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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하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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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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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생활을 즐거워하는 편이지만,
잠깐이라도 낯익은 얼굴과 해야할 일과 차들이 없는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아주, 아주 잠깐이라도.
서울을 벗어나기까지 여전히 길은 꽉꽉 미어졌으나,
새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다 잊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는, 그 자체로도 구경거리더군요.
특히 그, 무식하게 긴 서해대교 위로는
엄청난 바닷바람이 불어 차가 신나게 흔들렸습니다.
여행의 긴장감을 미리부터 장렬하게 돋구어 줍니다.
그곳에서 도로의 저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으며,
양쪽으론 수평선이 찰랑찰랑 보일듯 말듯,
"떠난다"는 기분을 한껏 충전할 만한 길입니다.
남도의 붉은 흙이 먼저 생각납니다.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푸른 보리밭과,
논가에, 집앞에, 산에 들에 아무 곳이나 심드렁하게, 새삼 감격에 겨워 호들갑떠는 저를 구경하듯,
뿌려진 듯 널려있는 유채꽃,
사방을 둘러봐도 눈에 걸릴 것 없는 너른 평야와 그림자로만 남은 산들...
적당한 감상을 기대했던 도시 사람에게는 꼭 맞는 풍광입니다.
그런 자연과 더불어,
적절한 유머를 가미해 주는 사람의 흔적들이란.
국도변에서 발견한 걸작입니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전나무의 길을 생각합니다.
처음맡는 듯 자극적이던 나무 내음을요.
"하늘을 찌를 듯한"이라는 진부한 형용사구가 그대로 들어맞는 모습이더군요.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댔으나, 프레임 안에 가두기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런 위용을 지나면 의외로 내소사는 자그마합니다.
고개를 썩 많이 꺾지 않아도 경내가 한눈에 잡힙니다.
그런데도 주변으로 둘러쳐진 깊고 높은 산에 꿀리지 않습니다. 천 오백년의 시간은
그쯤 되어야 견딜 수 있는 모양입니다. 다듬고 깎아서 못박은 건물이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짜맞추어 그 결을 드러내는, 주위와 호흡하는 집입니다.
그 선과 받침을 표현하는 용어를 저는 모릅니다. 그것들이 겹쳐지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건물마다 빙빙 돌 뿐입니다. 그 유명한 꽃모양 창살에 역시 감탄하고,
나뭇결이 살아 꿈틀이는 현판을 목빼고 올려다봅니다. 낡은 해우소에서는 야릇한 냄새가
풍겨옵니다.
바다 구경도 하러 갑니다. 내려다보기에 어여쁜 작은 항구에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인기척
이라곤 없고, 철은 일러 휑뎅그레한 작은 해변가가 있습니다. 난데없이 차가워진 날씨에,
바닷바람까지 겹쳐서 무지무지 추웠습니다. 그러나 오월을 가까이 둔 햇살 덕분에 간신히
버티면서 바닷가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고운 모래에는 밀물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채석강으로 옮겨 봅니다. 여기에도 유채꽃은 여전히 있습니다.
바람에 그야말로 휘몰아치는 바닷가 돌판 위에서, 저는 미친듯이 뛰어다녔습니다.
물이 저만치 빠지는 것이 신기했고,
층층이 깎인 바위가 신기했고,
거칠게 부딪혀 오는 포말이 신기했고...
입술에 남는 짭짤함까지 좋아했습니다.
제가 어지간히 서울에만 있었던가 봅니다.
본래 그렇게, 작은 것에 감사하는 종류의 인간이 아닌데 말이죠.
선운사는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올랐습니다. 햇빛이 벌써 반짝거리고, 길옆 개울 위로는
녹색 그림자만 깊게 퍼집니다.
길게 뻗은 입구길과 절마당엔 아무도 없습니다.
연출된 장면처럼 풍경소리만 울립니다.
여기에선 감격해 주어야 합니다.
요사채도 기웃거려 보고, 대웅전 아래에서 물바가지로 찬 물을 떠보기도 했습니다.
동백은 살짝 철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김훈의 표현대로, 화려하게 추락해 있었습니다.
"...동백은 한 송이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네, 그렇더군요.
써놓고 보니 관광지 순례같네요.
이에 덧붙여, 사이사이 걸진 전라도 백반들을 양껏 먹어 주었고,
아무 들판에나 내려서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녔고,
맑은 공기에 겨워서 숨고르기가 힘들었고,
밤엔 70년대 버전으로 간드러지게 별을 세었고...
뭐, 그렇습니다.
그 사이를 모두 설명할 수가 없네요.
사진은 백장을 찍었지만 다 전시할 수도 없고요 :-)
올라오던 길에 다시 국도변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내려가던 길의 유머와 달리,
이것은 약간 쓸쓸했습니다.
폐가더군요. 칠해진 색깔이 하도 기이하여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ps. 제가 너무 제 흥에 겨워 사진을 많이 올렸나요?
용량을 줄인다고 줄였는데, 혹 글이 늦게 떠서 짜증나시거들랑 말씀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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