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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하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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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스페인 기행문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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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도보여행을 하다보면.. 고등학교때 배운 지리 시간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산맥이 있는 곳에는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부딪히는지
어김없이 비가 자주 옵니다. 주룩주룩 오는 비를 맞으며 사흘을 나가자.. 어느새
땅은 점점 평탄해지고, 푸르름의 정도는 줄어듭니다. 여기저기 밀밭이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길옆으로 늘어선 포도밭이.. 어느새 라 리오하에 접어든 것을 알려줍니다.
라 리오하 와인의 명성은 익히 아시겠지요. 스페인에서 유일한 DOCG급 와인입니다.
포도밭이라는 놈들.. 직접 보니 참으로 수줍어 보입니다. 이게 다 자란 놈들인가
알 수는 없지만 허리 높이나 되어 보일까.. 크기도 조그마하고.. 넓직넓직하게
심겨져 있어 넝쿨이 우거져 그 밑에 들어가면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한국의 과일용
포도밭에 비하면 너무나 소심해 보이는군요. 이 놈이 나중에 어떻게 그 매혹적이고
섹시한 맛을 내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라 리오하의 맛을 사랑합니다.
아침에 출발할 때엔 가볍게 차를 마시거나 비스켓 몇 개만 씹습니다. 한두시간 걷다
보면 저너머 해가 뜨는 것이 보입니다. 한국에서 항상 산위로 해가 떠오르는 것만
보다가.. 고원 저 너머.. 저 아래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새롭습니다
도중에 작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면 가게나 정육점에 들러 식사거리를 사기도 합니다.
구릉을 지나다가 예쁜 꽃들이 우거진 곳, 혹은 바위아래 앉기 좋은 곳을 만나면
아래 언덕을 굽어보며 요기를 합니다. 칼을 꺼내 초리소를 한조각씩 잘라 입에 넣습니다.
여기다 빵 반개, 포도주 몇 모금, 사과 하나가 전부겠지만.. 적당한 미풍과 함께라면..
이 정도도 꿀맛입니다. 땀이 너무 식기 전에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
도착하는 시간이 일정하진 않지만 오후 2,3시에 도착하면 식사를 합니다. 식사는
식당에서 할 때도 있고, 숙소에서 직접 해 먹기도 합니다. 대개의 식재료.. 쌀이나
파스타.. 는 계속 지고 걷기엔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인지 꼭 앞서가둔 사람들이
사서 선반에 넣어둔 것이 있습니다. 적당한 부재료만 사서 해먹습니다.
여기서 간단한 스페인식 밥짓기. -.-; 밥은 팬에 짓습니다. 일단 올리브유를 두르고
쌀을 약간 볶아준 다음 물을 적당히 붓습니다. 여기다가 고형 닭고기 수프(닭고기
수프를 분말로 만들어 사탕만하게 굳힌 것)를 하나 넣어준 다음.. 적당히 익었을 때
뚜껑을 열고, 수분을 적당히 날려... 먹으면 됩니다. 소금은 식성 따라. 우리의 밥과
죽의 중간 단계쯤 되려나. 쌀은 적당히 익고, 속살은 뽀독뽀독 씹힐 때 쯤에 제일 맛
있겠죠? ^^
그 전에 그날 입은 옷을 빨고(햇살이 강하니 두세시간 후면 쨍쨍하게 말라 있습니다.)
샤워도 물론 하죠. 발에는 물집에 생길테니.. 실에 바늘을 꿰어 한바늘 넣어 둡니다.
실이 끼워져 있으면 그 사이로 밤새 진물이 빠져 다음날 실만 뽑아내고 밴드를 붙여
다시 가면 됩니다. 이것도 일이주일 지나면 단련이 되어 더이상 물집도 생기지 않는답
니다.
밥을 먹으면 대개 한 잠 자거나.. 아니면 도시라면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거나.. 혹은
바에 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축구를 보게 됩니다. 당시 월드컵 기간이라 매일 매일
바에 들어가 경기결과를 확인하고 신문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국과 멕시코의
첫 경기... 열렬히 응원했으나 3:1 패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위로해 주더군요. ^^
저녁은 간단히 때우고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는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듭니다.
사람이 걷는 속도가 대개 비슷하기 때문에 비슷한 일정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습
니다. 여기서 같이 잤던 사람이 다음 숙소에서도 만나고 하는 일이 많아.. 여럿 친하게
됩니다. 식사 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기도 합니다. 전세계에서 온
온갖 사람들을 만납니다. 까미노에선 모두가 친구이지요. 벨기에의 박쥐연구가,
독일 흑림에서 온 식료품상, 퇴역군인 부부, 브라질에서 온 아가씨들, 미국의 인디오
문화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페루의 해양생물학자, 마요르까에서 온 요리사와 웨이트리스 자매...
그리 크지 않는 라 리오하를 지나면 드디어 메세타 고원이 펼쳐집니다. 햇살은 뜨겁고
먼지가 풀풀 날립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을 지나도 식생이 허리 높이를 넘지 않는
관목이나 풀들이라.. 사방이 다 보입니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걸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산과는 전혀 달라 낯설어보입니다. 빠알간 양귀비 꽃밭을 지나고 들판 한가운데서 느닷
없이 만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은 성당은 대도시의 웅장한 까떼드랄 보다도 더 반갑습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모래먼지에 뒤덮인채 갑자기 바라도 만나게 되면 더없는 축복
입니다. 한국에서 콜라는 입에도 대지 않는 저였지만 이 기간에 콜라에 중독됩니다.
