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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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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도둑>을 통해서 본 남플로리다의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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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댑테이션]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각색을 하느라 머리를 쥐어짜던 원작은
수잔 올린이라는 작가가 쓴 <난초도둑>이라는 작품이었죠.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 쌍둥이 형제가 벌이던 각색 과정의 노이로제보다
바로 그 각색의 대상이 된 책내용의 파편적 묘사가 제겐 더 인상적이었는데..
마침 현대문학에서 번역돼 나온 <난초도둑>을 읽게 되었답니다.
읽으면서, 앞니가 숭숭 빠진 난초수집광이자 초절정괴짜 캐릭터인 존 라로슈를 접하니
영화에서 이 사람을 연기한 크리스 쿠퍼가 생각나 자꾸 웃음이 나더군요.
그 역은 정말 제격이었던 것 같아요.
수잔 올린의 <난초도둑>은,
플로리다 지역의 난초수집광들을 취재하는 화자 시점의,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애매한(그것이 또 그리 중요치는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어떤 대상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사려 깊은 고찰인 동시에
한편으로, 플로리다 지역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의 보고이면서..
또 탁월한 여행가이드물이기도 했구요.
수많은 장소명, 도로명, 거기서 자생하는 동식물의 이름들,
그곳의 기후와 토양, 그곳의 탐험사, 개척사를 비롯하여,
지역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식물에 대한 열기,
향토저널을 일상적으로 달구는 난초관련기사,
난초와 난초에 미친 사람들의 행태,
온갖 난초관련 이벤트, 비즈니스, 범죄들.. 이런 것들이
이방인이며 여행자인 필자 시선으로 관찰, 서술되고 있지요.
요컨대 미국땅 안에서 또하나의 이국인 플로리다 지역의 지리상의 발견!
이것이, 제가 읽은 <난초도둑>이었습니다.
플로리다라면 그저, 미국의 돈많은 노인네들 말년을 보내는
따뜻한 남쪽 지방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이 곳이
거대한 생태공원 내지 야생의 식물단지로 다가옵니다.
그 안에서 한참 거닐고 배회하다 빠져나온 기분.
한 지역에 대한 인문지리적 애정이 잘 녹아든, 좋은 여행기를 읽은 것 같습니다.
아래는 플로리다 지역에 대해 필자가 느끼는 매력이랄지,
낯선 땅을 대하는 객수랄지, 하여튼 여행자의 정서가 잘 나타난 대목들이에요.
1. p19-23
나는 내 자신이 플로리다 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가본 그 어느 곳보다 플로리다에는 뭔가 유혹적이고 피할 수 없는 요소가 있었다. 그곳은 인공적으로 갓 만들어진 곳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이나 빅 사이프레스 습지, 또는 플로리다 록사하치 국립야생보호지구와 같은 미개척지를 보게 되면 플로리다야말로 미국의 마지막 변경지역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플로리다의 미개지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인 반면에, 경작지는 매우 잘 다듬어져 있다. 그렇지만 미개지나 경작지나 모두 항상 변화한다. 개발된 지역들은 정글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정글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비옥하고 힘이 세다. 정글은 매일 개간된 플로리다의 땅 조각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기를 쓴다. 그럼에도 황야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매일 에버글레이즈 소택지가 50에이커씩 사라지고, 모래 둔덕에 새 집들이 솟아오르며, 매년 여러 개의 고속도로가 개통된다. 그 어느 것도 견고하거나 영원하지 않다. 모든 것이 항상 변화하고 씻겨 내려간다. 변화와 변이가 서로 융합하고, 축축함과 메마름, 불규칙과 규칙, 자연과 기술이 결합한다. 어떤 강력한 특질은 우리의 마음을 끌기 마련이지만, 플로리다와 같은 혼성은 예외적이고 기이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더 끌어당긴다. - 중략 -
플로리다 주는 정말로 사람들을 자극한다. 사람들을 부추겨 큰 계획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흘러들어오다'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플로리다 주로 온다. 이곳은 새로운 시작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마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것일 것이다. 아니면 열심히 일하고 거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플로리다는 호화스럽고 풍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라면 그들에게 어떤 새로운 생각과 계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로리다는 무엇이라도 시도할 수 있을 그런 장소, 수세기 동안 사업가들의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든 그런 장소다. 플로리다는 얼마든지 새로운 틀을 짜거나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덧붙여지고, 떨어져 나가고, 말라붙고, 파헤쳐지고, 포장되고, 준설되고, 개간되고, 경작되고, 야생에서 떨어져나오고, 야생으로 돌아가고, 침수되고, 구획되고, 불태워지는 곳이다. 이것저것이 플로리다에서 항상 몰래 빠져나가고 또 그 안으로 몰래 들어온다.
