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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스페인 기행문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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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세스바예스는 프랑스의 생 장 피에드포르에서 피레네산맥을 걸어서 넘어면 처음
만나게 되는 스페인의 마을입니다. 마을의 규모에 비하면 무척이나 거대한 이 수도원
은 중세 이후로 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영국의, 독일의, 프랑스의 집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서면서 이 곳에서 피로를 풀고 다시 한 번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자기 집으로부터 순례를 시작할 수 있는 유럽인들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이곳, 론세스바예스나 생 장 피에드포르에서 순례를
시작합니다.(독일이나 프랑스, 벨기에나 네덜란드의 자기 집에서 부터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경우는 2,3천 킬로미터를 걷게 되지요.)
이곳에서 부터 산띠아고 데 꼼뽀스텔라까지는 노란색 화살표로 길이 표시되어
있고(바닥이나 바위, 벽 등에) 오늘날 성야고보의 길 (El Camino de Santiago de
Compostela)이라고 하면 이 길을 뜻합니다.
수도원에 들어가면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넓다란 방에 있는
수십개의 이층침대 중 적당한 자리를 골라 침낭을 깔고 잠자리를 만듭니다. 물론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습니다. 제 아랫자리에는 휴가를 얻어온 스페인의 웨이터가
있고 옆 침대에는 캐나다와 호주에서 온 총각들이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프랑스
할머니가 혼자서 걸어왔군요.
장을 봐서 간단히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부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물이나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합니다.
저녁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습니다. 수백년간 이어져온 전통대로 순례자들
의 안녕을 위해 미사 도중에 축포가 발사됩니다. 다음날 순례를 떠날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무사한 여행을 빌어줍니다. 동양인은 저 혼자입니다.(도착할 때까지
동양 국적을 가진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딱 한 번 프랑스에 유학왔다가 남편을
만나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13년간 살아온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다음날 일찍
떠나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처음에 대략적으로 말씀드렸지만 성야고보의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먹는 얘기가 갈 수록 줄어들고 있는 듯. -.-;;)
전 지금 기독교도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 성당에 다니시던 어머니를
따라 조금 나간 적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관련지식은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성당 하나를 들어가도
건물 전체가 거대한 상징과 기호의 집합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약간의 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성 야고보의 상징은 조개껍데기
입니다. 그리고 성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라 스페인의 성당들에선 이 문양을
정말 자주 발견할 수 있지요.
전설에 따르면.. 예수의 12제자중 하나인 성야고보는 스페인에 기독교의 교리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유대로 돌아간 그는 순교하게 되는데.. 그의 제자들은
그의 시신을 가지고 배로 탈출하게 됩니다. 그 배는 스페인의 갈리시아 땅에 닿게
되고 그들은 그 시신을 내륙에 묻었습니다.
9세기경 한 수도사가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아 그의 유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곳이 바로 '산띠아고 데 꼼뽀스텔라'입니다.(문자적으로는 별의 들판의 성야고보
라는 뜻입니다.) 순례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12,3세기에는 로마, 예루살렘
과 함께 3대 순례지로 자리잡게 됩니다. 특히 모로인들과의 한 커다란 전투에서
성야고보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 모로인들을 물치치게 해 주었다.. 라는 전설이
생겨나면서 성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어 전국민적인 숭앙을 받게 됩니다.
중세인들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순례하거나 순례하는 도중 죽게 된다면
하늘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이 분이 바로 그 유명한 성 야고보>
하지만 14세기부터 순례의 열기는 식기 시작했고.. 16세기 유명한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 경이 갈리시아의 라 꼬루냐를 공격하자 주교는 성 야고보의 유해를
숨기도록 지시합니다. 1877년 이 유해가 우연히 다시 발견되었고 1960년경
엘리야스라는 한 신부가 역사적 고증에 따라 10년에 걸쳐 옛 길을 복구하고
노란 화살표로 표시하면서 다시 한 번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길은
여러 자원봉사자들과 후원단체의 도움으로 관리되며, 1년에 1만명 이상이
조개껍데기로 배낭을 장식하고 이 길을 걷습니다.
오늘날 순례자들은 예전처럼 종교적인 목적으로 순례를 하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많은 비그리스도교인들이 - 불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종교가
없는 많은 사람들-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삶과 느림의 여유를 찾아서
혹은 아름다운 경치와 훌륭한 트레킹 코스를 즐기기 위해 이 길을 걷습니다.
피레네 산맥에서 시작할 경우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까지는 약 8백 킬로
미터 정도입니다. 매 1,2십 킬로미터마다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있고 무료로
순례자들이 쉬어 갈 수 있습니다. 대개 세계 각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숙소를
관리합니다. 순례를 시작하면서 순례증명서를 발급받게 되는데 각 숙소나 지나치는
중요한 성당이나 식당 등에서 증명 도장을 찍어줍니다. 이걸 가지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하면 라틴어로 된 증명서를 발급해주지요.
이 길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순례자들에게 따뜻히 인사하고 여러가지로 도와
줍니다. 지팡이를 한 가득 깎아두고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아저씨도 있고(지팡이와 호로병 그리고 조개껍데기는 순례자의 상징입니다.)
매일 마을 입구에 나와 지나가는 순례자에게 비스켓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인구가 7명 뿐인 한 수도원의 신부님은 훌륭한 수프를 끓여
줍니다. 어떤 순례자 숙소에서는 아침 식사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고 바베큐
파티를 벌여 주기도 합니다. 어떤 마을에선 매일 물리치료사 아저씨가 방문해
다친 곳을 봐주고 마사지를 해 줍니다. 가끔 화살표 표지를 놓치고 엉뚱한 길을
헤매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김없이 원위치로 데려다줍니다. 밝은 인사와
그들이 건네주는 물 한모금, 와인 한잔.. 이 길을 걷는 동안은 세상이 무척이나
따뜻한 면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겨 5시에 첫 출발을 합니다.
