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망까... 인구 18만. 그리고 그 중 4만명이 대학생입니다.
전형적인 학생도시라고 할까요.. 그 와중에도 도시는 고풍스러
운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활발한 주말의 광기와
역사와 종교로의 경의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한달이 결코 지루
하지 않았습니다.
살라망까에서 한 학원을 등록합니다. 다섯단계 중 밑에서 두 번째
반을 배정받고.. 한달간 하루 4시간씩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합니다.
집도 빌립니다. 살라망까는 대학생을 위한 도시이고, 또 이런 분위
기에 이끌려 스페인어를 배우기 원하는 외국인들의 메카이기도 합
니다. 따라서 모든 도시 시스템이 무척이나 학생지향적인데.. 따라서
방을 빌리기도 매우 쉽습니다. 집은 보통 대학생이나 외국인 학생
4명 정도가 방 하나씩을 차지한채 같이 생활하는 아파트(piso라고
하는데 아파트래야 4~5층이며.. 우리 개념의 아파트랑은 매우 다
릅니다. 차라리 연립 같은 개념이 더 맞을까요.)이며, 제 경우는
한달을 빌리는데 27,000Pts.가 들었습니다. 이십만원이라고 생각하
시면 되겠네요. 모든 공과금이 다 포함되고 부엌설비나 침구, 각종
가구까지 다 완비되어 있으니 비싼 편은 아닙니다.
같이 살게된 사람은.. 저 외의 3명은 모두가 독일인이었습니다.
27의 수산나라는 선생님, 21살의 카탈리나라는 여학생, 그리고
마크라는 24살의 남자애. 덕분에 독일 학생들의 자취 음식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매력 있냐구요? -.-;; 제가
우리집의 유일한 청소부이자 요리사였습니다.
물론 독일인들이 아주 많은만큼(이런 곳의 외국인 분포도를 보면
각 국민성마다 얼마만큼 여행, 외국 지향적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스페인에서의 외국인은 독일인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나름대로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카탈리나의 경우는 학원 끝나고 돌아오면 그냥 식빵 한 조각 꺼내서
양상추 한 장 얹고 치즈 한장 얹어서 다시 식빵으로 덮으면 끝입니다.
이 사람들 아주 신경써서 하는 식사래야 파스타나(그래봐야 그냥
삶아서 토마토 페이스트를 데워 껴얹는 정도) 간단한 샐러드 정도입
니다. 심지어 사람들을 모아 파티를 하는데도.. 주메뉴가 파스타라니..
반대로 제 경우에는.. 한국 습성인지 사람들 초대할 때는 몇시간을
지키고 서서 파전이나 백숙에 이르기까지 주섬주섬 만들고 있어..
사람들이 놀라곤 하더군요.
삼시 세끼 부엌을 지키고 서서 이것저것 만들어대는 사람은 저 뿐입
니다. 스페인의 슈퍼나 시장의 식음료품은 아주 싸서 무척이나 장보
는 재미가 있습니다. 학원이 끝나면 오후 한시인데 첫 한주간은 종종
그런 다음 점심을 위해 장을 보러 나갔다가 허탕을 치곤 했습니다.
시에스타를 기억하시는지요.. 슈퍼를 포함해.. 빵집, 구멍가게 길거리
의 온갖 가게들은 다.. 두시에서 네시까지는 문을 닫습니다. 인적도
없는 거리에서 혼자 장가방을 들고는 망연자실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특히 주말은 무척이나 조심해야 합니다. 일요일은 모든
가게가 총체적으로 문을 닫아 자칫 잘못하면 식료품은 물론 마실 물
도 구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살라망까에는 시내 한가운데 딱 한 곳, 낮에도, 일요일에도 문을 안닫는
대형 슈퍼가 있었는데(그곳의 선전 모토가 ''todo el dia, todos los dias''
였습니다. 하루 종일, 매일) 그 대신 가격은 일반가보다 10~20%쯤 비
쌌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 있는 일반적인 슈퍼의 모습을 한 번 살펴 봅시다.
