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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아르테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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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옛동네 켄터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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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97년에 켄터키 주 렉싱턴에서 1년 동안 대학생활을 했더랍니다.
그때 미국 간다니까, 오오, 미국 어디? 그러고는(동경과 선망과 질투의 어조로.)
켄터키에 간다고 하니까, 생전 미국에 가 보지도 않아 놓구서는
마치 자신들이 잘 아는, 전라남도 충청북도 어느 시골에 보내는 것처럼 친숙해 하더라구요.
그리고 빼놓지 않는 한 마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많이 먹구 오겠네~!
지금 사는 곳은 일리노이 주의 샴페인이란 곳인데, 여기서 켄터키 렉싱턴까지는 차로 다섯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평균 시속 75마일로 달려서요. 남편 말로는, 서울에서 부산에 갔다가 다시 돌아나와 절반 정도 온 거리라고 합니다. 상당히 먼 거리라 할 수 있지만, 미국은 워낙 넓어서 이 정도는 가벼운 여행이었다구 한다나요.
하여튼 이번에 그 가벼운 여행으로 옛동네를 방문해보았답니다. 그때는 혼자였는데, 지금은 남편이 있습니다.
지루하고도 아슬아슬한 질주 끝에 렉싱턴에 들어서니, 우선 다운타운에 있던 파란색 높은 빌딩이 눈 앞에 들어오더군요. 그 빌딩이 뭔지도 모르면서 괜히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호등도 보이고, 예전에 조깅하다가 기숙사에서 너무 많이 와 버린 동네의 상점들, 그리고 내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 입구, 익숙한 길 이름판-유클리드, 라임스톤, 브로드웨이, 로즈, 우드랜드 등등...
목적지는 그 시절에 친구 되어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한국인 언니네 집이었는데, 전에는 나랑 꼬지리한 학교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작년에 결혼해서 좋은 동네로 이사 갔더라구요. 남편은 그 시절에 나두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둘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걸 보니 참 보기 좋아요. 둘은 교회에서 만났는데, 내가 있던 시절에는 아무 기미가 안 보였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언니의 급격히 외로와진 타이밍을 그 오빠가 이떄다 하고 잡았더라구요. 언니는 그 오빠랑 사귀는 중에도 나한테는 얘기를 전혀 안 했는데, 마침내 재작년에 한국에 잠깐 오면서 실토를 하더라구요. 사실은 언니는 자기 가족한테도 아직 얘기를 안 했던 상태였어요. 한국에 있는 동안 언니가 '장차 시댁'에 방문하는 길에 제가 동행했죠. 그 동안에도 언니는 엄마한테 자기가 어디 왜 가는지 거짓말을 했어요.
왜냐하면, 언니랑 나랑 간 시댁은 말레이지아의 사바 주에 있는 코타 키나발루였거든요.
똑똑하고 예쁜 한국인 며느리를 얻게 된 첸의 어머니는 며느리는 물론, 친구라고 혹처럼 따라온 저한테도 열렬한 환영을 해 주셨답니다. 그때 받은 '융숭한' 대접, 제가 아마 앞으로 뭐가 되든, 어딜 가든, 그만한 환대는 못 받을 거예요.
언니도 그랬지만, 저 역시, 사시사철 섭씨 27도에, 바다에는 물고기가 지천, 땅에는 과일이 지천, 쌀은 일년에 이모작에, 뭐든지 싸고 사람들 친절한 그곳에 홀딱 반해버렸다니까요.
돌아오고 나서 언니는 엄마한테, 사실은 나 말레이지아 화교 남자하고 결혼하기로 했다, 그제서야 통보를 했답니다. 앓아 누운 언니 엄마. 그렇지만, 내 생각에도, 언니가 첸이랑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을 거 같아요. 미리 말했다면, 그 엄마가 그게 진행되게 내버려 두었을 리 없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은 결혼해야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두 사람이 철없는 애들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공부도 할 만큼 한 사람들이니, 그런 성인을 끝없이 통제하려드는 부모님이 문제지... 언니는 늘 수퍼 파워 엄마에게 좌지우지 되는 걸 못 참아 하곤 했죠. 대학을 졸업한 후에 미국행을 결심한 것도 자유를 얻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해야죠. 결국은 누구보다 자유롭게, 용감하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죠. 난 그런 언니가 참 자랑스러워요.
하여튼, (내 얘기는 항상 이래요.)
그 언니네 집에서 사흘간 있으면서, 옛날에 종횡무진 걸어다니던 학교 캠퍼스와 기숙사, 아파트 일대를 돌아다녀보고, 새로 지은 도서관에 들어가 보고, 그 시절 잘 해 주시던 미국 할머니 댁에도 가보고, 떠나기 전에 마지막 만찬을 했던 중국 식당에서 성대한 식사도 해 보고...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하지만 다섯 시간 반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산다는 사실로 위안하며 작별인사를 했답니다.
여행을 앞두고 생각하기를, 내 인생에서 구름에 떠 있었던 것처럼, 분리된 시간 97년이, 지금 다시 그 장소를 방문해보면, 현실에 흡수될 수 있지 않을까, 약간 애매모호하지만 간절하게, 생각했었는데,
여행을 마치고 난 지금 돌이켜보니, 97년의 1년간은 사실은, 조금도 '분리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시기의 생각이 나를 이렇게 바꿨고, 그 시기의 만남이 나를 이렇게 바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분명하게 깨달았답니다.
삶의 한 순간도 낭비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생각'만 하죠.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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