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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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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출장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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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올 해 네 차례 출장이 있었다. 3월, 4월, 6월,10월. 일주일에서 열흘의 기간, 주로 이태리와, 영국이었고 루프트 한자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서 갔다. 환착 시간대가 늦은 밤이어서 공항역사에는 넥타이 풀어헤치고, 하이힐 곱게 개켜둔 피곤한 모습들이 매번 가득했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에서부터 이민자, 비즈니스맨, 그냥 유럽 여기저기 볼일 때문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국인, 독일인, 유럽인, 미국인, 물론 많은 한국인들...
이런 출장은 어떤 종류의 묵지근한 공황상태를 야기하는 것 같다. 순간적인 시공간 증발의 느낌, 이 사람들이 다 어디서 몰려와 이 국경지대에서 뭐하고 있나 같은, 혹은 좀 더 맛이 간 상태일 경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라 이 주접인가..;;류의, 희끄무레한 상실감과 마주하게 된다. 아마 마음의 절반은 업무 귀속성에 묶이고 절반은 무국적 상황에 놓인 심리적 황폐의 일단 같은데, 소극적인 자유로부터 오는 일종의 상실감일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종류의 상실감이 쾌감을 주는 듯 하다는 것이다. 이 쾌감이란 많은 여행 중독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제공되는 어떤 ‘배후’로서, 내가 아는 것들과, 나를 아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소극적인 자유 덕분이다. 내가 아는 몇 몇 여행중독자들은 이런 소극적인 자유밖에는 취할 자유가 자신의 삶에서 더 이상 남아있지 못한 걸 발견한 사람들이다.
나를 증발시키고 이 삶이 아닌 연극 무대 위의 환타지를 연극하는 배우가 되는 일이 바로 향락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향락의 수단으로서 여행이야말로 하나의 고급한 무대로서 적절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삶을 연극무대로 치환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고도 존재의 고비를 넘기는 사람들이다,고 한 우울증 환자 말했었다. 무대가 더 화려해질수록, 배우가 이 모든 게 연극무대임을 알면 잘 알수록, 살아남는 일은 용이해진다고.. 맞는 말 같다.
2. 공항에서 정기적으로 먹었던 카페 마끼아토 때문에 한 번은 배탈이 나서 죽을 뻔 했고 한 번은 모데나 지역의 전통 시장을 구경하다가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10월의 마지막 출장은 매우 힘들었지만 독특한 기억을 남겼다. 나는 베네토 지방 팔코나라에서 시작해 아펜니니 산맥으로 연결된 도로를 죽 따라 올라오는 여행을 했다. (실은 이태리 업무 담당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불러 400 km가 넘는 거리의 볼로냐 공항까지 가도록 주선해 주었다. 원래 600유로였는데 요금을 250유로만 낼 수 있었다. 일행은 모두 이 코스를 거부하였고..)
파노, 세니가니아, 페사로, 산 마리노 공국, 그라다라, 에밀리아 로마냐를 거쳤고 우리가 달려가던 이태리 국도변의 오른쪽으로는 아드리아 해와 리미니의 그 해변이 휙휙 지나갔으며 청회색 하늘과 노랑이 섞인 키리코 그림 속 오후의 색깔이 출렁거렸다. 차창의 오른 편으로 크로아티아의 각광받는 휴양지로 이어지는 해변의 풍광이 펼쳐졌으며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띄엄띄엄 중세풍 교회들이 서 있던 장면도 기억난다 . 고딕 양식의 성 모양이 언뜻 언뜻 지나갔다.
