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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쏘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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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re] 10일간의 피렌체, 여행기를 기다려 주시기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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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피렌체는 사실
제가 되지도 않는 미술사수업을 한답시고 초기르네상스 자료를 모을때
이럴게 아니라 다녀와야할 곳인데...하고 푹푹 한숨을 쉬던 곳이랍니다.
사실 다녀온 적도 있긴 한데
그게 한 20년전에 수박겉핥기 단체 미술관견학프로그램으로
버스를 대절해서 이도시에서 저도시로 스치듯 지나가기만 했으니
다녀왔으되 다녀온 것이 아니었던거예요.
미술관에서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산해진미에 신경과 감각이 과포화상태가 되어
어디 빈 공간인지 언덕에서 쉬면서 내려다보았던
지는 해 아래 붉은 지붕들 일색인 플로렌스(라고부르고싶다)의 시가지는 아련히 기억나요.
미술에 입문 이랄까 그 세계에 발 디딜땐
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초기에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에서 주르르 내려와 로댕 등등 까지
이른바 서양미술사 거장들의 고전작품을 막연히 이상으로 삼는 시기가 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조금 더 들어가면서는 그것들을 보란듯이 내치는 시기가 오고요...
그 고전들이 휘두르는 광휘와 권위, 형식에 반기를 드는 작품들이
더 구원투수로 다가오면서 그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반복됩니다.
누구를 이상으로 생각했다가, 또 내치고...
(개인적으로 렘브란트는 끝까지 살아남더군요. 전 이사람의 우울을 떠날수가 없었답니다)
나중에 동시대작가까지를 아우르는 개인적 아카이브가 형성되면서
자기취향의 재조정이 이루어지지만, 그래도 그것조차 항상 현재형으로 유동적인데
점차 그 일로 먹고살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가다보니
앞서간 동종업계 종사자를 보는 시선으로 또 재정비가 되어갔어요.
그러고나서 보니
이른바 르네상스 전성기의 3대거장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들중
가장 심리적으로 친근애착감이 드는 이가 단연 미켈란젤로더군요.
제경우 그 이유를 대보라면, 구구절절 많지만 압축 표현해보자면
일생 곤고했고 황소고집이 운명과 맞대결하느라 기진했으며
재능만을 믿지는 않았던 자기쇄신의 노력형 인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사실 이미지를 주로 취하고 판단은 제멋대로 하는 편이라
그에 대한 텍스트를 그렇게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제가 편애하는 반룬씨의 예술사 이야기에 있는 미켈란젤로 서술은
제가 이제껏 본 그에 대한 어떤 서술보다도 본질에 맞닿아있지 않을까 짐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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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찬란한 생활을 한다는 환상을 아직까지 품고 있는 사람은 이후로 펼쳐지는 미켈란젤로의 생애를 잘 살펴보라.
[...]
이 책을 쓰는 마당에 이제 이 거장의 노작(勞作)에 대해 요약하는 말을 몇 마디 적고자 한다. 이 사람의 작품 앞에 가까이 가면 나는 이상하게도 무릎의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맹세코 내 영혼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겸양의 감정이 생긴다. 어쨌든 나는 한 가지 말은 할 수 있다. 그 노인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은 고상한 불만,남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불만에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 베토벤이나 렘브란트나 고야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처럼 미켈란젤로도 '완벽'이라는 말의 뜻을 알았던 거인이었다. 그리고 아득히 희미하게 보이는 약속의 땅을 갈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세처럼,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그것에 다다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 인간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고상한 불만이며 그것은 모든 지혜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모든 위대한 예술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한 것이다.
- 반룬의 예술사이야기 2권 「이탈리아 그림 공장이 문을 열다」, p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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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해전에 어느채널에선가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에
첫부분은 놓치고, 녹화해놓았던 비디오가 있어요.
(녹화 이후 보지도 않았다...)
미켈란젤로 살던 시대에 대한 고증과 인간적 면모에 대한 꼼꼼한 탐구로
대역배우가 연기로 재현도 하고, 좀 시시콜콜한 부분을 파헤치기도 하는 다큐였는데
거기에서 인상깊게 기억나는 것은
미켈란젤로가 평생 여자의 나신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미술사학자나 해부학 전문가가 말하는 부분이었어요.
(동성애자 설은 다빈치와 함께 워낙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고)
왜 그부분이 확 들어왔냐하면
저도 그런 의심을...늘...하고 있었기 때문이랍니돳.
미켈란젤로가 만든 여체는 진짜 여체같지가 않아요.
물론 르네상스의 신이데아적 인간상이 궁극목표였다고는 해도
시스틴 성당 벽화에 그려져 있는 여사제 등짝도 그렇고
그... 밤과 낮인가 하는 조각상의 여자 가슴근육이랄지 등등
여체를 모르든가, 아님 부러 무시했든가 뭐 둘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이건 그의 조각이나 회화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생각하는 점이라는 것을 당부!)
암튼 그 비디오 다시한번 감상해보고나서
서적들도 다시금 들춰보고
새로운 내용이 있으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풍부한 사진자료와 에피소드 부탁드려요~
오늘의 햇살은 완전 가을 햇살이네요.
포도가 영글고 해시계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그런 햇살이요.
>
>돌아오자마자 베이징 올림픽에 빠져있다보니 내일 개학.
>아카데미아 미술관 중심에 우뚝 선 다비드상의 (남성)육체에서
>인간신체의 힘과, 균형과, 아름다움에 관한 어떤 조형적 이상
>내지 '관념'을 목격한 지 어언 이틀만에
>브라운관을 꽉 채운 장미란양의 (여성)육체에서 이번엔
>인간신체의 힘과, 균형과, 아름다움의 어떤 '실질'을 경험하는,
>시각적 아이러니 속에 있는 가운데..
>골치아픈 이노무 스팸게시물들을 헤치고 안부를 물어준 친구와 학생들에게,
>또 말없이 뭔가를 기다리고 계실 손님들에게
>여행기로 답례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개학국면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니 늦더라도 기다려 주시기 바라며
>특별히 먼저 쏘피님께, 미켈란젤로라는 인간과 그 예술에 대해 알고자 할 때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3년전 로마에 갔을 때만 해도 어렴풋했는데 이번에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들에 깊은 감동과 함께
>거기서부터 가닿는 그 인간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다비드상은 개중에 가장 무료한 작품이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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