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무르시아로 들어갑니다. 다시, 무르시아란 바로 여기.
무르시아란 주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으실런지 모르겠습니다.
주도는 알메리아이며, 그리 잘 개발된 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름철 해변을 찾아 내려오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구요... (안달루시아의 해변처럼 리조트
화되어 있지 않답니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Cabo de Gata를 가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는 ''고양이곶'' 정도가 되겠네요. 이곳은 연간강수량이
100밀리 정도로 스페인에서 유일한 사막지대입니다. 게다가 지중해를
본적이 한 번도 없어.. 이 곶을 따라 80킬로 정도 걸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메리아로 가는 길 군데군데 매마른 땅위에 낮은 비닐하우스가
바다를 이룹니다. 수분증발을 최대한 막기위해 이렇게 채소농사
등을 많이 하는데.. 혹자는 이걸 Costa plasti''ca라고 부릅니다.
(플라스틱 해변이란 뜻인데 근처의 유명한 Costa del sol 등을 패
러디한 것입니다.) 론리 플래닛을 이걸 스페인에서의 Worst 10
에 꼽더군요. 다른 것들은.. 뷰러크러시나 오토바이 소음, 내장음식
(미국애들 입엔 좀 안맞았나보니다.) 등이 기억에 나네요.
알메리아에는 모로코 사람들이 온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스페인에서
흑인이 이렇게 많은 곳도 드뭅니다.(중북부에서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가 알제리와 끈끈하고 복잡한 관계를 가져왔듯이
스페인은 모로코와 그러했습니다. 최후의 파시스트 정권 프랑코 총통도
바로 모로코 주둔 사령관의 자리에서 쿠테타를 감행했었죠. 그러고보니
스페인 역사 한국과 참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몇 개국이었던 나라가 통일된 후의
후의 국토 회복, 특히 근대의 독립전쟁과 우리의 의병활동(게릴라라는
말이 스페인어에서 나온 것 아시죠? 게라 Guerra가 스페인어로 전쟁이란
뜻입니다. Guellia는 이의 축소형으로 작은 전쟁.. 직역하면 이런.. 비정규
군에 의한 후방기습과 보급선 차단 등을 의미합니다. ''''롤랑의 노래''''에서
샤를마뉴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롤랑을 전사시켰던 바스크 족의 기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게릴라 전술은 나폴레옹의
침공시 끈질긴 투쟁으로 이 단어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 나폴레옹의 형이
스페인 황제로 봉해졌었던가요?), 3년간의 내전, 그리고 군사독재정권,
민주화의 과정까지.. 특히 20세기의 역사는 어찌 그리 닮았던지..
(왕조가 지켜지고 특히 국왕이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다른 점이군요. 그래서인지..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은 스페인
이 유럽에서 제일가는 편이 아닌가 합니다. 왕을 부를때 ''돈''을 붙이지
않고 그냥 후안 까를로스 2세라고 부르면 사람들이 꼭 정정해 주더군요. -.-;
왕비는 그리스 출신이고.. 사치를 부리지 않고 항상 검소한 생활로 존
경을 받죠. 잘생긴 왕자야 항상 가쉽 잡지에 나오고(펠리뻬.. 였던가?),
첫째 공주인가는 유명한 핸드볼 선수랑 결혼했죠.)
아아.. 말이 또 다른데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알메리아.. 는 첫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유쾌한 해안가의 분위기랄까 활력이랄까 그런 것이 있습니다.
까세레스는 황새가, 세비야는 박쥐가 지배하듯이(아, 이 이야기는 안했네요.
박쥐가 아주 많답니다.) 이곳은 비둘기. 비둘기야 어디 가나 많지 않냐..
라고 하시겠지만 거의 모두 하얀 비둘기인 알메리아의 비둘기는 그야말로
활력이 넘친답니다. 바닷냄새가 섞인 공기가 활력을 준다고나 할까.. 가로수
로 늘어선 야자수들과 하얀 식민지풍의 건물들이 잘 어울립니다.
야자수가 많으니 Palmera를 하나 사 먹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빵 하나
하나의 이름을 잘 아는 편이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는 어차피 주식용 빵
보다는 후식용 빵이 대부분이니 종류도 꽤 많죠. 하지만 스페인에선 주식
용빵이 아닌 간식용 빵은 꽤나 종류도 정해져있는 편이라서 이름을 알아
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건 미리 책보고 공부할 수 있는게 아니니 볼
때마다 하나하나 물어볼 수 밖에요.