스페인에서 supermercado라고 하면.. 왠만큼 규모가 있는(카트를
끌고 다닐만한) 가게를 말합니다. 가장 값싼 슈퍼 체인인 el dia(얼마
전 터키에도 이 가게가 있어 놀랐습니다.)가 제일 가까워 자주 이용했
었습니다. 가게 입구 근처에서는 과일을 파는 코너가 있습니다. 오렌지
나 사과, 배, 복숭아, 바나나 등이 값싸고 대중적인 과일입니다. 아, 수
박과 멜론도 빼 놓을 순 없군요. 전 수박이나 멜론을 좋아해 빼놓지 않고
사 먹었답니다. 스페인의 멜론은 우리같은 그물무늬가 있는 머스크 멜론
이나.. 종종 볼수 있는 주황색 속살을 가진 멜론이 아니라 무늬가 없는
노랑색 단단한 껍질을 가진 럭비공 같이 생긴 멜론입니다. 속살은 크림빛
연두색. 신선한 맛과 향이 무척이나 뛰어나고 값도 쌉니다. 짭짤한 하몽으로
싸서 한 입 배어물면.. 음.. ^^
제가 있을 당시 가장 비싼 과일은 체리였던 것 같습니다. 1킬로의 가격이
다른 과일보다 세배는 비싼 350Pts.(이천원 가량)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잘 맛볼 수도 없었던 과일이라(당시까지는) 무척이나
즐겨 먹었답니다. 다른 학생 집을 방문할 때 선물용으로도 좋구요.
과일과 야채를 파는 코너를 지나면.. 제조식품들입니다. 오른쪽으로 긴
벽면을 따라.. 온갖 종류의 비스켓이 가득 매우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비스켓은 간식이 아니라 거의 주식처럼 인식되는지라.. 양과 종류가 정
말 많습니다. 나이든 주부나 할머니들이 이것저것 비스켓을 고르는 모습
은 꽤 생소해서... 물론 크림 등을 넣은 간식용 비스켓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상표는 Principe. 왕자표 비스켓? -.-;) 주식용 비스켓은 양에
비해 값이 아주 싼 편이라 한통 사놓고 비상 식량으로 활용합니다.
비단 스페인 뿐만이 아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다양한 스넥류(...깡으로
끝나는..)는 거의 없습니다. 참으로 극동적인 현상이 아니려나 생각합니다.
다국적 기업 프레이토리에서 생산하는 한두종류가 고작입니다.(치토스나 뭐.)
대신 감자칩 종류는 아주 많아.. 수십종류가 있습니다.(우리같은 포장 제품은
물론이고.. 그 날 만들어 종이봉지에 담아 파는 종류도 많습니다.)
가정 요리에서 파스타도 아주 중요한 영역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파스타면류가 한 선반을 완전히 채우긴 합니다만... 자취하는 스페인 학생들
에게 파스타는 우리의 라면 같다고나 할까.. 그냥 토마토페이스트를 끼얹어
한끼 때우는 식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간단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전 파스타 만드는 법을 그래서 스페인에서 배웠는데 한국인의 스타일
을 버릴 수 없어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를 넣은 푸짐한 파스타를 만들 수 밖에
없더군요. ^^ 그냥 올리브유에 볶아 소금과 후추만 쳐서 먹는 것도 아주 좋아
합니다.
냉동식품의 비중은 아주 적습니다.(영국이나 아일랜드 등지의 냉동식품이나
반가공 식품이 3/1을 차지하는 슈퍼들에 비하면..) 독특하게도 게맛살이 있더
군요. ^^ 통조림이나 병조림류도 많지는 않지만 있는데 토마토 페이스트나
아스파라거스, 안초비나 정어리 등의 생선류 등이 이런 식으로 팔립니다.
아, 뱀장어 치어도 우리나라의 두부 포장하듯이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파는데
이건 고급 재료라 꽤 비싼 편이죠.
우유는 냉장유통되지 않고 그냥 선반위에 쌓여있습니다. 유통기한도 년 단위
입니다. 음료로 마신다기보다는 커피에 타먹는 용도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신선한 우유를 마시는 것은 포기. 대신 요구르트가 아주 큰 포션을 차지합니다.