해변에 서있던 짙은 오렌지색 집들을 보니 이태리 담당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었다. 그는 여름마다 크로아티아에 있는 자기 별장에서 한 달 내내 방갈로를 치고 노는 사람이었다.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이 그의 집 근처로 모여들어 기타 퉁기고 술 먹고 페인트 칠을 하며 보낸다고 너스레였다. 이태리인들은 대부분 손수 페인트칠을 하며 살고 있었고, 그 색상의 복잡 미묘함과 심금을 울리는 깊이 덕분에 낡은 가옥 구조가 지닌 난점, 벽 틈의 금, 전체 외관의 불균형등이 많이 감춰진다고 했다. 실제로 피사 인근에 자리한 어여쁜 식당들에 들를 때마다, 그 노랑과 파랑에 눈이 멀어서 그 집들이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고, 벽마다 금이 갔으며 페치카 부분은 무너져 있었다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리미니 해변으로 이어진 오렌지와 갈색의 집들은 그런 집들이었다. 집주인이 친구들과 하모니카를 불며 이겨 바른 회벽의 집들.
몇 차례 슬쩍 구경했던 이태리 중동부는 매 번 다른 차원의 이미지가 나타나고 사라졌으며, 베네토 사칠레와 모데나, 피사와 그 인근 지역, 베네치아는 완전히 서로 틀렸다. 나는 그 모두가 좋았지만 로마에서 받았던 아주 나빴던 최초의 이탈리아 이미지들을 버리지는 못했다.
하긴 한국의 어느 곳도 처음 시작은 언제나 낯설고 두려웠다. 사람들은 억세었고 마을에 인접한 국도마저 살인범의 은신처 같았었다. 하물며 이태리는 깡패와 바가지, 과장된 제스처로 점철된 첫인상을 준 곳으로서.. 나또한 얌전한 히스테리아 환자, 혹은 한국형 신종 깡패(;;)로 오인되었을지도..(이태리 깡패인 마피아들은 대단한 히스테릭들로 영화에서 많이 묘사되었다. 맥락이 통한다:)
공항으로 이어진 해변의 국도를 달려 리미니,(바로 그!)를 지나자 너무나 행복하였다.. 그날(10월 23일), 하늘은 끝없이 높았고 구름에 반사되는 청명한 흰색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공기, 바람, 풀, 하늘같은 단순한 어휘들이 뼛속까지 사무쳤던 날이었다.
택시 운전사 로베르토는 참으로 친절한 이태리 아저씨였는데 리미니를 지나며 ‘돌체 비타’와 아마르 코드‘ ’펠리니‘가 중요한 자신의 심리적 자산이라고 하며 꼭 그의 영화를 보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의 자산이라는 건 기댄다는 뜻이지 전부 동화(absorbed)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펠리니는 자산일 뿐 그에게 중요한 문화는 아니었고, 오직 음악, 그것도 이태리 오페라와 뮤지컬이 최고인 사람이었다. 오페라가 보이는 이태리적인 위엄과 극적 과장성, 고압적인 정서상의 압박 때문에 자신이 무미 건조한 기분일 때 오페라로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압박하는 인물들의 충돌을 대하면 자신의 고민들은 하찮아 진다는게 그의 변이었다.(그는 차에서 내내 로린 마젤이 지휘한 ’라트라비아타‘ 중 ’꽃에서 꽃으로‘를 틀어 놓았다.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작은 반드시 찾아본다고 했다. 그의 방한 사실도 다 꿰고 있었다) 덧붙여, 그는 ‘로마냐‘라는 이름의 도시들은 무조건 다 좋다고 했다. 로마냐가 ’Happy people'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독백-미스터 로베르토, 제가 세 시간동안 할아버지를 좋아했던 건 할인된 250유로 가격 때문이 아니에요.(:) 해피 피플을 말하던 순간 당신의 얼굴에서 발산되던 행복의 광채 때문이었어요. 언제라도 다시 뵙길 바라겠어요. 특히 리미니 근처에서 택시를 타게 될 어느 화창한 날에는요.