좀 이른 듯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이정도에 출발합니다. 스페인의 여름 햇살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햇살이 뜨겁고.. 뭐 이런 감촉이 아니라 정말
몸을 바닥으로 찍어누르는 것 같습니다.) 더운 낮을 피하기 위해서 새벽 5시쯤
출발해 오후 2시 이전에 목적지에 도달하려 노력합니다.
첫 사흘간은 나바라를 지납니다. 스페인 북부에 사는 바스크 족에 관해서는
ETA의 무장독립운동 때문에(요즘도 간간히 테러기사가 나지요.) 혹은 이탠쿡
회원이시라면 바스크 요리의 명성 때문에 잘 아실 겁니다. 스페인에는 4개의
언어가 사용됩니다. 우리가 흔히 스페인어라고 하는 까스띠야어. 까딸루냐와
발렌시아, 발레아레스 제도 등 동쪽에서 사용되는 까딸루냐어, 갈리시아 지방의
포르투갈 풍의 갈리시아어, 그리고 북쪽 바스크 지방의 바스크어입니다.
나머지 세 언어는 기본적으로 로망스계의 방언이고 비슷한 면도 많지만 바스크
어는 전혀 닮은 곳이 없습니다. 이베리아 선주민을 기본으로 로마인, 게르만족,
켈트족, 무어인 등 많은 피가 섞여 생겨난 오늘날의 스페인인과는 유전적으로도
일치하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이들이 북부 인도에서 이주해온 것이라고도
추측은 하지만 정확한 것은..
이 바스크족이 주로 사는 주가 바로 빠이스 바스코, 나바라, 그리고 라 리오하의
세개 주입니다. 이들은 특히 그 용맹함에 무척이나 자부심을 느껴왔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많이 살아있습니다. 그 유명한 빰쁠로나의 산훼르민 축제도 이런 배경
하에서 생겨난 것이지요. 소떼를 피해 달리는 사람들의 복장.. 흰옷에 빨간 스카프
가 기억나시나요? 이 복장이 바로 바스코 족의 민속의상이고 가장 선호하는 색깔
입니다. 이 지역에선 경찰차나 경찰 유니폼마저 다른 지역과는 다르고 하양과 빨간
색이랍니다.
이곳도 예전에는 하나의 버젓한 왕국이었지요. 스페인의 영웅 엘시드의 이야기는
영화로라도 보셨겠지요? 바로 그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엘시드의 레온 왕국과
나바라는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지요. 이들은 서로 견제하면서.. 또한 이슬람에
대한 국토 수복운동을 거치고.. 전쟁과 합병을 거쳐 최후의 헤게모니를 쥔 것이
포르투갈, 까스띠야, 아라곤의 3개국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까스띠야와 아라곤은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결혼으로 하나가 되어 스페인을 형성하고(정확한 스페인어
표현을 따르자면 에스빠냐라고 불러주는 것이 예의겠지만 영어식 발음이 워낙 일반
화되어.), 포르투갈(옛 루시타니아)은 한 때 8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독립해서 이베리아 반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개의 나라가 생기게 됩니다.
나바라는 피레네 산맥가에 접해 있는 험준한 산악지역이며 숲과 작은 강이 어우러져
있는 푸르른 땅입니다. 나바라는 그래서 특히 송어가 유명한데.. 종종 개울가에서
고무장화를 신고 송어낚시를 하는 인근 마을 주민을 만나곤 합니다. 송어는 구워져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제가 먹을 때는 배속에 하몽을 넣고 구워져나올 때가
많았었는데.. 민물고기는 역시 구워먹어도.. 난 민물고기야.. 라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더군요. ^^ 전 항상 구운 작은 송어밖에 못먹어봐서.. 송어회, 송어매운탕 이런
말을 들을 땐 항상 그 맛이 궁금하답니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송어는 자가용이 없는
서민은 정말 먹기 힘든 생선이지요.)
나바라는 산맥에 기대고 있는 지역이라 가끔 비도 많이 만납니다. 비가 온다고
피할 수는 없는 일. 비옷을 입고 배낭은 비닐봉지로 싼 채 진흙탕이 된 산길을
종종 미끄러져가며 내려갑니다. 까미노라고 해서 번듯한 대로만 따라 걷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길이 있는 지도 불명확한 산길을 나무가지를 쳐가며 걸어야 하고
작은 개울을 건너야 하며, 다른 사람의 목초지의 담을 넘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오로지 갈래갈래마다 등장하는 노란 화살표를 놓치지 않고 그 방향만을 믿고
따르는 수 밖에요.
걷는 데 익숙하지 않은 첫 사흘간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첫날은 호기롭게 삼십여
킬로미터를 걸었지만 둘째날은 이십킬로 밖에 걷지 못합니다. 조그만 무게도 줄이고
싶어 지나간 길의 가이드북은 모두 찢어버립니다. 한 아저씨가 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떠마시고 있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제 키보다 좀 큰 막대기를 수백개 깎아
놓으셨습니다. 지팡이가 생기면 걷는 박자에 리듬이 생기고 훨씬 걷기가 수월해 집니다.
몇일이 지나지 않아 몸은 곧 익숙해집니다. 지팡이 소리에 맞추어 리듬있게 걸으면..
어떤 경우라고 한 시간에 4킬로미터를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40킬로미터를
가려면 10시간이 걸립니다. 보통 순례자들이 걷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총각을 만납니다. 이미 까미노를 다 걷고 프랑스의 자기 집까지 다시 걸어서 돌아가는
중이라네요. 아득...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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