빨메라는 야자잎.. 이라는 뜻으로 하트형의 과자입니다. 파이처럼 얇은
껍질이 층층이 겹쳐진 납작한 모양이죠. 설탕을 묻히거나 초컬릿을 입히
기도 하죠.(대강 상상이 가시죠?) 입이 심심하니 하나 사들고 바삭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알메이라에서 다시 San Miguel dl Cabo de Gata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Cabo de Gata의 초입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입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암고양이곶의 성 미카엘(대 천사중 한명. 군신 아레스의 그리스도교판
정도 됩니다. 성상에선 주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가끔 레이저 같은
것도 쏩니다) 발톱 하나 가진 불쌍한 악마나 용 등을 살해하는 걸로 묘
사되죠. -.-;;)'' 정도가 되려나? ^^
한가로운 마을입니다. 오후엔 별로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바에 있
는 당구대엔 왠 마을 아가씨가 혼자 당구를 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한게임?" 하면서 접근하면 좋겠지만.. 노래방, 당구, 볼링, 도박 등
온갖 잡기에는 전혀 재주가 없는지라.. ^^
이곳은 한국으로 치면 주남저수지 정도 될까요? 해안 가까이에 석호
가 있고 이곳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
입니다. 동물원에서만 본 적 있는 플라밍고(홍학)로 특히 유명하죠.
저녁 무렵.. 늪 근처에는 한 부녀 뿐입니다. 원래는 들어가서는 안되겠지만
옅은 물풀을 제치면서 안으로 조금 들어갑니다. 갈매기로부터 새끼를
지키려는 따오기류(닮았다 뿐이지 정확한 이름은.. --;) 부모의 사투가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방영하는 만화영화의 대사가 갑
자기.. -.-;; "지켜야 할 성이 없다면 가고일이 아니다."
물풀 사이로 갑자기 봉지 하나가 보입니다. 아니, 이렇게 몰지각한 사람
들이.. 상표를 보니.. 어디선가 익숙한 "칼슘강화 안성탕면" -.-;; 도대체..
이런 곳에 라면봉지가 왜.. (끓일 수도 없는데..) 요즘에야 세계 어디든 한
국 라면 구하기 그리 어렵지는 않으니 한국인의 소행은.. 설마 아니.. 맞을
것 같죠? -.-;
저녁은 숙소 1층의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Caballa al moro. 즉 모로식
고등어.. 를 시킵니다. 모로인이란 이슬람.. 보다 구체적으로는 수백년동안
이베리아 반도의 중남부를 지배했던 북아프리카 출신(주로 베르베르족)의
이슬람인들을 말합니다. 건축과 요리, 스페인어 어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곳곳에서 이들의 흔적을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재정복이 이루어지는 와
중에서도 이들은 기독교 치하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슬람 영토하에서의 기독교들 또한 마찮가지였구요. 이런 자유로운 문화
교류 아래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과학, 기술, 학문 등은 유럽에서도 가장 찬란
하고 꽃핍니다. 하지만 기독교왕 부처(이사벨라와 페르난도)에 의한 재정복 완수
이후.. 종교적 관용은 점점 사라지고 유대인과 이슬람 교도에 대해 개종을
강요함으로써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게 됩니다. 훌륭한 농경관개기술
을 가지고 있던 이슬람 교도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돌아감에 따라 스페인
의 농경지는 황폐화되었고 금융, 상업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사라짐에
따라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부의 대부분을 유럽 다른 나라로 유출
시키고 맙니다. 반면 이들을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유럽의 금융중심지로 자라
나죠. 스페인은 이때부터 유럽의 후진국으로 전락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쌓아놓은 부와 영토를 다 까먹는데는 이백년이 걸렸지만.) 종교적, 문화적
관용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예는 인류역사에
걸쳐 수없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우리는 그 교훈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씁쓸...
아, 먹는 얘기. 잠시 다른 곳으로 빠져서 죄송합니다!!!
고등어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되었군요. 고등어는 스페인어로 Caballa입니다.
말(가축)은 Caballo라고 하죠. 실수로 바에서 ''말 한마리 주세요''라고 했다가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답니다. 조심, 조심. 모로식 고등어는 카레향이 나는
모로풍 소스로 고등어를 졸인 거랍니다. 맥주를 곁들여 빵으로 소스까지 삭삭
닦아먹으니 반접시로도 충분히 저녁이 해결됩니다. 맥주값을 합쳐도 오천원이
안념죠. 고등어나 정어리 같은게 비쌀리가 없으니까요.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 Cabo de Gata를 걸을 생각으로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석호는 염전으로 사용되어 커다란 소금산들 옆을 지나칩니다.
