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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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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알랭 레네의 영화 두 편_200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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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레네의 영화 두 편
[시벨의 일요일]이
그러그러한 연유로 가련하게 폐기되었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영화'가 전면 부정될 수는 없다.
참된 프랑스 영화의 정수는,
이를테면 누벨바그 영화들에서 확인된다.
누벨바그 영화들을 가리켜 누군가는
카메라로 쓴 영화비평, 이라고 했다.
과연.. 지금까지도 세계 각지 시네마테크의
상영목록 태반을 채우고 있는 이 계열의 작품들만큼,
'젊은' 영화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젊은 영화란 무엇일까.
영화에 대한 부단한 질문들과 자기부정의 정신이
바로 그 영화 속에 녹아있는 영화들 아닌가.
[히로시마 내 사랑]과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지난 해 스크린으로 감상한 바 있는 알랭 레네의 이 두 작품은..
내가 알기로.. 누벨바그 영화 라인에 속해 있다..
누벨바그 계보의 핵심은 아니더라도..
누벨바그 사촌이나 숙부쯤은 될 것이다.
이름값에 짓눌릴 필요 없이 놀랍게도 두 작품 모두
'지금의 우리'에게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닳고 닳은 우리 감각의, 또는 우리 대뇌의 어떤 낯선 영토 속으로..
스며오던 그, 온전히 생소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꿈과 의식 사이의 절묘한 중간계.
어쩌면 이 두 작품들은 지금보다 당대에
더 욕 먹었을지 모를 영화들이다. 고상한 척 잘난 척한다고.
아닌 게 아니라.. 오래 전 읽은 조르주 페렉의 소설 속에
재미난 대목이 있었다. 60년대 프랑스 젊은이들의 풍속도가
사회학적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던 그 매력적인 소설 <사물들>에서
주인공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20대 커플이었으며..
말하나마나 영화광이었는데.. 어느 대목에
그들의 영화 취향이 서술되고 있었다.
곧, 그들은 소위 진지하다고 불리우는 영화들에 대한
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마리앙바드]를 보고 난 후
빌어먹을! 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어쨌든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레네의 이 영화들이
대체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고도 하고
흔한 각본대로, 감상자들이 그 모양으로 헤매는 와중에
비평가들은 이 작품들에 대한 이런저런 형이상학적 평문들을
꾸준히 생산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심플한 각도에서.. 이 작품들이
태만한 감상 자세를 가지고도 능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작품들임을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서사 위주의 영화들이 퇴조하고
이미지가 서사를 대체해 가는 것으로 보이는 이즈음
고급저급 막론한 온갖 이미지에 단련된 우리는,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나
뮤직비디오 감수성만으로도 레네의 작품을 감상해 낼 수 있다!
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이겠고.. 뭐랄까,
파노라마식 감상 태도만으로 충분히 영화의 심장에 접근할 수 있으며
여기에 시적 리리시즘만 적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로
매우 감동적인 영화 이해에 다다를 수 있다, 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들은..
쇄도하는 이미지들에 지친, 현대의 영화 구도자에게
전혀 새로운 비전을 펼쳐주고,
우리가 그토록 갈망해 마지 않던 대안적 이미지의 대륙으로
손붙잡고 이끄는.. 그런 종류의.. 여신같은,
우아한 여신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내 사랑]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 건축가 사이의 감정의 심연..
나른한 정사와, 전후 일본 사회의 풍경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독특한 긴장, 그 불협화음, 그 질감..
히로시마의 밤은 계속되나요?/영원히! 와 같은 대사들..
히로시마의 밤과, 파리의 거리, 여인의 고향 느베르,
이 세 개의 시공간이 섞이고 중첩되는 방식..
이런 것들이 자아내는 모호한 매력에
항거할 필요를 못 느꼈다.
[히로시마 내 사랑]보다.. [마리앙바드]는 더 좋았다.
영화의 어법과 조직에 대한 탐구가 더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그 결과는 전자보다 순결하며.. 잘 숙성되어 구워진 빵처럼,
그 잔상은 풍미가 깊을 뿐 아니라 오래 간다..
마치 기억의 미로를 더듬어 나가듯
대저택의 복도와 방들의 인테리어를 산책하듯 훑어나가는 카메라..
그 렌즈에 포착된 피사체들의 덧없고 정물적인 이미지..
영상을 타고 최면술처럼 반복되는 시적 언어들..
프랑스풍 정원의 기하학적 구도와 조형물들,
그 두렵고 신비한 석상들, 그 프로필, 그 앵글,
그 광선, 그 어스름, 그 명암의 미세한 스펙트럼..
태고적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머물러 있는 주인공들..
암호와 같은 독백.. 시간을 빨아들이는 공간, 공간들.
페스추리빵의 켜켜에 발린 얇은 버터층처럼,
이미지들이 소리없이 부드럽게 차곡차곡 쌓여 갔다.
중간 어디서부터 봐도 상관 없으며.. 또한 중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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