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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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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행기 2 - 세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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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유럽의 자연 풍광이 대개 비슷비슷하겠지만 스페인도 올리브 나무, 사이프러스와 더불어 특히 오렌지 나무의 천국이었습니다. 보아도 보아도 지치기는커녕 그리워지는 나무들. 오렌지와 레몬, 그리고 라임 같은 남쪽나라 과일들이 불러일으키는 온갖 심상들에 어려서부터 오랜 시간 뒹굴어 왔던 사람이라 그 감회가 남달랐나 봅니다.
그 중에서도 세비야의 오렌지 낙원은 형언할 길이 없군요. 세비야, 하면 제겐 무엇보다 오렌지 나무입니다. 거리거리에, 공원에, 유적지에.. 도처에 오렌지 나무가 즐비했고 그 나무들마다 탐스러운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꿈결같은 모습에 저는 그만 이성을 잃었습니다. 저, 열매가 큰 유실수 보는 것을 좋아하여 해마다 가을이면 감나무에 감 열린 정경만 봐도 넋을 잃고 말아요.. 모과나무도 좋구요.. 한 해 중 이 시간이면 잃었던 시력을 완전히 회복하곤 하죠.
리스본에 도착한 것이 밤이었던 것처럼 리스본에서 스페인 국경을 넘어 세비야에 들어온 시간도 밤이었는데 누가 안달루시아 아니랄까 봐 주택이든 까페든 관공서든 간에 그저 하얀 담벼락들의 연속인 가운데 오렌지 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던 그 밤거리가 떠오릅니다. 흰 벽면을 배경으로 가로등의 전구알과,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나는 오렌지 나무의 둥근 열매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어우러져 있던 아름답고 몽환적인 밤풍경.
오렌지 나무만 시야에 들어오면 마법에 걸린 듯 셔터를 눌러 사진을 이삼십 장 찍었는데 막상 재생해 본 사진은 흡족하지 않아 속상합니다. 특히 밤에 찍은 사진은 다 망가졌구요. 아래 사진의 배경이 된 장소는 마리아 루이사 공원인 것 같기도 하고 세비야 성당 부근, 혹은 성당 안뜰일지도 모릅니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역시 오렌지 나무 가로수였구요.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 나무는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이라지요. 아마도 계절이 여름이었다면 오렌지와 오렌지 나무에 대한 저의 갈망은 더 컸을 테고 세비야의 풍경 또한 지금보다 더 싱그럽게,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2.
매혹적인 이탈리아 스케치 [나의 즐거운 일기]의 난니 모레티는 스쿠터를 타고 로마 시내를 일주하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집구경이라고 했습니다. 도시 여행은 일차적으로 집구경이지요. 길거리에 선 집. 그 수평과 수직의 교직. 그것들의 연속. 끊임없이 전개되는 선과 면의 만남, 그 안을 채우는 덩어리와 표면의 의장들. 여행이라는 시공간 이동 행위 중에 의식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시각 체험이며.. 낯선 도시의 스쳐가는 사물들 가운데 최후까지 망막 아래 저 심연으로 가라앉아 우리 내부에 긴 여운을 남기게 될 이미지라면 참으로 이 집구경의 잔상들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럽의 길거리는 똑같은 틀에서 제조된 색채와 질감의 변주인 듯합니다. 그 색채와 질감의 변주를 감상하는 일은 왕궁이나 성당에서 디테일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보다 즐겁습니다. 골목은 광장으로, 광장은 또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광장이라기에도 뭐한 안뜰 정도의 마당엔 샘이나 식당이나 까페가 있습니다. 저는 이 끝도 한도 없는 길과 집이 짜 내는 기하학적 공간이 마냥 좋았습니다. 유럽 어느 도시를 가도 볼 수 있을 평범한 거리와 집들 말입니다. 이슬람 문화가 보존된 안달루시아는 그 평범한 테마에 의한 하나의 이국적 변주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진도 내내 그 모양입니다. 같은 듯하면서 다 다른 희고 어여쁜 집들, 늘어뜨린 제라늄 화분들, 창을 낸 방식과 등이 걸린 각도, 좁은 골목에 이어진 작은 광장, 돌바닥과 인접해 세워진 모퉁이 식당과 까페의 조형미, 아기자기한 스카이라인, 구멍처럼 뚫린 하늘, 오직 이런 것들입니다. 세비야, 그라나다, 코르도바, 톨레도, 모두 마찬가지며 회교권인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이런저런 도시들 또한 붕어빵이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하던 시점에 접한, 그 각각의 색채와 질감과 독특한 기분만을 향유할 따름.
세비야의 예쁜 골목길로 알려진 유대인 거리 산타크루즈 지구입니다.
한 사람밖에 못 지나가는 좁은 이 골목을 키스의 거리라 한다지요.
이 거리의 기념품 가게에 디스플레이된 어여쁜 도기들입니다.
플라멩코 쇼 티켓도 판답니다.
클릭하셔서 큰 사진을 꼭 봐 주세요.
돈 후안이 죽때리던 식당이라고 들었습니다.
요기서 밥을 먹으며 지나가는 여인네들을 유혹했을 거라고.
돈 후안의 여인 중 하나였던 도냐 엘비라라는 이름의 식당입니다.
식당 앞에 오늘의 요리를 써 붙이고 파라솔을 펴고 의자를 내놓는 시간.
주방에선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팬에 올리브 기름을 두르는 시간.
손님 맞이를 위해 단장하는 식당은 아름다운 노래 소절과 같습니다.
대낮에 식당과 까페들의 실내에 켜진 은은한 조명, 희디 흰 식탁보..
이런 것들이 저는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3.
"세빌리아에서는 궁정, 성당, 과달키비르 따위를 무시해 버리고 나면 삶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유쾌해진다. 그러나 그 고장의 의미심장한 <매혹>을 참으로 느끼려면 지랄다의 정상에 올라가려다가 그곳의 수위에게 제지당해 보아야 한다. <저기는 두 사람씩 올라가야 됩니다> 하고 그는 당신에게 말한다. <아니 왜요?>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지요>." - 장 그르니에
히랄다 탑으로
이슬람 시대에 수도사가 당나귀를 타고 올라다녔다는 이 탑 정상의 종루
탑의 정상에서 굽어본 세비야 전경.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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