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를 보며 얻은 소득은 빅토르 위고의 원작이 가진 위대한 주제에 비로소 조금은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라고 배운 자유 평등 박애 중에서 언제나 잡히지 않아 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던 '박애'가 무엇인지를 이 작품은 당당히 알려준다. 압제에서 벗어나고 빵을 얻으면 뭐하나 평화가 없다면 평화를 위한 통합이 없다면 통합을 위한 연민과 자기희생이 없다면, 즉 사랑이 없다면. 장발장은 미천한 창녀의 딸을 거두어 돌보며 귀족 출신의 젊은 혁명가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하여 결혼으로 결합시킨다. 그럼으로써 그는 계급을(또한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를) 아우르는 지극히 넓은 사랑을 실천하였고 그러한 행위가.. 나이좀 먹으며 세상을 겪다보니 사무치게 깨닫는 바, 실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기적에 비견할 불가능에 가까운 행위더라는 점에서 한없이 깊은 사랑을 실천하였다. 다시 말해 장발장은 곧 박애였고 박애는 곧 장발장이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파괴적인 혁명의 가치가 아닌가. 그렇다면 자베르는 무엇인가. 박애의 화신인 장발장이 시장이자 공장주로 성공한 신흥부르주아이니 당연히 자베르는 집요하게 장발장과 대결하다 스스로 자멸하는 앙시엥 레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적인 캐릭터 장발장을 보며 나는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류블로프]에서 희랍인 멘토 데오파네스가 아이콘화가이자 수도자인 안드레이 류블로프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의 고뇌와 신의 용서 사이에서 살라.
* 위의 소감과 별도로 순수하게 '영화'로서의 [레 미제라블]은 내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울었지만.. 뭘 봐도 걸핏하면 눈물이 핑 도는 요새, 그나마도 울다 하품하다 울다 졸다 울다 딴생각하다 하는 텍스트에 대한 산만하고 아방가르드한 반응패턴을 되돌아 보때, 내 이 울음을 도대체 신뢰할 수가 없다. 예술품의 미적 체험과 그 물증으로서의 울음 간에 작동하는 감정조작의 메카니즘을 의식하는 한, 이것이 나를 거북하게 하는 한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클로즈업된 배우의 노래와 절규가 자극해 낸 울음보다, 어제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연기를 보며 북받쳐 오르던 감정과 울음이 나 스스로 더 편안하다. 아마도 편안한 쪽이 더 나의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