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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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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프랑스 여행기] 다른 곳에 가서 살리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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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가서 살리라 2 - 1999. 6. 19
프랑스에 여행간다고 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온다. 어머 좋겠
다, 하는 단순한 부러움, 프랑스에 대해 아직도 환상을 갖고 있
군, 하는 비아냥, 왜 하필 프랑스야, 유럽에 더 좋은 데도 많은
데, 난 어디가 좋더라, 하고 길어지는 참견형 등등.
이에 대한 나의 입장? 다 귀찮다. 프랑스에 간다고 하여 프랑
스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이탈리아나 영국이 아니라고 해서 이
탈리아나 영국에 관심 없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여행을 간다고
선언했다 해서 꼭 간다는 법도 없다. 짜증스러운 건 타인에 대
한 그토록 용감무쌍한 단정들이다.
나이 들면 사람이 더욱 졸렬해지는지 나에 대한 단정과 곡해
들에 일일이 반박하고 즉석에서 부연해야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습성이 몸에 배어 간다. 묵묵히 접수하고 넘어가면 더 피곤해지
니까. 통신은 좀 낫다. 실생활에선 청자와 독자를 내 마음대로
선택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신에선 가상의 독자를 설정할 수 있
고 적어도 그들은 내 말에 귀기울여주며 나를 따뜻하게 읽어준
다.
유럽에 가긴 가는데 한 나라만 가고 싶다, 항공료 아깝다고
열흘 안팎의 짧은 기간에 주마간산격으로 여러 나라 도는 여행
만은 피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느 곳으로? 그래도 좀 아는 데로
가야 하지 않을까. 일례로 그랜드캐년같은 자연의 조화나 앙코
르왓같은 거대 구조물이야 준비 없이 가서 부닥쳐, 존재랄 것도
없는 이 미물, 장엄하게 한 번 내동댕이쳐지면 그만이지만 도시
여행의 경우엔 어느 정도 예습이 필요하다. 도시는 문명의 소산
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그나마 유럽 각국에서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되
는 나라다. 프랑스제 화장품 하나쯤은 우리집에도 있고 프랑스
산 레텔을 단 포도주 한 잔쯤은 마셔보았으며 프랑스 화가의 그
림 몇 점쯤은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으며 학교 때 프랑스 혁
명에 대해 열심히 배운 바 있으며 에디뜨 삐아프나 미레유 마띠
유, 프랑수아즈 아르디 같은 여자가 부르는 프랑스 노래도 한때
즐겼으며 나른한 프랑스 소설 몇 권쯤은 익숙할 뿐더러 뭣보다
도 프랑스 영화는 꽤 보았다. 요컨대 유럽 여러 나라 가운데 프
랑스만큼 내게 준비된 나라는 없는 것이다.
진심인가, 과연 그렇게 소극적인 이유밖에 없는가, 하고 그대
는 기습적으로 물을 수 있다. 날카로운 질문이다. 진심이지만,
이상의 얘기가 전부는 아니다. 정열 없는 여행이란 있을 수 없
다. 프랑스의 무엇이 나를 부르는가.
프랑스, 하면 우선 경박함, 이란 낱말이 떠오른다. 프랑스는
러시아만한 깊이도 없고 영국만큼 병적이지도 않다. 이곳엔 체
코나 폴란드같은 우수도 없으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감도는
신비도 없다. 정열로는 스페인을 못 따라가며 풍경으로 스위스
를 능가하지 못한다. 독일만큼 실속있어 보이지도 않으며 이탈
리아만큼 예술적이지 않다. 프랑스는 그저 경박하다. 그런데 이
상하게도 그 경박함은 문화적 탄력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프랑스는 위에 나열한 인접 국가들의 특성을 조금씩 조금씩
흡수하고 있는 나라로 보인다. 각국의 지성과 예술이 이곳에 찾
아와 머물렀으며 프랑스는 이들을 지원하였다. 최고의 요리사들
이 이곳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면 프랑스는 근사하게 상
을 차려주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가 아니
라 예술을 지원한 나라, 예술을 사랑한 나라라고 해야 하지 않
을까. 따라서 굳이 프랑스에 무엇의 나라, 라는 식으로 간판을
달고자 한다면 '사교의 나라'쯤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문화적 탄력이다.
그러나 이상은 한정된 지식에 의거한 두루뭉실한 인상에 불과
하다. 정작 내게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은 기호(상
징)들이다. 나는 프랑스에 대한 몇 가지 강렬한 기호에 사로잡
혀 있다. 그곳은 대서양과 지중해를 가진 나라이며 그곳은 유혹
적인 파리를 심장으로 가진 나라이며 그곳은 까뮈와 모디아노의
나라이고, 시네마의 나라이고, 인상주의의 나라이며 세잔의 나라
이다. 또한 그곳은 궁극적으로 아프리카로 향해 있는 나라다.
이들 기호를 안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뭐랄까, 사랑에 빠진
건 최근이다. 기호가 실체와 만나는 사태. 그 언저리에 내가 있
을 것이다. 다가올 사태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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