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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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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오후의 시내 여행과 그 커피맛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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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전경이예요.
크리스마스 무렵 첫 답사를 왔을 때
무슨 폐가나 물류창고인 줄 알고 경악했습니다.
학교임을 알리는 표지라곤 도로변에 달랑 이거 하나.
개학을 하고 실내에 들어가 봤더니
그제서야 활기가 돌고 학교 같았습니다.
이 지역 모든 공립초등학교의 외관이 다 저렇게 황무지같진 않고
이 학교가 좀 오래되었나 봅니다. 올해 개교한
부근의 어떤 초등학교는 건물과 시설이 새로워서
공항에 온 기분이더라는 말도 들립니다.
아이 키우는 한국인 가정이 꽤 많아..
어디가 어디보다, 뭐가 뭐보다 더 좋다는 둥.. 이런 말들이
달갑지 않지만 들려오네요..
저는 그저 이 나라 땅 넓다는 데 감동할 따름.
학교뿐 아니라 관공서 극장 상점 등등 이렇듯
죄다 가로로 긴 수평의 단층짜리 건물이어서
시야가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됩니다.
이곳 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순으로 일찍 등교를 해요.
승민이가 스쿨버스 타는 시각은 아침 7시17분인데
이 시간이면 서울에서 제가 출근하던 시간이죠.
그런데 이곳에서 더 긴장하게 되네요.
전날 알람을 맞춰놓고도 수면 중 여러 번 깨어 시계를 보는 편이예요..
익숙했던 언어적, 사회적 네트웍에서 벗어나고 나니
우주 한가운데 무중력 공간에 떨어져 버린 느낌이랄까..
시간 개념 자체가 흔들려서 매사에 확신하지 못합니다.
아침에 시간 맞춰 못 일어날까 봐 걱정.
부랴부랴 준비시켜 데리고 나가면 막 동이 터오는 시간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스쿨버스입니다.
하교길 스쿨버스가 아파트에 도착하는 시간이 2시50분.
오전 내내 집안에 처박혀 있다가 이 시간에 또 한번 뛰어나갑니다.
이런 리듬으로 하루하루를 똑같이 반복한 지난 주
정신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간 내가 얼마나
밀도높은 생활리듬과 강한 자극 속에 지내왔던가 싶고..
나도 모르게 이거 매디슨 카운티의 여자가 돼 가는 기분이어서
안 되겠다 싶어 목요일경엔.. 스쿨버스에서 내린 아이를 데리고
바로 아파트에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채플힐 다운타운에 나가보았습니다.
20여분 타고 나가는 길이지만 사전에 면밀히
버스노선과 시간을 숙지하고 떠난 작은 여행이었습니다.
일일이 누구한테 길 묻기 싫고
마치 이곳 주민처럼 자연스럽게 행세하고픈 마음에서 예습 철저.
5시면 해가 지는 동네라 그 전에 돌아온다는 목표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대학가인 채플힐 시내의 모습입니다.
신호등이 빨랫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요.
아는 게 스타벅스라.. 들어가서 저는 커피를,
승민이는 밀크셰이크를 주문하여 한 30여분 창가쪽 자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차들, 건너편 상점들 바라보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마침 옆에 누가 보다가 놓고 간
뉴욕타임즈 문화예술면마저 신선했습니다.
그 잘난 척하는 것 같은 고급스러운 메뉴들이며 빽빽한 리뷰들..
보름간 집에서 받아보던, 혹은 무인판매기에 동전 넣고 꺼내들던
지역신문-헤럴드선, 채플힐뉴스, 뉴스앤옵저버 등보다
확실히 차별화된 뭔가가 있어보이고 매력이 있는 거예요.
밥맛없음과 반가움이라는 모순된 감정이 교차하면서..
그래, 난 이런 신문을 봐야 하는 거 아냐? 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 어느 문장도 완전하게 읽어내기 어려운 주제에.
하여튼 이즈음 낯선 이국 땅에서의
각종 소비 행위랄지 기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즉 새삼스럽게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잘 몰랐던 나의 계급적 실체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는 점에서 종종 당혹스럽습니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든 문화적 측면에서든
저와 제 가족의 계급을 어디에 귀속시켜야 할지
새삼스럽게 의식을 하고 그에 따른 이런저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거대한 자기폭로적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허영심과 그 허영심을 스스로 조롱하는 양심 사이에서
편의적인 줄타기를 하며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고
적어도 여기선 그런 위선을 떨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오, 무슨 말인지 저도 잘..
