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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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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05 베로나-두 오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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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콜로세움과는 또 달리, 수평의 안정감과
나지막한 평화로움을 안겨주는 것이 베로나의 아레나였습니다.
지난 시대의 유적들이 늘 그러하듯
비전문가의 눈에 오리지날과 복원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고대 유적은 훌륭하게 잘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오페라 축제로 더욱 유명하지요.
제가 예약해 둔 작품은 아이다와 나부코였습니다.
http://www.arena.it/eng/arenaeng.urd/portal.show?c=105
둘 다 베르디 작품이죠..
이번 프로그램 중 푸치니 작품도 있었으나
왜 그런지 모르나 저는 이 푸치니가 좀 값싸게 느껴져요..
라보엠은 좋아합니다만.. 이탈리아 오페라는 역시 베르디인 것 같구요..
이렇게 말하지만 물론 멜로디를 아는 것이라곤
아이다에선 개선행진곡, 나부코에선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딱 이 한 곡씩뿐이랍니다.. ^_^
일단 베로나 아레나에서의 나부코..
이것은 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것이기에 결정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여기에다.. 간 김에(라는 핑계는 정말 무서운데요) 한 편 더 보고 와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느냐 해서 추가로 고른 것이 아이다였던 것인데
아이다의 내용엔 흥미가 없어도 그 스펙터클한 세트만은 기대되어서요.
예약해 놓고 보니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이라 잘했다 싶었습니다.
호텔 투숙 후 정리하고 나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말하나마나 아레나 티켓 오피스에 가서 티켓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티켓 두 장을 챙기고 보니 여한이 없고 베로나에서의 사흘이
이제 막 시작인데 벌써 충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이유는 이러한 기대들, 기대의 공급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막상 도착 첫날의 아이다 공연은
악천후로 인해 원활한 감상이 되질 못했습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내린 소나기로 좌석이 모조리 물에 젖었을 뿐 아니라
밤기온이 급격히 하강하면서 공연 내내 여기저기서
콜록콜록하는 기침 재채기 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공연이 종료된 새벽 1시경의 객석은 거의 체감온도 10도에 육박할 법한
심각한 냉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웅장한 세트도 좋고 연주도 좋지만
축축한 좌석에 앉아 동태가 돼 가면서까지 예술을 즐길 도리는 없는 것이죠.
오들오들 떨며 공연장을 빠져나왔을 때 광장은..
오페라 시즌이면 바로 이 시간부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된다는
아레나 일대 식당과 까페 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고
그 따뜻한 불빛 아래로 모두가 다 피신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몸을 녹이려고 그 어딘가에 들어가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셨는데 하늘의 맛이었습니다.
아이다..
뭘 봤는지 뭘 들었는지.. 좀처럼 떠오르질 않아요..
황금을 녹여 만들어 놓은 것 같던 웅대한 이집트 세트 말고는.
그 대신 해질녘 베로나의 기습적인 폭우, 아레나 주변의 청회색 하늘조명,
수런거리는 객석, 준비해 간 여분의 옷들로 몸을 감싸고도
많이 추워했다는 것, 카푸치노의 맛.. 이것들만은 생생하군요..
대낮에 아레나 주변에 전시되고 있던 오페라 세트들
사흘간 저는 특히 저 아레나 유적의,
극적으로 살아남은 외로운 윙에 사정없이 매료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아이다의 실패는 이틀 후 같은 시간 나부코로 만회됩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죠. 비가 오지 않았고.. 덜 추웠고..
미리미리 스웨터를 하나 사서 든든히 입었고.. 좌석도 아이다때보다 무대에서 훨씬 가까웠고..
아이다때의 태만한 준비자세에서 일신, 대본도 사다가 대충 훑었고..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공연이 나부코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긴 시간 동안 한눈 팔 여지가 없을 만큼 심금을 울리는 선율들..
나부코의 바리톤 음성과 팜므파탈인 아비게일의 열연..
그리고 감동적인 오케스트라 연주와 합창.. 여러 번 가슴이 뭉클했어요..
왜 이 오페라가 이탈리아인들의 스피릿을 고취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하며 시작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끝나자마자 우뢰와 같이 터진 박수..
전통인 듯 청중 모두가 객석에서 일제히 발을 구르던 환호와
브라보 브라보 하던 함성들.. 이윽고 거기에 화답하던 앵콜 합창에..
심장이 마구마구 뛰었습니다.
공연이 종료되었을 때 이미 시간은 자정이 넘어있었고
어느덧 제가 베로나를 떠나는, 아니 로마 베네치아까지 합하여
12박13일의 전 여행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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