(사실은 콜라의 맛도 다릅니다.) 혹은 맥주나 시드라를 마시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면
간단히 보까디요나 또르띠야를 곁들이기도 합니다.
까미노를 따라 있는 도시, 마을들 중 인구 10만이 넘는 곳은 단 세곳 뿐입니다. 빰쁠로나,
레온, 부르고스. 세 곳다 스페인 역사에서 이름을 남기는 곳이지만 세비야나 그라나다,
똘레도와 같은 급의 관광지는 아니고 그 외의 작은 마을들에선 순례객 들 외에는 관광객
을 보기 힘들기에.. 저같은 동양인은 굉장히 눈길을 끕니다. 제가 경치 사진 찍듯이..
다가와서 제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 공원에 앉아 있으면 5분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이것저것 말을 걸어옵니다. 한글로 자기 이름을 써달라는 사람도 종이를 들고
모여듭니다. 작은 마을은 작은 마을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렇게
자기발로 걸어서 도착한 곳은.. 버스로 휘익 지나갈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어떤 도시에는 가우디가 설계한 동화스런 건물이 있고 어떤 도시에는 작은 미술관에서
옛사람들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컬렉션을 발견합니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평균적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축제와 마주칩니다.
부르고스 외곽의 .......... 수백년이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수도원에서 묵습니다.
이 마을의 인구는 이제 7명. 수도원을 지키는 신부님은 마늘 스프를 끓여 모두를
대접합니다. 신부님이 준비한 것은 마늘 수프 뿐이고 이 마을에는 식료품점도
없지만 사람들이 배낭에 가져온것을 모두 꺼내어 나누니 훌륭한 식사가 됩니다.
성서에 나오는 빵 두개로 오천명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신비는 도처에
있습니다.
부르고스는 모르시야로 유명하나 이 스페인판 순대는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으니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맛도 한국의 순대랑 꽤나 흡사합니다. 어쨌든 요렇
게 생겼습니다
이게 초리소 입니다. 물론 종류는 각기 수백가지는 될테니.. 다 틀리게 생겼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기본적인 초리소나 살치촌, 모르시야 말고도 랑고니사니 소브라사다니 하는 비슷한
류가 많습니다만 이 정도가 되면 저도 자세한 구분이 불가능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강 짐작하고 먹습니다.
뭔가 사람들이랑 계획이 틀려지게 되면 몇 번인가는 숙소에 묵는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뿐인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한 번은 그 마을에
숙소가 두 개, 사람들은 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숙소로 갔으나 저 혼자 외따로 떨어
진 곳을 어찌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사람들 많은 곳으로 놀러가 멜론을 제대로
써는 법을 배웁니다. 이 쥬시한 멜론에 감칠맛나고 짭짤한 하몽. 이제 한국에 돌아
가면 한동안 못먹을 거라 생각하고 한 통을 한 번에 비웁니다. ^^
다른 마을에선 아예 식품점조차 없는 마을이고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몇 집 밖에 없는 집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가 마을 아주머니께 먹을 것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 드립니다. 훌륭한 가정식 또르띠야와 샐러드를 먹고 재료값을
드리고 나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바보스러울 정도로 뻔뻔스러워 질 수 있는
것.. 이런 변화를 보고 싶어서 굳이 외국으로 기어나오는 지도 모릅니다.
산에 있던 한 식당에서 먹었던 가르반소 수르.. 가르반소란 병아리콩을 말합니다.
노란색의.. 한국에서 먹는 것은 본적이 없습니다만 스페인에선 일상적인 먹거리입
니다. 그런데.. 못 먹는 것 없이 잘 먹는 저도.. 콩류에는 조금 약한 것 같습니다.
(중남미에서 날마다 Frijol을 먹으면서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스프라 하면..
대개..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바닥에 스푼이 긁힐 정도로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동네는 어쩌자고.. 대접에 나오는 겁니까? 라면 그릇보다도 더 큰 대접에.. 다른
내용물 없이 오직 가르반소만 한가득 들어있는 스프입니다. 수백개의 가르반소가
호호거리며 먹어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맛이 나쁘진 않지만.. 이걸 다 먹으려면
정말 힘듭니다. 배속에서는 불어터져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고.. 아아, 콩은 정말
적당량 먹어야합니다.
부르고스의 순례자 숙소에서는 순례자들에게 바베큐 파티를 열어줍니다.
돼지고기와 모르시야(물론), 정어리와 과일들.. 그리고 와인. 정어리를 숯불에 구운
것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스페인의 안주거리입니다. 갈리시아의 해안가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는데 가격은 한마리에 50Pts. 에 봤으니.. 350원. 바닷가에서 정어리
네댓마리 구워놓고 갈리시아 특산 리베이로를 곁들이면... ^^ 그리고 신선한 바닷
바람.. 갈매기.. 리베이로를 항아리로 시켜도 가격은 5천원을 넘지 않는.. 이만하면
천국 아닌가요?
어쨌거나 그건 먼 훗날의 일이고 아직은 매마른 땅을 계속 나아갑니다. 부르고스를
지나.. 레온을 넘고.. 중세풍의 마을을 지나고.. 인구가 2명 밖에 안남은 버려진 마을도
들리고.. 돌다리를 건너고.. 징검다리도 뛰어넘어.. 8백킬로나 남았던 길이 4백킬로를
지나고 어느새 2백킬로 밖에 남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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