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ank you, Song
꼴로안 마을을 빠져나와 공항을 지나면서, 과연 호텔에 가야 하나 페리 터미널에 가야 하나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시나브로 시내에 도착. 강풍에 뼈가 분질러져 죽어도 새우 잡다가 죽지 않을 거란 생각에 일단 안심.
“밥은 먹었어? 배 고프지 않아?”
묻는 Song. 사실 아까 타르트 하나 먹고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했더니 noodle 괜찮냐고 한다, 자기가 잘 가는 집이 있다면서. 오케이 하고 가는 동안 꼴로안의 에그 타르트 예찬과 찬동을 주거니 받거니. 메뉴는 전적으로 Song에게 맡겼다. 알아서 잘 시키겠지(메뉴판은 흑백의 한문 뿐). 에피타이저인가, 작은 사발이 하나 나온다. 색은 간장인데 맛은 마치 차처럼 은은한 향과 온기를 품고 있다. 안에 떠 있는 삶은 계란 하나, 그걸 수저로 대충 으깨서 그 차와 함께 떠먹는다. 따뜻하다, 꼴로안 마을 사람들의 정감처럼. Song의 음식이 먼저 나왔다. 국물이 없는 면, 옆엔 뭔가 양념도 없이 허연게 있다. 으잉, 닭발? 자긴 이게 제일 맛있단다. 다행히(?) 나는 새우가 들어간 교자라면, 관광객에 대한 배려인듯싶다(사실 같은 메뉴를 시켜줬어도 맛있게 먹었을 게다, 그것이 그 문화에 대한 배려이므로). 닭발도 새우교자도 이름 모를 그 차도 다 비웠다. 너무 고마워서, 계산을 하려 지갑을 꺼냈다. 우직하게 막는 Song. 여긴 마카오야, 난 마카오 사람이고. 그러니 내가 내야지. 얼마 비싸지도 않다우.
Song, 나 울고 있나요.
< 저것이 닭발 누들, 맛있게도 드신다. >
Standby란 말에, 어쨌든 기다리면 돌아갈 수는 있겠다싶어 터미널로 가는 방향으로 굳었다. 아까 운전하며 보던 지도를 꺼내더니 여기 여기가 좋다는 얘길 한다. 네, 저도 어제 가봤어요. 아, 그래? 또 어디 가보고 싶은 데 있어? 어차피 배 기다리려면 한참 걸릴 테니까. 이런 극진한 대접을, 난 과연 마카오에 파견된 조선통신사란 말인가. 결국 걸어서 가기 힘든 윗동네 성당까지,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줬다. 태풍으로 문을 연 곳은 없었지만. Song, 나 사진 한 장만 찍어줄래요? 혼자 여행 다니니까 내 사진이 없네요. 지금 와서 그 사진을 보니, 나 웃고 있다. 지옥 밑바닥 한번 찍고 올라와서 혈당수치가 적혈구를 넘을 때 까지 꿀 빨아먹는 얼굴. 여섯시 즈음, 선착장 앞에서 악수를 나눴다. Thank you, Song. I really do appreciate your kindness and, Coloane Village. 알아들을 수 있을 진 모르겠으나.
< Song이 산꼭대기 교회 앞에서 찍어준 사진. 무려 내 얼굴이. >
- 선착장의 레퀴엠
터미널 안은 말 그대로 진상, 성차별, 연령차별, 인종차별 없이 we are the world가 되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나중에 들었지만, 홍콩 공항의 패닉상태에 비하면 이쪽은 온화한 수준이었단다. 2층 에스컬레이터 옆에 남자 둘이 길게 누워 앉아 맥주를 마신다. 옆에 자리를 깔았다, 진상 대열에 합류. 오사카와 도쿄에서 왔단다. 저 맞은편에 북경에서 온 사람도 있으니 BeSeTo 라인 형성인가. 저질 초급 회화로 몇 마디 나누고 있는데 옆에 또 남자 둘. 이번엔 부산 친구들이다. 낮 12시부터 와 계속 대기 중이란다. 이게 Standby냐 Stay long이지. 에라 모르겠다, 흰 바지 입은 그대로 편히 누웠다. 다섯 남자가 길게 뻗어있다. 한참 후, 덜그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 저쪽을 바라보니 삼각대에 카메라 설치... 사진 찍는 카메라가 아니고 방송국 ENG카메라다. 이런 식으로 현지 방송 타는 건가, 옆의 친구들 막 웃더니 머리손질. 나도 상체를 일으키고 두 다리를 길게 뻗은 이른바 ‘GQ 헐리웃 단체화보 휴 그랜트 포즈(얼굴 말고)’를 취했다. 아무리 재앙이 와도, 방송이잖아. 신경은 써야지.
