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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주향

제 목

초록의 하일랜드

팀버부쉬라는 에딘버러 기반의 여행사 상품으로
1박2일의 하일랜드 투어를 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세팅이 된 로맨스물의 주인공들은 죄다 이
스코틀랜드 북방 고지를 의미하는 하일랜드땅의 전사들이죠.
[브레이브 하트]와 [롭 로이]와 [하일랜더]의 배경이 되었던 그곳.

투어의 경로

게리라는 이름의 밝고 편안한 인상의 젊은 스코티쉬 가이드가
직접 운전, 에딘버러에서 출발한 이날 투어는..
윌리엄 월레스 기념탑과 스털링을 지나
주로 하일랜드 북서쪽을 탐사하는 경로로서
에일린 도넌 성과 네스호 방문이 포함되어 있으며
숙박 장소는 포트 윌리엄이었습니다.
꼬박 이틀.. 게리가 선곡한 청정한 켈트음악들을 들으며 달린
여한 없는 초록의 세상이었고.. 16인의 여행객 중
저 포함 한국인이 5명으로 대세여서 마음도 편했습니다.

저 말고 나머지 한국인 네 명은
교대 출신 동창생들인 6년차 초등학교 여교사 4인조.
제가 여행지에서 이 현지투어라는 것을 몇 차례 해 보았지만
언제나 긴장이 되지요, 특히 작년 로마에서 티볼리 투어때
길을 잃고 버려진 당혹스러운 경험 이래로..
다행히 저 4인조가 영어도 잘 알아듣고 어찌나 발랄하고 자신만만하게
여행을 즐기는지 걔네들 뒤만 졸졸 따라다녔답니다..
고마워서 점심을 샀는데.. 그때 교사라고 말했더니
자기들도 정체를 고백하더군요.. 그리고 저더러, 놀랍게도!
교수님인 줄 알았다는 거에요 글쎄..
음.. 저는 어디 가면 교사티 난다, 선생님이죠? 그럴 줄 알았어..
이런 말은 늘 듣고 살아와서 그러려니 하는데
교수라니.. 늙긴 늙었나 봅니다..
어쨌든 자기들이 가르치는 초등생들처럼 발랄한 이 교육동지들은
내내 저를 경로우대 해주었습니다.. 밥먹을 때 숟가락포크 먼저 챙겨주고
화장실을 가도 먼저 들어가라 하고 넷이서 뭐가 그리 아기자기하게
재밌는지 수다를 떨면서 맛있는 간식 수시로 제공해주고..
저는 열심히 사진만 찍어주면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영웅 중 하나인 롭 로이 묘소
영화 또한 [브레이브 하트]보다 [롭 로이]가 더 재미있었죠..
리암 니슨이 멜 깁슨보다 백 배는 더 스코틀랜드 전사 같구요..

하일랜드 투어를 하며 정말 많은 지명이 스쳐지나갔지만
제가 기억하기로 한 것은 다음 세 개의 단어입니다.

글렌(glen) - 밸리
벤(ben) - 마운틴
로크(loch) - 레이크

이 세 개면 많은 지명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네스호는 로크 네스죠.
벤 네비스, 글렌 코.. 이런 식의 지명들이에요..

스코틀랜드의 호수를 뜻하는 로크는 과연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청동이나 흑옥을 얼려놓은 결정처럼 생겼다고 할까..
들여다 보면 무섭고.. 결코 유쾌한 이미지의 호수가 아니어서
네스호 괴물 전설이 그냥 생긴 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로크의 심연

하일랜드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언제부턴가 게일어와 병기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하일랜드의 초록입니다.
같은 초록이라도 열대에서 보게 되는 수분을 머금은
진득한 녹색이 아니라 파스텔톤의 분말성 초록으로서..
입자가 고르며 두께가 느껴지는 초록의 벨벳, 혹은 초록의 케익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황량하구요..

일기가 불순하여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다가도 짠하고 해가 나고..
그 와중에 열심히 찍은 사진들.. 하지만 이래 와서 보니
한국 시골의 산기슭과 크게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왜 나는 [브레이브 하트]를 찍은 존 톨의 각도나 색감이 안 나오는 것인지.. ^___^
하여튼.. 여행지에서 좋은 것을 보았을 때 사진이 육안 내지 심안을
제대로 반영해 주지 못한다는 욕구불만.. 이것 때문에 다들 돌아와서
보다 성능 좋은 장비에 눈독을 들이기도 하고 사진술도 배우고 이러는 모양입니다..

초록의 산야에 보랏빛 헤더의 군락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 헤더 군락은 며칠 후 브론테 자매의 영감이 서린 요크셔 지방에 갔을 때
더 제대로!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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