3. 올해 상반기에 영화 ‘밀양’을 보았다. 다른 건 기억이 안나고 영화 말미에 주인공이 거울을 들여다 보던 장면과 살인범을 첫 대면하던 경찰서에서 몸을 한없이 움츠리며 피하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살인범을 벌레처럼 취급했던 게 아니라, 본인이 한 마리 벌레처럼, 이청준의 원작‘ 벌레이야기’의 타이틀인 벌레라도 되는 양, 그렇게 그녀가 졸아 들었던 장면이 또렷이 기억난다. 자식 죽인 살인범 앞에서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려 드는게 파격적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인상적인 연기로부터 전도연이 상당한 배우적 본능과 감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인 참혹의 묘사는 그녀의 움츠러든 어깨와 참혹의 진상을 대면하지 못하던 모습에서 드러났다. 졸아든 그녀, 비극의 핵심을 대면할 때 인간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있어 영화 장면은 어떤 해석의 틀을 모두 버렸고 난 그게 이성적으로도 이해되었다. 그는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이었고, 종교 이전과 이후 사이에 걸쳐진 한 사람을 들여다 보는 데 있어서는 차라리 정직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여자, 엄마, 한국인, 인간, 이라는 비참한 타이틀을 모두 갖췄다.
김영진씨는 시네 21에서 밀양의 신애를 두고 완전한 자기 재정의의 순간을 맞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했다. 신, 종교, 인간, 사랑, 행복, 이성과 도덕에 대해 구토를 하고 혼이 나가고 마침내 머리를 자르고 앉아 있는 한 인간의 모습. 특정의 모랄로 이루어져 있는 이 삶의 여러 국면과 사실상 완전히 아무것도 없이 텅빈 실존 사이에 선 한 사람의 모습. 그런데 다음의 형용이 마음에 남았다.그는 이 자기 재정의의 순간을 두고 ‘아름다운’, 아름다운 자기 재정의의 순간이라고 했다.
모든 걸 다 뒤집고 재정의 하려는 순간을 아름답다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건 미치거나 죽는 순간일 텐데. 미치거나 죽는게 아름답단 말인 걸까? 혹시 아무것도 없는 실존에 다다른 한 사람의 철학적인 성취에 대한 은유인가? (설마)
어쩌면 그런 순간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작은 시도로 여행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여행정도라면 어떤 계기를 적극적이면서도 삶과 무관하게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고급한 연극무대일 지 모르겠고, 자기 재정의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쓰기에 적당할지도 모른다. 밀양에서의 느낌과 여행자의 객수는 기묘하게 공통적인 상실감을 내포하는 듯 했지만, 그 성격과 무게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런 식의 상실에 대한 통찰은 예술가의 영역으로 미뤄두는 게 다행이라고도 생각된다. 연극 무대같은 국외지의 여행객으로 남는 게 나에게 해당된 일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윽고 어떤 자기 재정의의 고역 없이도 국경을 투명인간처럼 들락날락하는 진정한 고급 배우, 실존없는 실체, '본 얼티메이터머', 제이슨처럼 될 수 있을지도..
4. 남편과 함께 독일 하노버에서 기차를 타고 체코 프라하를 향했던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그 날 우리는 작은 도시락을 쌌고 옥수수와 삶은 달걀로 끼니를 떼웠다. 여름 휴가 여행중이던 유럽인 가족들을 많이 마주쳤으며 집에 남겨온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차창에 내리던 퇴락한 햇살 속에서 시간은 멀리로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함께 산다는 기적에 대해, 아이들과 미래에 대해, 불안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체코에 대한 첫 기억이었고, 내가 아는 하노버발 기차에 관한 사실적인 추억의 전부였다. 감상은 사실과 일정부분 섞여 있겠지만 아직도 기차 객석에 퍼지던 오스트리아 가족의 소근대는 이야기소리, 돌쟁이 아가 몸에서 풍기던 거버초코렛 냄새가 기억나고 그건 아마 불가항력의 힘으로 내 신체의 어느 감각을 지배할 것이다. 마치 아득한 블랙홀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남편이 차창 너머로 유럽의 들판을 굴러다니는 건초 꾸러미들을 응시했던 게 기억난다. 아무것도, 무엇으로도 설명되기 힘든 순간의 일이었다.