시간이 지나봐야 지금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겠죠.
여기 스타벅스에서도 저는..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커피를 주문해야 할지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 분위기와 그 향이 좋아서, 또는 그 이름 때문에
이곳을 종종 찾았던 것에 비해.. 이곳의 커피가
참으로 맛있었던 기억은 별로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무엇인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걸까요..
이거저거 시켜보았지만 늘 따로 제가 간을 해야 했고
그리하여도 너무 쓰거나 너무 달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하거나
너무 식어있거나 너무 양이 많거나 이랬습니다..
네, 여기 오면 저는 커피 대신 분위기를 마셔요..
쉽게 말해 커피값을 지불하고 분위기를 사는 것이죠.
애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어서 저녁 해결하고 가자 하고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스시집에 갔습니다.
후줄그레한 회전초밥집이었어요.
길동역 회전초밥집의 화려한 메뉴와 신선한 맛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버터바른 빵과 베이컨, 소시지, 시리얼 등에 벌써 질리기 시작한 터라
이게 어디냐 싶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우동은 참..
길동역 회전초밥집의 4천5백원짜리 해물해장국 생각이 간절했답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늘 혼란스러운 와중에
실은 제 입맛에 딱 맞는 커피 한 잔을
바로 엊그제, 우연히 맛보았더랬습니다.
이런 경험은, 말 그대로 '우연히' 오는가 봅니다.
주말이 되어야 가족끼리 차를 타고 좀 먼 곳까지 바람 쐬러 나가게 되는데
아래 사진은 주도인 랄리에 한국식품점 큰 게 있다길래 찾아갔다가
그 상점에서 소개받고 가본, 캐리에 있는 한국 식당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나물을 밑반찬으로 하여
엘에이갈비 한 접시와(숯불이 아닙니다) 김치찌개를 먹었어요.
집에서 밥 한 끼 못 먹인 가족들마냥, 저부터 걸신이 들려 허겁지겁.
아, 미국음식에 적응하는 거 뭐 어렵겠냐고 평소 큰소리쳤던 게 무안합니다.
오기 전에 어머니께서 넣어주신 김치와 젓갈류를 꿀단지처럼 아껴 먹고
틈만나면 한중일 음식 먹을 기회를 노리게 되다니..
하여튼 그렇게 식사를 마친 다음
이 음식점에 자판기 커피까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냐, 하고
중얼거리며 나와서 커피 마실 데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이 상점 라인의 끝에 지저분해 뵈는 커피숍이 하나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날 저는 이 상점가의 색채와 공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 오기 직전이라 잔뜩 가라앉은 잿빛 하늘이기도 하였지만
저 한국 식당 사진에서 보듯 상점들 컬러가 모두 저런
암담한 회색톤으로 통일되어 있는 거예요.
눈치를 보니 인도인들 구역이었습니다.
커피숍, 세탁소, 비디오숍 등등 주로 인도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몰이고
상점 주인, 상점에 오는 손님들 거의 모두가 인도인들이고
곳곳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영화포스터들은 인도 영화 포스터들이었어요.
한국 식당은 인도인 상점 라인에 콕 틀어박혀 있는 모양새였구요..
한 술 더 떠 이 상점가의 도로 건너편은
허름한 주유소 뒤로 언덕 위 철길이었습니다.
뿌우, 하며 화물기차가 수시로 지나가고 있었어요.
조명이 어둡고 그날따라(아니 맨날 그런지도) 손님이 없는 한국 식당에서
숯불이 아닌 갈비와,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문득 고개를 들면
출입문 창밖으로 그렇게 기차가 지나가더군요.
캐리의 이 회색지대, 굉장히 황량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아아, 제가 들어간 커피숍에서 친절한 인도인 아저씨가 타 준 커피,
이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지요.. 설탕 크림 넣을까요, 하고
물어가면서까지 타 준 그 커피, 가히 천국의 맛이었습니다..
촌스럽게 달고 진한 홈메이드타입 커피..
정말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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