나가고 들어오는 흐름이 계속되기 때문에 플로리다의 구성요소는 매일 달라진다. 한 장소에서 발견되리라곤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함께 발견된다. 콘도와 흑표범, 원목과 하이퍼마켓, 원숭이들이 모여 사는 밀림지대와 큰 거리에 죽 늘어선 현대식 상점들, 다차선 고속도로와 식충식물 숲들, 테마공원과 대왕야자수들, 서양무궁화와 그 누구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수십 에이커에 달하는 뜨거운 습지들, 이 모든 것들이 햇볕이 따가운 플로리다의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구워진다. 플로리다의 난초들도 이 양극단에서 예외가 아니다. 숲에는 미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자생 난초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플로리다에는 사람들이 조성한 인공정글이라고 할 수 있는 온실도 수십 군데가 있다. 그 안에는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번식시킨 놀랍고 황홀한 꽃들이 가득하다. 때때로 나는 우주의 어떤 질서를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플로리다에만 오면 부조화와 역설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2. p172-176
나의 숙소가 있는 플로리다의 남동부 웨스트 팜 비치에서, 플로리다의 서쪽 기슭에 웨스트 팜 비치와 대각선으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파카하치 스트랜드로 가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앨리게이터 앨리를 따라 서쪽으로 차를 몰고 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길을 선호한다. 그것은 팜 비치 카운티와 헨리 카운티를 가로질러서 지그재그로 가다가, 오키포비 호수 아래쪽으로 빙 돌아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가로지르고, 사탕수수 농장의 모서리를 따라가다 임모칼리 근처의 세미놀 인디언 보호구역을 통과해, 가토라마와 토착민 마을과 같이 오래전에 사라진 관광지들을 가리키는 유령과 같은 표지판들을 지나가는 길이다. 그 관광지들은 마치 상자절단기로 그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몇 마일마다 직각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좁은 주 도로를 따라가면 나온다. 그 길은 처음에는 좁고 험하지만 나중에는 점차 넓어진다. 접착제로 붙여놓은 난초들을 보기 위해서 그곳에 갔던 날, 나는 해가 떠서 불볕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찍 습지에 도착해야만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작은 길들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아침이었으며, 야자나무들의 잎들이 패션사진을 찍는 모델들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처럼 이리저리로 흔들리고 있었다.
지나치는 거리마다 그 어디에서도 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팜 비치를 벗어나서야 마침내 나는 몇 명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조금 더 가자, 많은 사람들이 꼭대기에 새의 깃털을 매단 기다란 장대와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깃발들을 들고서 일렬로 갓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몰고 그들 옆을 지나가며 창문을 내렸다. 그들의 외치는 구호나 그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 내가 들은 소리라고는 마흔 켤레의 신발이 길옆의 모래를 자박자박 밟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라이언 카운티 사파리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 수마일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사탕수수밭을 따라 달렸다. 사탕수수밭에는 내 키만큼이나 커다란 사탕수수들과 말라버린 그루터기, 그리고 잘려나간 줄기들이 쌓여 있었다. 몇 대의 트럭이 들판에 난 길로 드나들고 있었다. 어쩌나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몇 채의 집들이 나타났는데, 어찌나 작게 보이는지 꼭 장난감들 같았다. 그렇지만 어느 방향에서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탕수수밭은 끝없이 이어졌다. 내 뒤로 수 마일에 걸쳐서 사탕수수밭이 펼쳐져 있었고, 앞으로도 몇 마일은 더 가야 했다. 나는 주유소에서 차를 멈추고 다이어트콜라를 사러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상점에는 인공적으로 달콤하게 만든 음료수는 하나도 없었다. - 중략 -
존 스트레치 공원을 지나면서부터 도로는 데블스 가든과 빈 시티와 시트루스 센터와 할렘과 플랙 홀이라는 마을들을 지나 텔리그래프 스왐프, 크로크스크류 스왐프, 그래시 마쉬와 그래함 마쉬라는 습지대를 끼고 빙 돌아서 뻗어 있었다. 대리석처럼 평탄한 대지가 주름 하나 없이 수평선까지 고르게 펼쳐져 있었다. 내 눈길은 땅의 녹색 테두리를 가로지르고 푸른 하늘을 스치며 지나갔다. 폐기된 타이어, 하늘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 오래된 담장, 녹슨 통에도 시선이 닿았다. 반대편에서 내쪽으로 오는 자동차는 거의 없었으며, 달려오는 동안 내내 차도 사람도 백미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수없이 많은 공터를 지나쳤고 그 공터들 너머로 그보다 더 많은 공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뒤로 텅 빈 도로를 쳐다보았고, 눈을 들어 텅 비어 있는 하늘도 바라보았다. 이 세상이 이토록 크다는 사실로 인해 뼛속 깊이 고독감이 스며들었다. 이 세상은 무한히 크고, 사람들은 늘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너무나 많은 생각들과 사물들과 사람들이 있고, 나가야 할 방향 또한 무수히 갈라져 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뭔가에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이 거대한 세상이 좀더 다루기 쉬운 크기로 깎아 다듬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무한하거나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난초채취꾼이었다면, 이곳에 이토록 슬프게 보이거나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곳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내가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3. p260-261
플로리다는 서부와는 또 다른 종류의 개척지였다. 서부 개척자들은 드넓은 평원과 산맥을 넘어가야 했고, 그곳은 끝없이 넓게 탁 트여 있어서 풍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공허하고 막막한 공간을 건너 서부로 여행하는 것은 인간을 외롭고 보잘것없는, 마치 빈 종이 위에 찍힌 조그만 점 하나 같은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남부 플로리다의 개척자, 모험가들은 마치 강철 솜과 같이 어둡고, 빽빽하고, 온갖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플로리다의 개척자들은 그 어둡고 빽빽하고 온갖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곳 속에 숨어 있는 것들과 부딪쳐야 했다. 그런 장소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그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나는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견디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다음은 책 속에 등장하는, 발음이 즐거워지는 난초의 이름들입니다. 학명이겠지요..
암헤르스티아 노빌리스
안셀리아 아프리카나
파이우스 그란드폴리우스
폴리리자 린데니
프라그미페디움 베세아
파피오페딜룸
심비디움
온시디움 파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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