이런 것 아닐까? 나는 그날 남편과 체코 프라하에 도착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아마도, 체코나 프라하가 아니었을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건 하노버에서 체코로 넘어가던 쉐나라는 국경지대에 대한 파편과, 무엇보다도...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깔리던, 호텔 앞 거리를 띄엄 띄엄 메운 셔터 닫힌 가게들의 침묵과 네온들이 고작이다.그러한 인상들은 한 때 내 마음을 움직였던 한 소설가의
말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체코로 넘어가는 쉐나의 국경을 넘을 때 내 마음 속에서는 쿤데라가 자기 소설에서 썼던 ‘반복하는 존재의 행복’ ‘회귀하는 영혼의 평온‘이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그 행복과 평온은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이 나중에 트럭 사고를 당해 죽었을 때 조용히 완성되었던 종류의 행복으로서, 삶의 국경을 건너버린 여행자들에게 주어진 자유였다. 하나의 평온에 이르른 사람들.쿤데라는 자기 책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여정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을 잡을 수 없어요. 그들은 모두 멀리멀리, 각자의 지평과 한계를 넘어 가버렸어요. 내가 붙잡을 수 없는 곳까지 이르렀지요...’
국경지대 쉐나의 전원이 체코의 예고편이었다면 네온 등 꺼진 거리의 바Bar는 프라하의 종장이었다. 두 개는 나란히 있었고 나중에 가장 또렷이 기억나곤 했다. 야간등 희미한 거리의 한 가게에서 베트남 이민자 가족과 십대 어린 딸이 어깨를 드러낸 채 열심히 술을 팔고 있던 그런 기억들. 수줍은 그 딸이 나를 마드무아젤이라 불러주었던 기억들. 나라는 프라하 여행자의 수첩에 적힌 장면들이고, 나중에서야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 프라하들을 나로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내게는 그런 프라하가 엽서의 갈피 속에 자리한 그림일 뿐이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프라하. 갔지만 볼 수 없었던 프라하.
올해 내내 보았던 이태리의 어느 도시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무수한 프리즘으로 내 마음에 들어왔던 이 잔상들은 아마 해소되기 힘든 내 인격의 어떤 국면들일 뿐, 사실은 그 국면을 드러낼 구실에 불과하다는게 아마 사실에 가깝다. 이 국면들이 삶에서 용해되지 못한다면 아마 소리 소문없는 일상의 미치광이 노릇은 괴이한 변주를 거듭 하게 될 것이다. 다행이라 할 밖에..(:)
하나의 비싼 무대로서 여행은 세상을 모두 독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치거나 죽지 않고서도 극적이며 과장된 변화를 경험하도록 안전하게 마련된 하나의 ‘실존테엽장치’며 그 속의 여행객들은 교화된 오렌지들 같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도, 모든 걸 다시 출발하지 않고도, 원초적 상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생활 속의 판타지로서.. 의미의 실종이라는 테마를 잊을 수 있는 무대로서..
무대와 생활이 섞이면서 나이를 먹게 되는 것 같다. 우울할 때는 더 우울했던 어느 우울증 환자의 조언이 떠오른다. “ 죽기전에 무대위에서 내려올 줄 알면 되는 거야. 아주 짧게. 그걸 고해라고 하지”
잠깐 구경했던 2007년 유럽이여, 다음 막이 오를때까지 일단 안녕.
* 김주향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1-24 16:12)
ps.
-선생님, 모임은 수선스런 와중에 언제나처럼 잘..
-지금보니 단락, 문장 단어 빼먹고 앞뒤가 순서틀리고 일부는 중복에 .. 영노트란에 기냥 올려진
-_-점점 성의라곤 없는 게시물들로.. 죄송합니다. 그냥 참아주십사 하는 수 밖에..
-내년 미국행 결정되었습니다 2년간의 폐인생활 등등..한 번 여쭈러 기습 전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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