청량음료나 여러가지 음료수도 우리나라처럼 다양하지 않습니다. 그냥 콜라나
환타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아시겠지만 콜라나 환타류의
맛은 한국과 아주 틀립니다. 우리나라 콜라나 환타 맛은 세계적으로 맛없는
수준이라고 믿습니다. 환타의 경우 약간이긴 하지만 유럽에선 실제 과즙이
들어갑니다. 설탕과 색소 만으로 맛을 내는게 아니지요. 한국 코카콜라사에
문의해본 적이 있는데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맞는'' 맛
을 선정한 거라네요. 환타류 중에서도(아, 환타와 쌍벽을 이루는 과일탄산
브랜드로는 ''슈왑스''가 있습니다.) 레몬 맛의 비중이 꽤 큰 것 같네요. 한국에선
생산 안하는 맛이죠. -.-;)
생수값도 싸긴 한데.. 그냥 수돗물을 식용으로 마셔도 별 지장 없습니다.
특히 지역에 따라선 수돗물이 아주 맛있는 지역도 있어..(특히 갈리시아나
시에라네바다 쪽이 좋습니다.) 어린 시절 삼천리 금수강산 설을 배우며
우리는 맑고 맛있는 물을 그냥 마실 수 있는 반면 외국에선 수돗물을 못마셔
모두 사서 마셔야 한다.. 라고 배운 것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좀 더 안쪽으로는 생선전과 육류전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요리용으로
가장 인기 있는 생선은 아마도 Merluza, 즉 명태일 것입니다. 흰살 생선이
고 손질하기도 편리해 요리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1킬로에 4천원
정도입니다. 대구도 이에 못지 않은 인기품종이지만 값은 조금 더 비쌉니다.
넙치나 혀가자미도 자주 먹게 되는 생선입니다.
등푸른 생선 중에선 아마도 정어리가 가장 대중적인 생선일 겁니다. 값도
아주 쌉니다. 안초비라든지 고등어 등도 많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생선
이 있지만... 스페인어가 좀 딸려서.. 조개, 홍합류나 새우류도 있고.. 오징어나
문어도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수산물입니다. 특히 오징어는 어디가나
식사로든 술안주로든 피할 수 없는 품목이죠. 비늘 없는 생선을
금기시한 구약의 영향인지 오징어나 문어 등을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
중북부 유럽인들과는 달리 지중해 연안, 특히 이베리아 사람들은 두족류
를 아주 좋아합니다. 오징어는 튀김으로 먹는 경우가 제일 많고 갑오징어
는 올리브유에 볶아서도 먹습니다. 오징어 먹물로 소스를 만들어 조려내기도
합니다. 빠에야도 오징어 먹물로 새까맣게 만든 Arroz negro가 유명하죠.
정육 코너 또한 항상 들립니다. 이곳에서도 소고기가 돼지고기 보다 비싸
긴 하지만 가격차이가 한국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돼지고기의 경우 킬로당
4천원 정도.. 소고기도 육천원 정도입니다. 물론 부위에 따라 많이 다르긴
하지만요. ^^(이건 Lomo. 그러니.. 번역상 등심인데 가공상태가 좀 다릅니다.
.. 기준) 꽤 두껍게 썰어주니.. 스테이크를 한 번도 안해봤던 전.. 잘 익히는
법을 알아내느라 조금 머리를 써야 했습니다.(오븐은 사용법을 모르니
후라이팬에 의존하느라.. -.-;;)
양고기나 토끼고기 등도 팔구요.. 물론 양념을 해서 파는 것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하몽과 초리소, 살치촌, 모르시야 등이 눈길을 끌어
항상 사게 됩니다. 이들은 가공 육류이니 당연히 정육보다는 비싸고요..
하몽은 일반적으로 킬로당 8천원 정도부터 시작하지만 아주 양질의 고급햄
은 킬로에 사만원을 홋가하는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모르시야는 피를 채워 넣은 순대입니다. 부르고스가 유명한 생산지인데..
맛도 아마 상상이 가실 겁니다. 주로 팬에서 익혀 먹는 경우가 많은 것
같군요. 초리소는 창자에 고기만.. 그리고 매운 양념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도 종류가 워낙 많고 가격대도 다양합니다. 살치촌은 초리소보다
훨씬 직경이 크고.. 양파라든지 통후추같은 다른 부재료도 조금 들어갑니다.
이것도 초리소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하지요. 아무래도 초리소보다는 조금
질감이 부드럽답니다. 이빨이 약하신분에겐 초리소보다 나을 듯. 어느것이
나 종류가 다양해 매번 다른 것을 골라야 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초리소는
그냥 하나 통째로는 요구하는 만큼만 잘라주니.. 자기가 직접 잘라먹어야
하겠지만..(조금 두껍게 썹니다.) 하몽이나 살치촌은 우리의 냉동 삼겹살
써는 기계같은 걸로 얇게 잘라 줍니다. 솜씨 좋은 정육점에선 하몽은 직접
칼로 잘라 주기도 하지요.
