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음악, 이라는 말로 시작해
클래식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며
한 음악커뮤니티 회원이 추천한 책이었다
배수아는 꽤 오래 전부터 귀에 익은 작가이자
독일어권 문학의 왕성한 번역가로 알고 있다
반갑게도 나와 같은 65년생이다
65년생 뱀띠로 내가 아는 유명한 사람은
농구선수 허재, 그리고 근래에 매료된
토트넘의 새 감독 안제 포스테코글루 정도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작가의 근작은 아닌 것 같았다
소설인 듯 산문인 듯 플롯 밖에서 사고하며
문장의 해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내 관심사인 음악이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읽기와 쓰기처럼, 걷기나 호흡하기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생활 세계에 밀착된 유의미한 콘텐츠로 다루어져 좋았다
소설 화자(와 잘 구분되지 않는 작가)는 각성된 음악애호가이며
그의 연인 m은 한 술 더 떠 음악에 영혼이 미친 자여서
그들에게 음악은 숨 쉬는 공기이고 일상적 주제이다
여기 나온 음악 작품들에 주목, 약간의 추론과 탐색을 거쳐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들어보았다
성탄절에서 시작해 1월말까지 이어지는 이 소설의 계절감과
겨울 베를린의 스산함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작품들이다
소설 화자가 바흐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먼저 좋아하게 되었다는,
그 말이 살짝 속물처럼 느껴져서일까, 나 역시 매우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의 봉헌(헌정)>은 제외했다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작품번호 135
이 기회에 이 성악교향곡을 제대로 들어본다
베이스와 소프라노 독창에 소편성 오케스트라
1,2악장 가사 로르카
3~8악장 가사 아폴리네르
9악장 가사 퀴셀베커
10~11악장 가사 릴케
상떼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죄수의 노래는 7악장 베이스 음성
1969년 작품
죽은자의 노래
죽음의 전능함(을 인정하라)
-p.12 참조
* 쇼스타코비치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병원에 있으면서 완성한 쇼스타코비치 생애 마지막 작품
죽음에 대한 예감
쇼스타코비치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때때로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깊은 감정이란 우리 인생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화자가 반복해서 듣는다는 킴 카슈카시안 연주
-p.17, p.115 참조
* 슈베르트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트 폰 플라텐의 시에 곡을 붙인 두 곡 중 하나
겨울나그네의 전조
내 심장이 산산이 찢어지고 있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p.150 참조
* 베른트알로이스 치머만 <젊은 시인을 위한 레퀴엠>
치머만은 처음 들어본 현대 작곡가다
제목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 작품으로 추측된다
소설의 화자 혹은 배수아 작가가 소규모 연주회장에서 접한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어서 한참 검색을 하고
직접 들어보았다 충격적인 비관주의의 해일이었다
두 명의 화자와 소프라노 바리톤 솔로와 오케스트라
오르간 코러스 재즈밴드까지 동원된 현대음악
6악장 구성으로 히틀러 연설 및 대중음악 클립 등
20세기 역사의 주요 국면을 소환하는
청각 자료의 파편들과 불협화음의 콜라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과
비틀즈의 헤이주드가 들리고 6악장 도나 노비스 파쳄 도입부에
베토벤 교항곡 9번 4악장, 이어서 다시 헤이주드가 들린다
텍스트는, 내가 아는 경로 안에선 구할 수가 없는데
소설 화자 또는 배수아 작가에 따르면, 솔로몬의 설교서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인용된
세속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찬 내용이라 한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태양 아래서 일어나는 온갖 불의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나 어디에도 위안은 없으며 그들을 억압하는 힘이 너무나 강해 아무도 그들은 구원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욱 찬양한다. 그보다 아예 태어나지 않아 그 비참함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들을 더욱 찬양한다’
1969년 작품이라고 하니
위 쇼스타코비치 14번 교향곡과 같은 시기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 곡은 20세기 음악인데 좀 더 고전적이고
이 곡은 첨예하게 20세기적이라는 의미에서 좀 더 현대적이다
이 작품을 완성한 지 닷새 후 치머만은 자살했다
p.190~191 참조
서두의 ‘더 많은 음악’을
지속가능한 음악(듣기)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다
음악 대신 읽기, 쓰기를 대입해도 된다
더 많은 음악
더 많은 읽기
더 많은 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