종종 지나가던 차들이 "어이, 태워줄까"라고 하며 멈춰서 매번 사양하는 것
도 일입니다. ^^ 그림같은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절벽위 도로를 따라 한참
걸으니 비포장 길이 나타나고 건조한 사막지형이 나타납니다. 물론 완전
사하라 풍의 거대한 모래지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은 연간 강우량 100
밀리 미만, 연간 일조량은 3000시간으로 우리 나라의 3배 이상입니다. 이
곳에서 가장 많이 보는 식생은 용설란으로.. 수십년만에 자기 키의 10배는
됨직한 거대한 꽃대를 피워올리고는 곧바로 말라죽습니다. 무척이나 이국
적인 풍경입니다. 해안을 따라 가다가 우연히 작은 백사장을 만납니다.
아직 바캉스철은 아니지만 오십명 미만의 사람들이 해수욕 중. 정말 사막
같은 커다란 사구들이 감싸고 있습니다. 근데.. 사람들은.. 다 나체.. 아,
조금 민망.
우여곡절 끝에 예정에도 없던 거대한 석회석 광산이 있는 산을 하나 넘어..
(산길 한가운데서.. 험한 편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나무로 가득 덮여있지 않아
시계는 훤합니다. 왠 미국인 여성이 "4륜구동차를 탄 남자를 못봤냐?"고 절
망적인 표정으로 묻습니다. 뭔 사정인지.. 누가 산속에 버리고 간걸까요? ^^)
마지막에는 벤츠를 하나 얻어타고 예정보다 훨씬 멀리 La Isleta del moro
에서 묵습니다.
인구 백명도 될 것 같지 않은 어촌입니다. 소금맛이 나는 공동 급수장이
있어 팔뚝이 내 허리만한 아주머니들이 물을 길러 집으로 향합니다.
높은 곳에 별장들이 여러채 있으니 그곳에는 분명 수도를 설치했을텐데
왜 같이 설치안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머니의 힘''이라는 것을 실감
할 수 있는 마을입니다. 집 앞에서 숯불에 굽는 생선냄새가 코를 자극합
니다.
그날 저녁 먹었던 ensalada(샐러드)는 특히 훌륭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
다. 스페인에서의 샐러드는 곁들임 음식이 아닙니다. 엄연히 빠에야나
스파게티 같은 퍼스트 메뉴 중 하나지요. 독특한 소스나 예쁜 데코레이션
같은 것도 없고(아, 물론 데코레이션은 하지만.. 이게 참.. ^^ 설명이..),
대신 양은 정말 푸짐합니다. 양상치, 토마토, 양파, 피망 등이 기본이고 여기에
삶은 계란, 참치, 올리브, 안초비, 고기류, 과일류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갑니다.
저희가 양식당에서 작은 접시에 곁들임으로 나오는 샐러드의 10배 이상
의 양이 커다란 접시에 가득 담겨 나오고.. 삥 둘러 토마토나 올리브, 삶은
계란 등으로 장식합니다.(계란만 몇개씩 들어가는 듯한..) 소스는 당연히
없죠. 올리브유, 식초, 소금을 입맛대로 쳐서 먹습니다.
적어도 여행객의 비타민 섭취를 위해선 이보다 훌륭한게 없죠.. 양 정말
많습니다. 학생 시절 자취할 때도 간혹 야채가 부족하다 싶을 땐 이렇게 만들어
쓱삭쓱삭 먹어치우곤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야.. 이곳엔 그날 버스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격일도 버스가 있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4번을 히치하이킹 해서 그날
밤에야 알메리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까스띠야 이 레온 주에 있는 살라망까로
밤차로 떠납니다.
사실.. 그라나다에 있을 때부터 갑자기 "스페인어를 좀 더 잘 했으면 여행이
훨씬 재밌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고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본 결과.. 스페인
어를 배우기 위한 장소로 살라망까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라나다에서
배울까.. 라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었지만.. 살라망까.. 그리고 까스띠야 이
레온은... 지금의 스페인의 다양한 문화를 묶어주는 중추랄까.. 그 기반으로
안달루시아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현재 스페인 역사와 문화의 중심을 묵직
하게 지켜온 곳입니다. 게다가 살라망까는 스페인 제 1의 대학이 있는 (살라
망까 대학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오래되었던가..) 교육도시이고.. 해서 한번
생활해 보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래서 전 살라망까에서 한달간 생활하게 됩
니다.
까스띠야 이 레온은 이곳.
먹는 얘기에서 벗어나 엉뚱한 얘기를 너무 많이 했군요. 혼날지도.. 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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