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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Soph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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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re] 가보신다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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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피치 못하게 가셔야 하는 상황이면
그림 딱 두점, 딱 두점 보신다고 생각하고 가시면 어떨까 싶어요.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왕녀 초상,
그리고 렘브란트가 아들 티투스를 아주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린 그림. 이렇게 두 점.
지난주에 막 끝난 여름계절학기 미술사 수업 중간평가 보고서로
이 전시 감상문을 받았거든요.
마침 제게 이 비엔나박물관전 2000원 할인권이 이십몇장 들어왔길래
좍 나눠주고 보고와라, 했어요.
미술사에 공부가 될만한 전시라면 오르세미술관전쪽이 좀 더 도움이 되려나 싶지만
그거나 이거나 피장파장, 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조금이라도 할인이 되는 쪽으로...
고백하자면 (저 불량선생 맞아요) 저는 감상문 읽어보고, 학생들이 참고증빙자료로 제출한
전단지(이번에 전시되는 컬렉션의 목록이 다 나와있는) 보고나서
아직 안 가보았어요... 덕수궁 근처에 닿을 일이 있으면 할인권 들고 다니다가
들어가볼일이 있으려나...글쎄 그것도 확률이 낮습니다.
한데, 만일 (이천원 할인 받고도 만원을 더 내야하는) 전시장에 자발적으로 들어간다면
그 이유는 위에 언급한 딱 두개의 그림, 이 그림을 보러 가려는 것이예요.
그리고 제 의견으로는, 이번 전시는 딱 이 두 그림이 아니라면... 열릴 이유가 없었다고까지 생각.
전단지를 보면 제일 앞면에 마르가리타, 그리고 뒷면표지에 티투스, 이렇게 되어있어요.
이건 이 전시의 간판이 이 두 그림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해요.
비엔나 왕실(합스부르크 왕가라고 했는데 저는 이 왕가의 이름을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처음 접한기억이. 역시 대단한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소장품이라는
나머지 그림들은... 개개인의 취향이 있겠으나
미술사적으로 잘 단련되어온 우리들에게 성에 차지 않는 볼거리일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잘 골라내어지고 정련된 그림들을 미술사서적과 웹상으로 차고 넘치도록 보아왔어요.
20세기 이전까지의 서양미술에 대한 안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전시팜플렛에 소개된 그림들을 보면서 심지어 화가 나기까지 했어요.
이나라 사람들을 뭘로 보고 아직도 서양화(그러니까 진짜 서양인들이 그린),
미술사책에 이름 좀 나왔다는 화가들의, 기준작에 못미치는 그림들을 가지고
(대표작이 아니라도 걸작들이 있긴 있는데, 보면 우리나라에까지 당도되어 전시되는 그림들은
대표작도, 숨겨진 걸작도 아닌 그저 이름에 힘입어 들어오는 그림들이 대부분 아닙니까)
낚싯밥을 던지나 던지길...
그리고 거금을 들여 이런 전시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한 미술사 계절학기선생을
애들이 속으로 얼마나 욕했을 것인가...
아무튼 제 의견으로 거칠게 말씀드리자면 (동의 안하시는 전문가들도 계실런지 모르나)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왕녀 초상화, 렘브란트의 티투스
이 두개가 광이고 나머지는 다 껍데기임을 참고 하시고
(영양가 없고, 시대정신도 찾아볼 수 없는, 타성에 젖은 신화와 종교화들,시들시들한 장르화들
-왕실에서 수집했다면 따끈따끈한-당대에 혁신적이었고, 후대에 인정받곤하는-그림보다는
안전하게 인증되고, 왕족과 귀족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풍기가 안전하다는 그림들로 골랐을테고
그런 그림들은 대개 김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건, 당대에 김이 빠진 건 후대에 봐도 김이 빠진다는... 이렇게 쓰면서 제 간담이 다 서늘해져 오네요 에휴)
또 하나 재미난 팁을 드려보자면 (이건 순전히 어디서 듣고 저혼자 소설쓰는건데)
세계 유수의 컬렉션들에는 어느정도 위작들이 섞여있다고 하니
(이름이 알려져 돈이 될만한 화가들의 그림이 아직도 발견되곤 하는 것들 중
일부상당수가 화랑과 솜씨좋다는 무명화가의 합작이라는 설이 있어요.
물론 대외비지요. 대놓고 이런 걸 밝히려들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암살당하는 수도 있데요)
여기에선 어떤 것들일까? 하는 탐구심으로 그림을 보시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지도요.
제가 마르가리타와 티투스를 그래도 기중에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그림이 단지 거장의 그림이어서 만이 아니라
두 그림 다, 화가가 생전에 무척 애정을 갖고 있었던, 애착했던 인물을 그린것이기 때문입니다.
벨라스케스의 궁정화가 시절에 그린 그림들을 주루룩 살펴 볼 기회가 된다면 누구나
그 궁정화가가 궁중에서 누구에게 가장 애정이 있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눈치채게 되지요.
화가는 그림에서 대상을 그릴때 속내를 드러내버리니까...
그래서인지 암튼, 그 긴얼굴상이 특징인 왕가집안 사람들 중 유난히 반짝거리며 빛이나는
마르가리타 왕녀의 그림에 매료되어서 모리스 라벨이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했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들은 후론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만 보면 자동적으로 BGM이 흘러서...
(그래서 수업시간에 들려주기도 해요 :-) )
티투스는, 렘브란트보다 잘생기고 마음씨도 고왔다는,
그러나 젊어서 렘브란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이고요.
(이 사실만으로도 그림에는 슬픔의 아우라가 깃들어버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령 맘에 드는 그림이 하나도 없는 전시라도
실컷 씹을 수 있는 재미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림판에 있는 저나 제 동료들은 많고 많은 선후배동료들의 전시를
단지 좋아서만 다니겠습니까... 기중에는 보고 또보고 싶은 전시도 있고 아닌것도 있지만
이건 아니다, 나는 이게 왜 싫지, 하면서 실컷 씹고 나오는 전시라도
우리는 보러 갑니다. 씹을 이유를 찾기 위해서도...
신기한 건 실컷 욕했던 그림이 훗날 이상한 광채를 띠고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너무나도 좋아했던 그림이 어느순간 넝마처럼 보이는 일도 있다는 것이예요.
암튼 모쪼록 재미난 나들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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