샌드위치 용으로 익힌 햄류나 칠면조 햄 같은 것도 한구석에서 조금 팔
기도 하지만.. 스페인까지 와서 맛이 뻔한 이런건 무시하도록 합시다. ^^
치즈도 빼 놓을 수는 없지요. 슈퍼라면 적어도 30가지 이상의 치즈가 디스
플레이 두개 가량은 채우고 있겠지요. 딱히 이거다.. 라고 뇌리에 확연히
떠오르는 명품 치즈는 없더라도.. 동네동네마다 자신들의 치즈를.. 스페인
전국에 1500가지의 치즈가 있다고 합니다. 입맛대로 고르는 대는 무리가
없을 듯. 전 태어나서 푸른 치즈(Queso azul)을 여기서 처음 먹어봅니다.
(아니.. 그냥 치즈.. 란 걸 스페인에서 처음 먹어봤다고 해야 하나?) 그 때
의 충격이란.. 아아.. 그 뒤로 중독됩니다. ^^
물론 와인도 다양한 종류를 구비하고 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스페인에선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있을 때보다 와인을 살 기회가 훨씬 적습니다. 아마
바문화가 너무 발달되어 있어 막상 집에서 와인을 마실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일 겁니다. 정말 세집 건너 한집은 바나 까페나 식당이고.. 값도 싸고
안주도 다양하니.. 막상 방에 처박혀 와인을 홀짝일 기회가 줄어드는 거지요.
슈퍼에서 파는 와인이라면 어느 와인이든 대개 오천원을 넘지는 않을 겁니다.
테이블와인은 종이팩에 담아팔고 1리터짜리도 천원이면 될 겁니다. ^^
물론 맥주도 팝니다만.. 병맥주맛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에서 신선
한 생맥주를 드시길..
이렇게 이것저것 장을 봐와 집에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게 당시 취미였
던 것 같습니다. 당시 알고 있던 조리법이란거 거의 한국의 전형적인 학생
요리법이라서 조금 당황도 했던 것 같습니다만.. 주로 굽거나 볶는 단순한
요리법이야말로 자취요리법의 핵심. -.-;; 밥도 자주 하고.. 일기장에 남아
있는 당시 식단을 보니 고등어 구이, 오징어야채전, 오징어데침, 아스파라
거스 샐러드, 안초비 샐러드 등의 기록이 남아있군요. 토끼고기나 양고기
등의 재료도 신기해서 자주 샀었던 것 같습니다. 고기 싼 맛에 한국에서
자취생이 절대 살 수 없는 등심 스테이크 등도 신나게 먹어대었던 것 같
네요.
사라..(원래이름은 사라바담이었던가?)라는 몽고인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당시 22이었던가? 안경회사를 아는 아버지 회사에서 상무.. -.-;; 였던 걸
로 기억하는데.. 제일 친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학원이 끝나면 같이
우리집으로 와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이는게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그 때 깨달은 사실은.. 역시 여자는 이것저것 잘먹는 아가씨가 제일 매력
적이라는.. -.-;; 베지테리언에 대한 뿌리깊은 거부감도 그 때부터 피어
난듯한.. (우리집 카탈리나도 채식주의자. 도대체 샐러드나 파스타 빼고
는 먹일 수 있는게 없으니.)
내가 몽고에 대해 아는 것보다 한국에 대해 아는게 훨씬 많아 놀랐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매일 훌쩍이는 것 밖에 없어 싫다고.. 심지어 ''홍길동''도
알던걸요.. 한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매일 전화해서 "사랑해요"
라고 한다고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
한국인 아가씨가 우연히 둘 있었는데, 그 중 한 아가씨가 절 싫어.. 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 하는 지경에 이르러.. 그게 젤 힘들었던 것 같군요.
