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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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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출국전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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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전 이모저모
1, 한 달 넘게 짐을 꾸리다가 깨달았다. 여행지없이 짐만 꾸리는 사람과, 짐도 없이 훌쩍 떠나는 인간, 이렇게 두 종류의 인간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프리츠오르트만의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길‘이 생각난다. 거기엔 평생 트렁크를 짊어지고 사는 나,가 나온다.언제나 플랫폼에 이르지 못하는 한 남자, 트렁크를 채웠다 풀었다를 되풀이하는 주인공은 온갖 변명과 절묘한 사건들의 연발속에서 ’가야할 때‘를 족족 놓치게 된다. 나는 그가 세상의 모든 물건을 다 챙겨서 트렁크에 채워 도주하고도 남을 포화된 어떤 욕망에 빠져 있으되, 결국 기차역에 이르지 못 할 것임을 소설이 거의 끝나면서야 알았다.
주저 앉는 삶에 대한 하나의 아련한 비유였던 이 단편을 읽었던 20대 시절 , 세상의 모든 이름들은
한없이 멀기만 했다. 단편들이 오롯했던 도서관 옆 숲은 포플라와 플라타너스의 청명한 생기가 아니라 그저 텅빈 아득함일 뿐이었고 아득함 속에서의 플라타너스는 누구에게서처럼 시일 수가 없었다. 길 위의 시적 형상화라는 가냘픈 방법론은 과연 존속이 가능한지조차 의문스러운 삶의 방식이었다. 그 의문조차도 남의 말로나 엿보던 시절, 내겐 그게 20대였다.
그 시간들은 과연 흘러갔나? 나는 기차에 오른 걸까? 나이를 먹는다는 게 곰스크로 가는 티켓을
자동 수령한다는 의미라면 얼마나 좋을까?
2. 짐을 꾸리는 와중에 한 가지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했다. Y구에서 수십여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점을 이제야 발견했다. 제도권 인생사를 다 Y구 Y동에서 끝내고 뭐뭐를 하고도.. 이후의 삶이 무섭도록 여기서만 계속되고 있다니... 가끔 ‘오래도록 꾸려놓은 트렁크들’을 불현듯 깨닫는 것은 집을 떠날 때, 뿐인 것 같다. 이 Y구야 말로 내 개인적인 골방 트렁크인지 모르겠다. 이런 구겨박힌 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꾸러미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결국 마음에서나 풀어놓은 사람들이 몇 있었으니, 그 트렁크들의 이름은.. 마콘도, 더블린, 쾰른, 원미동.. 등등이었으며 그 트렁크 주인들은 주로 분열증환자거나 욕망에 귀신들린 글쟁이들이었다. 그나마 세상에선 그 지겨운 트렁크들을 일컬어 ‘승화된 욕망’이라고 불러주며 예술적 기예의 형식으로 수용하기도 하는것 같다. 아주 가끔.
3.오랜 친구 M을 만났다. 구태의연한(그래서 더 무서운) 일상과 우리의 연봉에 대해서, 여행과 독재와 어떤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며 이 모든 테두리에 갇힌 우리의 바보스러움에 대해서도 잡담 했다. 통역을 하는 M은 한 정치가의 뒷담을 말했고, 난 M에게 박민규의 ‘아 하세요 펠리컨’을 이야기했다. M은 놀라와하며 내게(사실 근 2년만에 유일하게 읽은 한국소설이다) 반문했다.
M : “넌 네가 살려고 했던 대로 살게 되었니, 혹은 살고 있니?”
K: “...넌 어떠냐.”
M:“ 난 드디어 그렇게 살게된 것 같다.”
K: “ (혹시 연봉 수억 이상 고지에 올랐을까봐 두려워 떨며) 그게 뭔데.”
M: “.. 삼류로 사는거...”
K: “...”
M: “ 언제나 대단한 뭔가를 해내고 싶었는데 내 가능성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래도 지지 않기로 했더니 일류를 지향하지 않고, 일류에 저항하지도 않는 진정한 삼류근처까진 억지로 가더라. 그래서 이제는 정말 소설을 못읽겠어. 삼류를 사랑하는 유일한 작자들이 소설 같아서.. 자기 모습들을 너무 많이 확인할까봐.. ”
K: “.."
M: “즉, 네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건 너의 삼류성이 애초에 없었거나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는 거지. 내가 말한 바에 따르면.”
K; “ 오.?” (그냥 일류스러운 가짜 삼류로 살면 안될까, 라는 소망을 담아)
난 M의 통역이 일류일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어떤 삼류의 의미전달이라는 하나의 차원에서는..
그리고 정치판이라는 희대의 난장을 통역해야 할 M의 처지를 고려해보건대...일류의 기능으로 삼류의 정신을 지탱해야 하는 그 고단함을 생각해보면...
