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게시물 수 : 443, 6 / 30 페이지

이 름

김주향

제 목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지난날 내뱉은 말들을 거두어 들이고 싶은 경우가
왜 이리 많아질까.. 후회가 되고 민망하고..
이런 인지부조화를 남들은 어찌 이겨내고 사는지?
차라리 가만히나 있을 걸
푸치니 오페라 중엔 마담버터플라이가 최악이고
베르디 오페라 중엔 아이다가 제일 싫다고 했던 나는
이제 푸치니 오페라 중 마담버터플라이가 가장 아름답고
베르디 오페라 중 아이다야말로 걸작 반열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달여 아이다를 4종의 오디오 버전으로 반복해서 들었다
1) 카라얀 빈필 59년(테발디/시미오나토/베르곤지/맥닐)
2) 카라얀 빈필 79년(프레니/발차/카레라스/카푸칠리)
3) 솔티 로마극장오케스트라 61년(프라이스/고르/비커스/메릴)
4) 칼라스 51년 멕시코 실황(칼라스/도밍구에즈/델모나코/타데이)
이 가운데서 4)는 듣기 괴로운 녹음 상태 속에서도
미쳐 돌아가는 현장감, 칼라스의 존재감, 그리고
칼라스와 타데이의 숨막히는 3막 부녀 이중창으로 기억될 것 같고
최종 선호는 카라얀의 연주들로 모아진다
두 연주 모두 최고의 성악가들로 판을 짜 놓고
그 성악진을 오케스트라가 시종일관 테크니컬하게 압박하는
연주들인데 우열을 가릴 수 없게 좋다
59년 성악진의 밸런스가 조금 더 훌륭한 것 같다
테발디 시미오나토 베르곤지.. 그리고 카라얀
어릴 적 음악방송을 통해 얼마나 익숙한 명인들인지!
성인이 되면서 나는 20세기 클래식계에
제왕적으로 군림했던 카라얀에 대한 반발심에 오히려
의식적으로 그의 연주들을 배제하고 살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다시 카라얀이다 특히 오페라 종목에서
소위 결정반을 추구하는 길의 끝에 웬만하면 카라얀이 있다
무티도 아바도도 있지만 그 이전에
카라얀이 이루어 놓은 게 너무 많음에 놀란다

아이다를 집중적으로 듣고 이해하는 데
박종호씨의 해설들과 풍월당 아이다 대본이 도움을 주었다
박종호씨에 의하면 아이다의 참맛은
잘 알려진 이집트 스펙터클이나 이국 취향이 아니고
청아한 아이다나 개선행진곡 같은 히트넘버들도 아니고
사랑의 삼각관계 속에 고통 받는 주역 3인이
짝을 이루어 부르는 3개의 이중창에 있다고 한즉,
1) 아이다와 암네리스의 2막 1장 이중창
2)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3막 2장 이중창(4막 최후의 이중창이 아니라)
3)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4막 1장 이중창
이 세 곡이 압권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러하다
전 과정에서 팽팽한 극적 긴장을 이끌어가는 주역은 암네리스
오페라 아이다는 아이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로 암네리스 쇼여서 이 역을 맡는 메조소프라노의 활약이
늘 기대된다 이들 조합 말고도 2막 2장에 등판하여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3막 1장에서 조국을 위해
라다메스에게서 이집트군의 공격루트를 알아내라고
딸인 아이다를 몰아붙이는 아버지 아모나스로 역의
베르디바리톤이 내뿜는 압도적 카리스마 또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아름다움과 박력도 대단해 도무지 거를 타선이 없다
주요인물 다섯 명이 돌림노래풍으로 앙상블을 이루며
합창과 어우러지는 1막 1장 출정 장면의 호전적 분위기,
1막 2장의 다소 늘어진다 싶은 신전 의식 후반부에
제사장 람피스의 베이스 음성이 주도하는 혼성합창과
장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고조,
2막 2장 개선 장면에 이어 아이다 암네리스 라다메스
이집트왕 람피스 아모나스로 6인6색의 심정 변화를
치밀하게 견인하며 이집트백성들 신관들 에티오피아포로들
세 파트의 합창으로 구축되는 피날레의 웅장함엔 숨이 멎는다
물론 오페라의 클라이막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모든 오페라가 그렇듯 아이다의 정수도 실내극의 긴장 속에 있다
아이다의 절정은 3막 2장에서 4막1장까지이고
이 부분의 음악적 흐름과 비관적 정서는 5년 앞서 나온
바그너의 트리스탄 2막 후반부에서 3막 전반부까지와
너무나 비슷해 소름 끼친다 라이트모티프라 해도 될
주제적 악상의 반복도 바그너를 환기하는데 이로 인해 작품이
매우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3막 2장 엔딩의 폭발적인,
4막 1장 엔딩의 광기 어린 착란성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전율 그 자체

아이다는 베르디 나이 58세 때 작품이다 대략 지금 내 나이였다
<음악의 기쁨>에서 베르디의 초기작은 그의 기질을 보여주며
후기작은 정신력을 보여준다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이 작품은 후기의 초입쯤 되려나.. 그렇다면
기질과 정신력이 크로스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창 사는 게 바빴을 적엔 아리아 몇 소절 제외하면
이내 소음으로 전락하곤 했던 오페라가
이제 손 안에 귀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탄생부터 인간(감정)의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정신과 관련되었던,
이 지극히 감정소모적인 장르를 소화하기 위해선
반드시 시간적 여유와 권태가 필요하다 즉 하루키가 말한,
오페라라는 사치, 혹은 ‘비일상성으로의 매몰’이 가능하려면
일상에서 음악을 향해 열어두는 마음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현재 나의 인생 국면은 음악생활의 호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각별히 공 들인 이 감상문을 마무리하며
정리용으로 49년 토스카니니 콘서트 영상을 보려 한다


368	비오는 날 쇼팽 플레이리스트	김주향	2022/10/03	59

367	임윤찬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2번의 비밀	김주향	2022/09/25	61

366	최근 스트리밍으로 본 임윤찬 공연	김주향	2022/09/25	60

365	단테의 신곡과 단테 신곡 강의 후기	김주향	2022/08/31	64

364	꿀벌과 천둥 및	김주향	2022/08/10	64

363	임윤찬의 추가 레퍼토리	김주향	2022/07/30	73

362	파질 세이 첼로 소나타 4개의 도시	김주향	2022/07/19	62

361	단테의 신곡을	김주향	2022/07/02	75

360	임윤찬	김주향	2022/06/23	76

359	[re] 임윤찬	김주향	2022/06/25	71

358	안재욱의 포레버	김주향	2022/06/13	74

357	쇼팽의 뱃노래	김주향	2022/04/29	62

356	풍월한담 쇼팽 특집 후기	김주향	2022/04/23	73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김주향	2022/04/09	72

354	3월과 4월의 양식들	김주향	2022/03/26	79


[1][2][3][4][5] 6 [7][8][9][10]..[3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