난생 처음 외국나간 애의 대단히 한국적인 사고와 행동이 무척이나 촌스
러워보였나 봅니다. 뭐.. 전형적인 유학생의 생활방식이랑은 많이 달랐
으니까요..(전 유학생도 아니었고..) 이런 체험은 그 뒤로도 여러번 겪게
되니.. 뭐... 과테말라에서나 멕시코에서도 겪었던 일인데.. 대개 이런 외
국유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그들만의.. 인터네셔널한 문화와
공간들이 생겨납니다.(뭐.. 박사 학위 이런 건 아니고 주로 스페인어 어학
연수생) 전 뭐 여행객으로 간 거니.. 단기간 체류하더라도.. 그런 커뮤니티
보다는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 사람들 만나는 데 주력하고.. 그러다
보면... 간혹 몇몇분은 절 조금 싫어하시는 분들도 생기더라구요. 뭐, 남이
야 어떻게 살던지..
까세레스는 황새가, 세비야는 박쥐가, 그리고 알메리아는 하얀 비둘기가
지배하듯이 살라망까엔 제비가 많습니다. 학생도시인 살라망까의 분위기
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나 할까요. 주말이면.. 심지어 축제가 없는 주에도..
(뭐, 격주로는 무슨 축제든 축제가 있다고 보심 됩니다.) 토요일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불꽃놀이를 하고 온 도시는 뒤집어집니다. 한번은 레알마드
리드가 유럽컵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정말 사람들이 레밍
떼처럼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더군요. -.-;;
이곳에선 상그리아가 죽이는 바가 있어 가볍게 상그리아로 시작해 독일의
어떤 사진작가랑 바 순례를 다닌 적이 많습니다. 상그리아.. 는 와인에 여러
가지 과일을 재어서 만든 칵테일이죠. 스페인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이며..
역시나 이것도 너무나 스페인의 기후에 어울린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청어나 씹으며 상그리아 한잔. 이건 너무 어색하
잖아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의 창조물들입니다.
그런 다음 적어도 네댓 군데의 바들을 다니며 여기저기서 술을 마십니다.
각 바들의 명물 술, 안주들을 골고루 맛봐두죠. 고추절임이 특산인 곳도
있고.. 홍합을 한가득 쌓아주는 곳도 있습니다. 아주 가는 유리주전자에 와인을
내어주어 팔을 하늘높이 주욱 뻗고 공중에서 입으로 바로 따라 마셔야 하는
곳도 있죠.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라면 새벽 두세시에 디스코떼까에 가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뭐... 한국에서 안 통하는 춤이라도 이런 곳에선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역시 우리 민족은 가무..에 능한 민족인지.. 그러다 아침해가 밝아오면
마지막으로 추로스를 뜨거운 초컬릿으로 찍어먹고는 침대로 향합니다.
관광객으로 하루이틀 들렸다 사라지면 알지 못할 즐거움을 곳곳에서 발견합
니다. 창문을 열면 제가 밥먹은 후 던져 줄 생선이나 고기뼈를 받아먹으려는
고양이 몇마리가 항상 엎드려 햇볕을 쬐고 있습니다. 마요르 광장을 둘러싼
기둥들엔 스페인의 역대 왕들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데.. 하나씩 점검하다보면
한 구석엔 프랑코 총통의 조각도 붙어 있어 실소를 나오게 합니다. 살라망까
대학 건물 한면의 엄청난 부조 속에선 잘 찾아보면 개구리 한 마리가 어이 없
이 발견됩니다.(우연인지 혹은 조각가의 유머인지.) 까사 데 리스는 아르누보의
시절로 한세기를 거슬러 올라가게 해 주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동심에 빠져듭니다.
황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에스테반 수도원에는 상아로 조각된 필리핀 양식의
성상들이 눈을 끌어 당기지요. 산따끌라라의 무데하르식 천장을 우연히 올려다보고는
무슬림들이 이 땅에 뿌려놓고 간 흔적을 발견합니다.
스페인답지 않게 비가 자주 오고 햇살도 강하지 않습니다.(해발 8백미터
대의 고원지대입니다.) 그곳의 식당 요리를 먹어보지 않아 향토음식이 어떤
지도 모르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게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장을 보고.. 체리 한 봉지를 들고.. 오리들이 돌아다니는
공원을 거닐다.. 밤에 와인 한 잔에 햄과 초리소를 씹어대다 잠에드는...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한달의 안식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제는 옛 사람들이 영혼의 안식을
얻기 위해 떠났던 길을 따라 걸을 때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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