는 이의 귀를 열어주었다
대단한 큐레이터가 아닐 수 없다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해석과 강력한 표현주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자기만의 시간설정 후
구간별 명료한 대비와 밀당으로 청중을 빨아들이던
1악장의 압도적 카덴차
2악장 왼손의 돋을새김
빠른 템포와 독특한 박자감으로 중심 선율을 주무르며
일필휘지로 내달리던 3악장의 역동성
분명 모차르트인데 전체적으로 베토벤적인 격정과
스케일로 변용, 확장된 모차르트 같기도 해
음악사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내 자리는 홀 상층부에서 피아노 상단 및 건반과 연주자를
거의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부감 시점이어서
연주자의 얼굴과 표정은 전혀 볼 수 없는 대신
연주자의 모발과 연주시 척추기립근 및 견갑골을 덮은 등근육의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위치이자
조금 과장하면 피아노라는 거대 장치에 맞서
예술적 자아가 자신의 피지컬을 활용하고 제어해 가는
전면적 투쟁의 서사를 목격하게 되는 위치였다
한마디로 피아니스트와 피아노와의 대결이라는
메타포 그 자체인 구도였던 것
문득 얼마 전 읽은 재미난 책이 떠올랐다..
피아노 연주자의 신경해부학, 스포츠선수에 비견되는
애슬레틱한 몸의 작용을 남다른 통찰력으로 탐구했던
러셀 셔먼의 <피아노 이야기>
이 책의 초반부에 양손의 손가락들이 저마다 가지는 기능과 역할,
발과 접촉하는 페달에 관한 서술 등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가운데
척추에 관한 대목도 있었다
피아니스트의 메커니즘은 그물 침대처럼 손가락 끝과 척추 사이에서 작용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물 침대는 좌우로 흔들거리지만 피아니스트의 운동은 비교적 상하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 운동은 상하 운동이라기보다는 회전 운동이다 척추와 손가락 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연속적인 순환을 통해 무게와 에너지가 전달된다 유원지의 대회전 관람차와 비슷한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순환 과정에서 보이는 어느 정도의 자유는 늑골에서 살짝 떨어져 약간 떠 있는 상태에서 상하좌우로 자유로이 움직이는 팔꿈치의 자세에서 비롯된다
척추는 비교적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면서 그 권한을 고루 분배해야 한다 모든 것이 척추로 흘러 들어가고 척추에서 흘러나온다 척추는 부처처럼 차분하면서도 민감하게 깨어 있다 어깨와 팔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척추의 충격파를 타고 힘을 전달한다 손목은 피스톤처럼 조용히 들락날락한다 그 목적지는 완강하면서도 유연하게 건반 위를 지키는 손가락 끝이다 손가락 끝은 점점 커지는 운동량을 정확한 순간에 흡수하고 전달한다 완벽하게 인식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피아노 이야기> p56-57
이 대목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최종적으로 건반과 접촉하는 손가락 끝의 작용이
서술되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않겠다
피아노와 피아니스트를 수직으로 내려다 보는 나의 위치에서
윤찬이는 한 마리 맹금류 같이도 보였다
특히 협주곡 특성상 오케스트라에 귀기울이며
지휘자의 사인을 기다리는 휴지 부분, 즉 준비 부분에서
더 그런 인상을 받았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흐름을 타면서도
독수리 날개같은 두 팔을 들어 날아오르기 전의
매복 자세가 수차례 느껴졌는데 이와 관련해 또 생각난
러셀 셔먼의 문장이 있으니 추가한다
피아노 연주의 법칙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은 법칙이라기보다는 다른 부수적 규칙들에 대한 전제 조건이다 이것은 매복 공격의 법칙이다 달아나는 16분음표를 붙잡으려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노리다가 덮쳐야 한다 이 게임의 이름은 ‘준비’다 준비가 없으면 게임의 규칙도 없고 게임이 진행되지도 않으며, 점수를 올리거나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준비가 열쇠이다 코치들이 귀가 따갑도록 충고하듯 공격하기 전에 머릿속에 표적으로 그려야 한다(이 경우에는 머릿속에 소리를 떠올려야 한다)
준비는 긴장된 상태가 아니라 민감하게 깨어 있는 상태이다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육체적 및 영적 진동의 소리 없는 프렐류드를 노래한다 이 프렐류드는 연주의 이미지이자 다리 구실을 한다 이 프렐류드의 진동은 매우 부드러워 큰 근육들로 연결되는 통로를 열어주며 기대와 행위 사이의 접촉을 분명히 해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공격자가 표적에 바싹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반 위에 또는 건반의 진동에 코를 들이대고 있어야 한다 발레리나가 미리 구성된 동작에 따라 아라베스크를 구사할 때에는 임의로 회전을 할 시간도 겨를도 없듯이 이런 경제적 동작은 우아함 그 자체이다
-<피아노 이야기> p51-52
*
이번 모피협 20번 공연은 앙코르 첫 곡이었던,
같은 d minor인 모차르트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
피아노 편곡버전까지 한 묶음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완성되는 공연 콘셉트였을 것이다
한 음 한 음을 각인시키며 온힘을 다해 내려치던
이 연주의 장엄함과 비통함을 잊을 수 없다
피아노가 레퀴엠 본곡의 합창과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재현해 내고 있는 것 같았으며
마지막엔 종소리가 나는 듯했다
유튜브에서 찾은 그나마 근접한 연주는 이것이고
강렬한 스피릿과 깊은 정서를 전달하는
마리아 유디나의 연주도 있었다 유디나는
윤찬이가 관심 있어하는 연주자 중 한 명일 것이다
*
앙코르 두 번째 곡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는
아트 테이텀에 대한 오마주로 봤다
클래식음악에서 즉흥연주에 대한
개방적 견해를 펼친 바 있는 로버트 레빈은
모차르트가 지금 환생하면 어떤 음악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할 것 같느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답했었다
아트 테이텀이나 오스카 피터슨 같은 연주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래 게시물 임윤찬음악연구소_즉흥연주와 아트 테이텀 참조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즉흥 연주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호로비츠와 라흐마니노프는 아트 테이텀을 동경했고, 헝가리 음악가 리스트도 즉흥의 달인이었습니다 연습한 악보대로만 연주하면 긴장이 되고 무대에서 많은 가능성을 잃게 됩니다”
-2022년 임윤찬 인터뷰 중에서
*
모피협 20번 2악장이 쓰인
영화 [아마데우스] 엔딩
이 영화는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모차르트 창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