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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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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낭만적이라는 의미, 그리고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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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는 그렇다 치고
낭만, 낭만적..
이 용어 사용은 늘 부담스럽다
그런데 쓰지 않을 수도 없다
몹시 투박하여 오해의 여지가 많은 낱말인데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맥락이 심각하지 않으니 만만하게 쓸 따름이지
예민하게 굴자면 한없이 예민해지는 낱말이다
내게 낭만적이라 함은
다분히 서구적인 정서이고 심미적인 표현이다
왜 늘상 서구이며 서양인가 하는 질문은 그만하기로 했다
서구문화, 서양문화가 자아형성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기에 어쩔 수가 없다
낭만적이라는 말을 나는 주로 이런 의미로 쓰는 것 같다
강렬한 감정을 담았으나 센티멘털하지(감상적이지) 않음
분위기가 비밀스럽고 멜랑콜릭하며(우울하며) 염세적임
이런 느낌을 서양 고대나 중세의 유적지 및 정원,
그리고 건축과 회화에서 느껴보았으며
파도치는 해안 같은 특수한 자연 앞에서 자주
번역시들에서 가끔, 그리고
음악에서는 일상다반사로 느낀다
단 인간에게는 아니다
인간사에서 낭만적인 것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으리라
간혹 인간관계에서 이 말을 쓴다면 진심이라기보다
무해한 조롱의 의미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함인데
경험상 관계자나 청자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진지한 의미에서 낭만적이라는 표현은
오직 예술 작품과 예술적 공간, 자연만이 대상이다
그중 음악은 예술 가운데 가장 접근이 용이한 낭만의 바다이다
인간에게 즉시, 전체로 스며드는 가장 ‘환경’적인 장르여서
낭만적이라는 말을 별다른 장애물 없이 검열 없이
직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예술이 음악인 듯하다
나성인 씨 인용
-음악은 낭만이다 그득하게 일렁이는 파도다 굳이 슈베르트 바그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음악 자체의 본성이 그러하다
음악이 한 줄기 깔리면 왜 평범하던 일상에 생기가 도는 것일까? 본디 파도를 닮은 음악이 본디 물인 우리의 마음 샘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울지든 잔잔하든 우리 안에도 겹겹 파문이 이는 것이다
마음이 음률로 일렁이기 시작한다 이제 물에 비친 하늘도 더 이상 움직임 없는 허공이 아니다 물결이 흩어놓아 하이얀 포말에 가려졌다가 말갛게 다시 나타나는 변화무쌍한 영상이 된다
그러므로 노발리스가 세계를 낭만화하라고 했을 때
이 드라이한 시대에 과연 무엇을 통해? 라고 자문한다면
그나마 해답은 음악인 것 같다
다른 것은 도대체 생각나지 않는다
한편 음악이 다른 콘텍스트에서 활용되는 경우는 또 머리 아프다
예컨대 낭만의 정수, 낭만 그 자체인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있다
이것이 오래전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사용되었다
이 경우 음악은 서사와 영화의 로맨티시즘을 부연 증폭하는 데
너무나 유효적절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과해진다
과잉이 되면 음악 자체의 낭만성이 퇴색되는 감이 있다
시대가 한참 흐른 오늘날 이 영화 속 이 음악을 들으면 더 그렇다
음악이 영화의 시그니처가 됨을 넘어
영화가 이 음악의 두 시간짜리 뮤직비디오가 돼버렸다
이 점이 또 비스콘티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낭만주의와 낭만주의의 지양이 공존하는
원작자 토마스 만의 정신과는 멀어져 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존 부어맨의 아서왕 영화 [엑스칼리버]에서 란슬롯과 기네비어가
눈이 맞아 전류가 흐르다가 이윽고 그들의 열정이 폭발하는 장면까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이
심심찮게 나올 때도 비슷했다 다시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산전수전 20세기를 거친 21세기 인류에게
수많은 매체 콘텐츠에 절여진 문화소비자들에게
소위 낭만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본능적 알레르기랄까
그래서 진짜 낭만적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최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도 사용되었다
이 영화에 로맨티시즘이 있다면
파도가 몰아치는 만조의 해안에서 매장과 수장
그 중간 개념의 처절한 자살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장면일 텐데
예상을 뒤엎고 아다지에토는 여기에 흐르지 않는다
기억이 맞다면.. 그 대신 클래식애호가인
혐오스런 중장년 한국남자의 한 전형을 풍자하는 동시에
남편을 죽이러 가는 탕웨이의 깜찍하고 비장한 등반 여정에
강렬하게 사용되었다 효과는 나쁘지 않았고
이런 아이러니한 음악사용법이
비스콘티적 사용법보다 세련되고 영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속보이는 선택, 즉 영화가 조금이라도 쉬워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벌벌 떨며
절대 니네가 기대하는 대로는 해줄 수 없다는,
굳이 이기려 드는 그 사고 회로는 그거대로 밥맛이 없었다
내가 많이 못 돼 먹어 그럴 것이다..
그렇다 음악 자체는 낭만이지만
음악의 낭만이 활용되는 방식들에서 오히려
낭만의 감소 퇴조 배반 왜곡이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결론적으로 음악은, 다른 콘텍스트로 이동시키지 말고
잡스러운 경로를 배제하고 음악 그 자체로 경험하는 것이
낭만을 경험하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러 아다지에토의 로맨티시즘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그것이 들어있는 교향곡 5번 전체를
흐름 끊지 말고 한 번에 감상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음악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와 설정으로
물의 도시 베니스가 홍수에 잠기는
초겨울 아쿠아알타 시즌에
페니체 극장에서 이 곡의 연주를 듣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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