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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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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re] 사데크 헤다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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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한 대목
p.61~63
내 인생 전체를 포도처럼 짜서 그 즙을, 아니 그 포도주를, 성수와도 같은 그것을 한 방울 한 방울, 내 그림자의 메마른 목구명 안으로 떨어뜨리고 싶다. 이 삶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에 나는 그동안 마치 나병처럼, 마치 종양처럼, 조금씩 내 영혼을 파먹어 들어가던 고통을 종이에 옮겨놓고 싶다. 그것만이 어느 정도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쓰는 것이 유언장이란 말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나는 판사가 차지해버릴 만한 재산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악마가 집어 가버릴 만한 믿음도 없다. 그것을 제외한다면 나의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사람들이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미 사실상 오래전부터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생명을 소진해버렸다. 그것을 내 손에서 떠나보냈고, 그러기를 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따위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종이 쪼가리의 글을 누군가 읽게 되거나, 아니면 영원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묻혀버리고 말거나,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단지 글을 써야만 한다는 다급하고도 무조건적인 충동이 나를 움직일 뿐이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나의 분신인 그림자에게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불운하고도 불운한 그 존재, 램프 불빛을 받으며 벽 속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는 내가 쓰는 글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읽어버리고, 마침내는 집어삼키고 있는 그림자. 아마도 그림자는 모든 내막을 나 자신보다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리라. 오직 그를 향해서만,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려고 한다. 오직 그만이 나를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존재이다. 오직 그만이 내 생각의 뒤를 따라올 수 있으며, 오직 그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즙을, 아니 내 인생의 쓰디쓴 포도주를 한 방울 한 방울 그의 메마른 목구멍 안으로 흘려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삶이다!”라고.
어제 나를 보았던 사람들은, 다 죽어가는 허약하고 병든 젊은이를 본 것이다. 하지만 오늘 사람들은, 늙어빠진 곱사등이 노인을 보게 될 것이다. 머리는 허옇게 세었고, 충혈된 눈꺼풀은 축 처졌으며, 언청이 입술의 노인, 나는 창밖을 내다보기가 두렵다. 혹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쳐보기가 두렵다. 어디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내 그림자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벽 속의 그림자에게 내 이야기를 반드시 들려주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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