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름 |
주향 |
 |
| 제 목 |
초여름날의 야외 인형극 무대 |
|
워싱턴 가던 날 사라 듀크 정원 내 야외 원형극장에서 열린,
Paperhand Puppet Intervention 극단의
사랑스러운 인형극을 보고 떠났었습니다.
저 Paperhand Puppet Intervention이라 함은
노스캐롤라이나의 랄리 더램 채플힐을 아우르는
일명 트라이앵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형극 전문 극단으로서
손으로 만든 마스크, 대나무 인형, 종이 인형, 실물크기의 거대 인형 등을
이용하여 창작 쇼를 선보이는, 지역 예술 집단인 것 같습니다.
화창한 초여름, 토요일 오전의 햇살과 자연과 색채가
사진에 잘 살아나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몸풀기 시간.
황소탈을 쓰고 스탭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인형조종사들이죠.
음향 담당자 포함, 불과 열 명 이내로 이루어진 작은 극단인 듯했습니다.
진행하는 아저씨가 저 귀여운 아기 만돌린으로
배경음악을 깔면서 구연을 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타악기를 두드리기도 하고 독일동화에 나올 법한
목동의 피리와 사냥꾼피리 같은 것도 붑니다.
The Water of Life라는 제목의 창작 드라마였습니다.
생명수를 찾아가는 한 젊은이의 선한 여정을 그린 이야기로
환경친화적이고 도덕적이며 말하나마나 지극히 교육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단 이런 문화행사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의 현장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가치를 열심히 심어주려는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 얕게나마 스쳐 온 경험에 불과하지만
이 나라.. 정말이지 순진할 정도로 아이디얼리스트들의 나라입니다..
그것은 또 대개가 진심이어서 우리네 고질적인 버릇대로
냉소하거나 조롱할 수도 없을 지경이죠..
그들이 선과 이상이 통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체계적 좌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역사 탓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성원의 요구를 반영하는, 반영하게끔 돼 있는, 반영할 수밖에 없는
사회시스템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아니, 우리가 상상해 온 것 이상으로 그 시스템은 튼튼하고 투명한 것 같습니다.
강력한 인프라들, 부문부문 생활화되어 있는 참여와 자치의 개념,
법규에의 엄격한 준수, 그 동전의 뒷면으로서
위반에 대한 엄격한 페널티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제도의 힘..
그래서 그런지 저는 여기서.. 미국이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때 '사회주의'란 사회계획의 이념이기보다 사회공학의 이념에 가까운 것이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한 모델일 테니까요.
아마도 제가 대도시 아닌 미국의 향촌에 거주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 (대)도시의 문제라는 것은 한 국가의 특수한 문제라기보다
보편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 문제들인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반면 가장 미국적인 문제, 미국적인 문제해결방식을 비교적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가 사는 이런 동네, 즉 내륙의 향촌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삼천포로 나간 김에 미국에 대한 종합적인 인상을 덧붙이자면..
한 마디로 미국은, 잘 사는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산다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라고 빈부격차가 없겠습니까마는..
여기라고 좌절한 계층이 없겠습니까마는..
어쩌면 제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계급을
이쪽 중산층에 귀속시켜 버린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거칠게나마 인상이, 기분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현재 이 나라에 관한 한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라면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이라든가 국제문제에 대하여서만은
상당히 무지해 보이고 대단히 무관심해 보인다는 점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자기네 사는 일 말고는 바깥 세상에 관심이 없는 듯해요.
정확히 말하면 잘 몰라도 상관없는 분위기랄까요.
잘 살아보겠다고, 나름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모여든 이주민들의 나라이고
사회가 잘 살게 해주고 기회를 주니 그로서 만족하며
불만 있으면 가능한 통로로 어필하고 권리를 챙기면 그만이지
남의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국 정부가 얼마나 패권주의적인지
뭐, 그런 데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요..
밖에서 도둑질을 하든 쌈박질을 하든 사기를 치든 말든
이렇게 저렇게 챙겨 온 것들로 집안식구 잘 먹여살리는 가장에게
도덕성을 묻는 식구들 있습디까..
[볼링 포 컬럼바인]([화씨 911]도 비슷하리라 추정)처럼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꼰 영화가.. (우리로선 중고등학생도 알 만한)
겨우 그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가 미국 사회에서 새삼스레
주목을 끌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는 것이죠..
극이 끝난 다음 서비스로 등장한 자이언트 퍼펫.
숲의 정령, 또는 나무들의 신인 것 같았습니다..
당산나무 신령이라든가.. 토토로나 원령공주풍의 자연신 이미지와 통하죠.
저 모습엔 북미 인디언의 얼굴, 특히 샤먼의 얼굴이 들어있는데
가까이에 왔을 땐 무서웠습니다.
함께 나타난 드래곤.
이불 아래서 엄마들이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단원들이 나와서 묻고대답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진해 남산유치원 시절 오보라 선생님과 김정숙 선생님이
우리가 말 잘 들을 때 가물에 콩나듯이!
바리케이드 치고 보여주셨던 헝겊인형극 콩쥐팥쥐..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 수녀와 트라프 일가
어린이들이 벌이던 인형극 외로운 양치기 공연..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던가 존 큐잭이 거리에서 벌이던 외로운 마리오넷 공연
(아벨라르를 그리워하며 애욕에 몸을 비틀던 엘로이즈의 독무)..
몇 년 전 남산 국립극장에서 본 프랑스 태양 극단의
지극히 좌파적이고 지극히 낭만적이면서 지극히 이국적이었던
내한 무대 '제방의 북소리'.. 이러한 계보에 이어지는..
잊을 수 없는, 행복한.. 내 인생의 인형극 공연이었습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