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음악
- 음악 취향의 압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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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토마스 만의 <벨중의 혈통>

<트리스탄>과 마찬가지로
토마스 만이 바그너에 뜨겁게 심취해 있던
젊은 날에 쓴 초기 단편이다
이번엔 바그너의 발퀴레를 그대로 모셔온다
부유한 유대인 상인 아렌홀트의 자녀인
주인공 쌍둥이 남매는 이름부터가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둘쨋날 공연작
발퀴레의 중심 캐릭터인 쌍둥이 남매 이름과 같다
그들은 늘 함께 다니며 서로 붙어 있다
지글린데의 결혼 상대자인 공무원 베케라트가 방문한 날
지그문트는 그날 밤 지글린데와 발퀴레 공연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는다
이어서 전체 40여 쪽 되는 이 소설의 절반가량이
공연 관람 장면으로 이루어지는데
토마스 만의 문장으로 쓰인 발퀴레 시놉시스, 혹은
미묘한 패러디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지그문트 지글린데는
공연 바깥에 존재하는 주인공 지그문트 지글린데와 섞여
독서 중 감미로운 혼란 및 동일시가 발생한다
이 부분의 서사적 기능은 이어지는 소설 마무리 단계에서
암시되는 남매 간 섹스의 전희라고 할 수 있다
1905년에 쓴 작품이지만 토마스 만의 부인 카챠와
그녀의 쌍둥이 남자 형제 간의 관계로 읽힐 소지가 있어
발표가 취소되고 1921년에 발간되었다고 하며
근친 소재 및 작가의 유대인관과 관련,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제목의 벨중은 북유럽 신화인 벨중 신화에 나오는 일족으로
오딘 신의 혈통, 즉 지그문트와 지글린데를 말하며
바그너는 이 복잡한 신화 내용을 간략화하여
발퀴레에 이용했다 니벨룽의 반지 전체 내용에서 발퀴레는
지그프리트 탄생설화에 해당한다
국내 번역이 희귀해 한참 찾아다니다가
아마존 영문판 주문까지 갈 뻔했으나 다행히
열린책들 토마스 만 중단편집에 수록되어 있음을 알았다



지그문트와 지글린데가 중심이 되는 발퀴레 1막의
몇몇 부분에 대한 토마스 만의 소설 문장을 옮기며(큰따옴표)
해당 음악을 대응시켜 보았다


-발퀴레 1막 전주곡 부분
“극장 직원이 벨벳 안락의자를 이들 밑에 밀어 주는 순간 홀은 어둠 속에 휩싸였다. 그리고 저 아래에서 거친 소리가 요동치며 전주곡이 시작되었다.
폭풍, 폭풍우였다…… 장애물, 약간 기분을 언짢게 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도 방해받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공중을 떠돌며 가볍게 이곳에 도달하는 소리에 지크문트와 지클린데는 즉각 빠져들었다. 폭풍, 뇌우의 격정, 숲 속에서 사납게 휘몰아치는 바람이었다. 신의 준엄한 명령이 우르릉거리고 되풀이되었으며,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에 고분고분 따르며 천둥소리가 꽝 하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폭풍에 휘날리듯 막이 홱 올라갔다. 이교도의 홀이었고, 어두운 가운데 화덕에서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가운데는 우뚝 솟아 있는 물푸레나무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


휘몰아치며 날뛰는 자연의 힘
추격당하는 자의 불안과 공포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의
무섭고 폭발적인 관현악으로 발퀴레는 시작한다
세상을 완벽히 차단하고 즉각 무대로 초대하는
이 곡의 박력에 사로잡혀 나 역시 늘 여러 연주를 순례하게 되는데
바이로이트 실황이어야 성에 찬다는..


카일베르트 바이로이트 1955


뵘 바이로이트 1967


바렌보임 바이로이트 1991



-발퀴레 1막 클라이막스와 피날레 부분
“그가 고통을 당한 것처럼 그녀는 치욕을 당하며 살았고, 그가 추방당한 것처럼 그녀는 능욕을 당하며 살았다. 그리고 이제 복수-복수는 이들 남매간의 사랑이 될 것이다!
쌩쌩 소리를 내며 돌풍이 휘몰아치자, 커다란 나무문이 홱 열렸고, 그러자 하얀 전기 불빛이 넓은 홀에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거기에 서서 봄과 봄의 누이의 노래,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곰 가죽 위에 몸을 웅크리고 불빛을 받으며 서로를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 주었다. 허옇게 드러난 팔을 서로의 몸에 대고 있었고, 손으로 서로의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입술은 거의 닿을 듯이 가까이 붙어 있었다. 눈과 관자놀이, 이마와 목소리, 이들은 이런 것을 비교해 보면서 서로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더욱 분명히 인식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생각해 냈고, 그녀는 그의 이름을 외쳤다. 지크문트! 지크문트! 그는 해방된 검을 머리 위로 마구 휘둘렀고 그녀는 행복에 겨워 자신이 누구란 것을 그에게 노래 불렀다…… 그의 쌍둥이 누이, 지크린데라고!…… 그는 행복감에 취해 그녀, 자신의 신부를 향해 두 팔을 뻗었고, 그녀는 그의 팔에 안겼다. 막이 스르르 닫혔고, 맹렬한 열정이 미친 듯이 끓어오르고 우레같이 울리며 거품을 내뿜는 가운데 음악이 소용돌이쳤다. 그렇게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다가 격렬하게 일격을 가하며 멈추어 버리는 것이었다!“


무덤 속 바그너도 토마스 만도 벌떡 일어나 환호할,
아름다운 커플, 완벽한 케미의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페터 호프만과 지닌 알트마이어
불레즈/셰로의 80년대 바이로이트 공연





겨울폭풍은 사라지고-그대는 나의 봄



노퉁 장면


-공연 후 귀가 부분
“두 오누이는 주위의 이런 요란한 바깥세상으로부터 부드럽게 보호받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무대 맞은편의 벨벳 안락의자에 앉아, 아직 아까의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듯, 평범한 일상생활로부터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아무 말이 없었다. 야만적이고 관능적이며 열광적인 세계로부터 이들을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세계는 마법의 도구로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이들을 자기 쪽으로, 자기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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