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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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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로베르트 발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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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발저 작품을 번역한 배수아 작가의 이 외침을
나도 따라하고 싶다
내가 처음 읽은 발저의 작품은
김영민 교수가 어느 매체에서 추천한
장편 <벤야멘타 하인학교>였다
원제는 야콥 폰 군텐
세상만사 못마땅한
골수까지 심사가 뒤틀리고 꼬인 캐릭터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교육에 의한 모범시민양성 이데올로기와 교양주의에 대한,
그것을 표상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경멸과 신랄한 비꼬기..
이에 상응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투입되는 원한맺힌 자조..
이것들이 이루어내는 전복성
충격으로 그저 말문이 막혔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발저 작품집 <산책자>
발저에 대한 비평문 두 개를 함께 읽었다
구구절절 작가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넘치는
그 자체가 또한 문학인 감동적인 비평문들이었다
읽으면서 공감한 대목들을 끌어와 본다
하나는 위 책 <산책자>의 번역자 배수아 작가가 쓴 옮긴이의 말
제목은 to be small and to stay small
여기서 옮긴이는 발저의 텍스트가
자신의 궁극의 지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대본 없는 낭송, 즉흥의 산책을 이어가는 듯하다고 말하며
아무도 그 규칙을 파악하지 못하는 발저Walser의 스텝을
한 박자 한 박자 따라가는 이 번역이 믿기 힘들만큼 기묘했고,
광적일 만큼 현란하게 아이러니하고,
달빛 비치는 차가운 밤이면 내면의 황야를 홀로 가로지르는
고독한 왈츠Walzer였다고 환희로 고백한다
배수아씨는 지금도 <툰의 클라이스트>, <헬블링 이야기>, <원숭이> 등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하며 <산책>의 문장들을 접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감탄과 충격의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무대에서 관객에게 즉석에서 말을 걸면서,
그 말을 글로 쓰고 있는, 그러므로 작가 자신도
다음 문장의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미리 계산하고 있지 않다는
우아하고 유쾌한 자포자기의 즉흥 댄스와도 같았고
그것은 마지막까지 성공한다고 말한다
발저의 작품은 또한 참으로 아름답고 황량하며,
어떨 때는 이빨을 드러낸 듯하고,
방치되고 산만한 언어, 끝을 모르는 풍자와 비꼼,
이 모든 것을 이끄는 무의미함과 무의도성,
그리도 마침내는 인과성과 연속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돌연하고 뜻밖인 결말들..
그래서 옮긴이는 외친다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되었다..
발저에겐 또한 태연을 가장한, 뼛속 깊이 스며드는 시니컬함이 있었다.. 고
또 하나의 비평문은 W.G. 제발트의 글이다
그의 비평적 산문집 <전원에 머문 날들> 가운데
고독한 산책자_로베르트 발저를 기억하며
이 글에 따르면 발저는 생애 내내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며
그에 동반될 신분 하락의 수치스러움에 대해 두려워했던,
이 세상의 고립된 작가들 중에서 가장 고립된 작가였다
발저는 세계 몰락을 예언하는 표현주의적인 선지자가 아니라
‘미미한 사물 전문 투시자’로서
최대한 극단적인 세밀화와 축약도를 추구했고,
하나의 이야기를 망설임 없는 단 한 번의 도움닫기로 만들어내는
도약 속에 띄워보려 했으며
그가 구사한 언어의 특징들이 고급문화 계층에서는
난센스 문학이나 정신분열적 언어장애의 징후를 보여주는
언어의 잡탕을 떠올리게 하고 작가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진정한 독자들은
발저 특유의 독특하게 미친 표현들을 보고 싶어했다고 한다
또한 발저가 이룬 성취는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언제나 예감하기만 했지
호프만 제외 그 누구도 시 쓰기에서 실현한 바 없는
아이러니를 완성했다고 한다
사후에도 계속되는 발저의 불안정한 실존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헛헛한 바람은 마치 허깨비처럼 불어와
그가 쓴 규정 불가능한 글의 성격과 더불어
해석자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아연하게 만든다고 하며
발저의 작품이 아무리 박사학위 논문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해도
어떤 체계적인 분석으로도 포착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토록 그늘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펼치는 페이지마다 더없이 다정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글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순수한 절망에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항상 같은 이야기를 쓰지만 절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며
미세한 부분에서 예리함을 발휘하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지상에 확고하게 발을 디디고 있지만
공중에서 주저 없이 자신을 놓아버리는 그런 작가,
읽는 도중에 벌써 해체되기 시작해 몇 시간 뒤에는
글 속의 하루살이 같은 인물과 사건, 사물 들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는 산문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상의 대목들에서 나는 눈물을 쏟았다
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그토록 많은 것을 보았으나
그토록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말이 없음이여
-로베르트 발저(1878~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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