< 이것들 없었으면 난 미쳤을 거다. 배를 기다리며 본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 >
장시간 죽치고 있을 땐,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중국 인구 수 만큼의 양을 센다거나 단편소설을 쓴다거나. 시간이 가길 바라며 시계를 보는 건 미친 짓이다. 손목에, 핸드폰, Mp3 플레이어, 바로 옆 벽면. 이건 죄다 시계뿐이다. 바로 앞엔 운항편 상황판(배편은 역시 모두 canceled 아니면 delayed). 자고 일어나길 몇 번 반복, 12시쯤 되니 직원들이 나와 물, 쿠키, RKf고 잘 비닐봉투 따위를 주고 간다. 우리 불쌍한 사람들 맞구나싶다. 시련 앞에서, 터미널 안의 세계인들은 그렇게 하나 되어 그들의 육두문자를 그들만의 언어로 외쳤겠지.
나도 참, 그 타지에서(그것도 땅바닥에서) 잘도 잔다. 뭔가들 움직이는 소리에 깨니 보이는 departure 사인. 시간은 새벽 네 시. 겨우 뜬 배 하나는 숙소에서 떨어진 곳이 목적지. 지금 가도 문제긴 하다, MTR 첫차도 없을 테고. 일단 탔다, 어쨌든 홍콩은 가니까. MTR역에서도 첫차를 Standby 하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침 아솝시. 아줌마, 나 죽다 살아왔어요. 배고파서 일단 아침 먹고 뻗었다. 결국 그 날은 오후만 있던 토요일.
- 바다가 주는 심적 안정 기능
< 이런 풍경과 바람을 두고 어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지칠 대로 지친 일본여행 중, 나를 위안시켜준 건 요코하마의 바닷바람. 핸드폰 잠수와 아이팟 도난 등 각종 물질적 피해를 입었던 작년의 전국여행에서 날 웃게 해준 건 통영의 바다. ‘바다’라는 공간이 주는 센티멘탈리즘을 크게 믿지 않지만 힘은 있는 듯하다. 제 아무리 더운 홍콩도 바다 쪽은 시원, 산책하기엔 딱이다. 안 어울리는 선글래스 하나 끼고 편한 옷으로 걷고 걸었다. 마카오 공포의 시간도 벗어나고, 이곳 생활도 적응 될 즈음이다. 적응한다는
건 슬슬 떠날 때가 되었다는 뜻. 그것이 이방인. 방랑자의 등에 지워진 업보 같은 것이다. 다이어리를 펴 그간 못 가본 곳을 정리한다. 사갈 건 없나, 사다줄 건 없나. 찰리 브라운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본인을 ‘키덜트’라는 범주에 넣고 싶진 않지만 생각이나 하는 짓은 아직도 애. 피너츠의 캐릭터들을 환장하게 좋아한다. 한국에서 읽다 가져온 책을 다 읽었다. 주위엔 가족단위 관광객들도 있고 파스타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홍콩 연인들도 팬시용품 앞에서 알짱거리는 소년도 있다. 영업시간을 물으니 새벽 한 시에 닫는단다. 이런 캐릭터의 다방에 심야영업은 어울리지 않지만, 커피도 괜찮다(난 크레마 없는 커피는 신뢰할 수 없다). 한시까지 죽치고 있을까 하다가, 책도 다 읽고 해서 나왔다. 치구들 줄 찰리 브라운 머그를 사 가지고. 한밤중이지만 밖은 아직도 뜨겁고 습한 공기다. 이 공기와 공간과의 작별을 고할 시간이 오고 있다.
< 독서 싫어하는 내가 여기서 책을 읽다니, 결국 다읽고 나왔다. >
< 4부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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