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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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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창백한 광인, 정명훈 (2006.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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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광인, 정명훈 (2006.3.22 쓴 글)
- 2006. 3.19(일) 저녁 6시 예술의 전당/ 정명훈 지휘, 런던심포니
1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피아니스트 윤디 리)
2부: 말러 교향곡 5번
작년에 옆자리 앉으셨던 일화 선생님은
오래 전 유럽 배낭여행 갔을 적에
오스트리아 빈 도심에서 대형 영상물로 본
정명훈 지휘의 베르디 레퀴엠 연주를 잊을 수 없다고
여러 번 말했다. 실황 공연도 아닌 영상물이었지만
한여름 객수를 자극한 그때 그 빈이.. 뮌헨과 더불어
자신에게 강렬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고도 말했다.
평소 정명훈씨 지휘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해 왔던 나는
그가 지휘봉을 잡은 모습을 눈 앞에서 보게 될
이번 한국공연이 몹시 기대되었다.
그리고.. 사흘 전, 드디어 공연에 갔던 나는
정명훈씨한테 완전히 반해버렸다.
무대 왼쪽 구역 비교적 앞이었던 내 자리는
지휘자의 왼쪽 프로필을 꽤 가까운 거리에서
주시할 수 있는 각도였는데.. 연주 내내 사로잡혀 있었다.
까다로워 보이는 눈매에 피로하고 창백한 인상이시면서
제때제때 확실하게 미쳐주는 집중성과 트랜스의 창조..
묵직하면서 동시에 날렵한, 박력과 엄밀함을
탄력적으로 교직해 내는 지휘 동작에.. 사정없이 매혹당했다.
스타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는 지휘자 같았다.
이날 정명훈씨와 런던심포니가 유감없는 실력을 발휘한 것은
2부 순서, 말러 교향곡 5번이었다.
일단 이런 공연은 음반으로 말러의 교향곡을
중단없이 단번에 들어내기 어려운 나같은 사람에게 좋은 기회이다.
객석에 앉아 나는.. 말러의 음악이 굉장히 그루브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잡다한 요소의 집합이어서 일견 산만한 악상이
흥겨운 어깨춤을 유발하는 그루브함을 엔진으로 추진되고 있었는데
그루브는 그루브이되, 대편성 오케스트라만이 창조해 낼 수 있는
거대하게 출렁거리는 그루브함이랄지 꿈틀거리는 용의 댄스랄지..
말러 음악이 가진 박력이 바로 이런 점에서도 오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말러 교향곡 5번이니 물론 4악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예술적 뮤직비디오 [베니스의 죽음]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던 저 아다지에토 선율.
오, 이 무자비한 레파토리..
1부 윤디 리와의 협연으로 진행되었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부터 해서.. 어쩌면 이리
노골적으로 감상이 뚝뚝 흐르는 레파토리였던지.
이토록 심란한 3월의 한가운데, 노도와 같은 감상주의의 공격 앞에 나는,
1부에 한 번, 2부에 한 번, 도합 두 번을 울어줘야만 했던 것이다.
눈물이 글썽거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공연이었다.
코리아의 아들 정명훈과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고국 청중들 간의
유대감 탓인지 자못 영적으로 다가오는 연주이기도 했는데..
큰소리칠 형편은 못 되지만 나는 이날 연주가
말러 교향곡 5번 연주사에서 전세계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믿고 싶다.
막간에 짜증스러울 정도로 기침을 해대던 사람들조차!
(개인적으로 이 인간들을 추방하고 싶다. 감기에 걸려
기침을 참을 수 없다면 음악회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
꿈꾸는 바다의 수면에서 점차 아래로 아래로..
해저의 심연으로 이끌리어 마침내 행복한 익사,
완벽한 수장이 이루어지는 4악장의..
그토록 긴 여운이 마감되고도 한동안 이어지던 여백에서..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청중 모두가! 일제히 숨죽이고 있었다.
정적. 몰살.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앙콜곡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온다는
<티볼트의 죽음>이라는 곡이었다.
클래식의 폭발은 록메탈의 라이브 효과와 다를 바 없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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