4. “아 하세요 펠리컨‘ 은 박민규의 단편집 ’카스테라‘에 실려있다.내가 본 그의 단편은 가난한 서정의 90년대식 변종, 쫄아든 변종, 거대서사 아닌 졸렬 서사물이다. 공동체적 고민도 안보이며 어떤 종류의 미학과는 완전히 담을 쌓은 듯한 그 황당 엽기 발랄에서 왜 나는 80년대가 떠오르는 걸까? 그것은 내가 읽은 박민규의 소설이 동형의 ’이종변이‘들 누구보다도 가장 정치적인 것 같다,는 느낌과 관련있는 듯 하다. 지속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삼류가 된다는 것, 삼류로 산다는 것, 삼류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온 이 소설들은 정교한 은유 대신 터무니없는 개그의 외피로 시대를 고찰하고 개인을 드러낸다. 만화의 방법론이 일부 들어갔고, 소설 정신이라는 야심도 포기되지 못했다. (작가는 부인한다). 소설 정신이라는 건 ’영원한 것‘(혹은 그것에 대한 희구내지는 믿음)의 설정과 존재감을
내 현실의 차원에서 형상화한다는 것이며 '정치적이다' 는 말은 아마 각자가 각자의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살 수 있느냐, 그 조건에 대한 성찰일 수 있지 않나,고 생각한다. 누구는 일류들을 거느리고 그 조건을 말하는 것 같고,( 이문열?). 누구는 삼류들로써 그 조건을 웃기는 듯 하다.( 박민규?)
---그리고 엘라와 메리와 앨리스 세 개의 태풍이 연이어 들이닥쳤다. 드문 현상이었다. 엘라와 메리는 소멸하거나 일본 쪽으로 턴을 하거나 했는데, 앨리스가 한국을 강타했다. 하이힐의 뒷굽 같은 집중호우가 차차차라도 추듯 스텝을 찍으며 올라왔다. 코 콕 차차차, 콕 콕 차차차. 늦은 밤까지. 사장과 나는 열세 척의 오리배를 연결하고 묶어야 했다. 당기고 있니? 예! 세차 洗車하면 비온다더니 이게 무슨 경우냐? 그러게 말입니다. 당겨!예, 당기고 있습니다. 끄덕끄덕. 노란 주둥이를 끄덕이며 라-47호가 나를 쳐다보았다. 비가 세차게 퍼부었다. 바람과 물과 차차차와, 인간의 저항이 뒤섞인 꿈같은 밤이었다.--- 아, 하세요 펠리컨
정치와 체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식들, 뭐가 있을까? 서사적인 해결을 원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서정적인 결론들로 그치는 것 같다. 가끔 어떤 것들은 서사의 스케일에 서정적 분열증이 합쳐진다.
이럴 경우 서사의 스케일은 거짓말과 허풍이 되고 서정적 분열증은 욕구불만의 표출에 그친다. 힘없지만 오래간다고 믿고 싶은 형상화를 찾는 건 그럴때인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망가진 개인들을 통해 망가지는 체제를 되묻는 형상화, 그 속에서 우리의 모든 개인적인 부서짐들은 이게 원래 우리 몫이 아니었다는 위로를 준다. 그게 참이던 거짓이던...
5.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는 오래전 여행 때 서점에서 읽었던 소설이었다. 탈레반이 들어서기 전의 아프가니스탄이 한 사람의 근육과 피가 되었던 유년을 통해 드러났다.주인공은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사라져 버린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여기서 진정한 주인공은 카불의 골목들과 냄새와 관습이고, 그것들의 파괴됨이다.
카불의 동네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연을 쫓아 언덕을 오르지 않고, 어른들은 서로에 대한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주인공 ‘나’와 주종관계인 하산의 연대기이자 한 도시와 동네의 재현이고 내 기억 속 유년의 일부에 대한 추억같기도 했다. 이 소설의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후텁함, 졸박한 정경들은 작가라는 사람에게 영원했던 기억들이 소설 세계에서 구현될 때 얻어지는 즐거움이다.
이제 이민자가 된 주인공에게 이 유년은 각성의 한 대목으로 자리하며 격렬한 정치적 고발장의 길목이 된다. 사라져버린 세계가 남아 있는 세계보다 덜 불행했다는...
하산은 편지를 보낸 후 아내와 함께 탈레반에게 총살당한다. 소설은 그랬고, 독자에겐 비극적 정화가 추가되었다.
--아미르 도련님, 저는 요즘 꿈을 많이 꿉니다. 핏빛의 풀이 나있는 축구장에 교수형을 당한 시체들이 썩고 있는 꿈처럼, 어떤 것은 악몽입니다. 그런 꿈을 꾸면 숨이 차고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깹니다. 그러나 대개는 좋은 꿈을 꿉니다. 그것에 대해 알라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제 아들이 커서 훌륭한 사람, 자유로운 사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꿈을 꿉니다. 카불 거리에 카울라 꽃이 다시 피고, 루밥 음악이 사모바르 집에서 연주되고, 연이 하늘에서 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언젠가 도련님이 카불로 돌아와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나라로 다시 찾아오는 꿈을 꿉니다. 도련님이 돌아오면 충실한 옛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알라신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 하산.
6. 노마드적 삶을 사는 누군가가 말했다. " 떠나온건 맞는데 어디에서 떠나온건지 모르겠네요'
떠돌다가 그만 자기로부터도 떠돌이가 되는 건 객사병 환자들 아닌가? 소설이던, 빵가게이던
드라마 프로그램이던.. 작은팻말 하나 꽂아놓기위해 몇 군데를 챙겨놓았다.
여기 저기..내 마음속에만..떠나기 전에.
ps1. 너무 즐거웠던 마지막 모임 덕분에 허튼 감상문을 남기고 갑니다요.
언제나 그렇듯 이 자리를 빌어서..
ps2. ‘ 나이먹으면 좀 우아하고.. 될 줄 알았다던 소피님 말씀 생각나네요
왼갖 잡무의 쓰나미에 시달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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