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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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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05 로마 제4일-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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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저러나 로마에 대한 현재까지 저의 이 바람직한 기분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결정적으로 궂은 일을 안 당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소매치기라도 한번 당했으면 폐허가 어떠니 분수가 어떠니
하늘이 어떠니 이따위 팔자늘어진 말이 입에서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단체 투어는 고 정도선에서 끝낸 것이 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언제나 반갑지만
너무 오래 같이 다니면 꼭 기분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닌 듯해요.
서로가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먼저 눈인사라도 하면 밑지는 기분인지
약간 얄미운 표정으로 서먹서먹해하다가 대략 점심 밥 같이 먹으면서 말문 트고
유럽 어디어디 갔다가 여기 로마로 왔는지, 여기 며칠 있을지,
다음 행선지는 어딘지 등을 물으며 여행 경험을 공유하다가
해질녘쯤 아쉽다 싶을 때 헤어지는, 딱 하루 정도의 인연이 적당한 거 같아요.
그 시간대를 넘으면.. 혼자 오셨어요? 혹시 결혼은 하셨어요?
어머 남편하구 애는 어쩌구? 민박 안하고 호텔에 있다구요?
돈 많이 들 텐데.. 돈 많은가부다.. 이런 대화로 흘러갈 확률이 아주 높아지죠.
이런 사람들 싫어요, 저.
가뜩이나 유부녀로서 애엄마로서의 자각이 부족한 난데
그런 얘기를 면전에서 들으면 화나잖아요. 돈 문제는 뭐,
한 푼 보태주지도 않았으면서 싸다 비싸다 하는 그 눈길들이란..
하여튼 4일째부터는 로마에서의 자력갱생이었습니다.
그날은 가이드북에서 봐둔 분수들을 지도 보며 걸어서 순례하는 날이었어요.
예컨대 비아 델 코르소와 비아 트리토네를 거쳐 바르베리니 광장까지 가는 길이
지도상으로는 30분 거리인데 실제로는 한 나절이 걸리는,
왜 그런 천로역정 스타일의 발품 파는 순례를 말합니다.
하도 사람이 많아 부랴부랴 도망 나온 스페인 광장의 바르카차 분수부터 보도록 하죠.
바르베리니 광장에 있는 베르니니의 작품 트리토네 분수
베네토 거리 입구의 아비 분수
좁은 교차로의 사각 모퉁이 건물에 붙어있는 4개의 분수(콰트로 폰타네)
야해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던 레푸블리카 광장의 분수.
벌거벗은 님프와 주변 상황이 얼마나 야한지 그럼,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실까요.
아니, 이렇게 음란해도 되는 건지.. 그것도 십자가 앞에서 망칙하게
저 십자가가 있는 성당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바실리카인데
유적 자체를 오브제로 사용했나 봅니다.. 거기에 횡단보도가 곧장 이어지고 있는
도시 구조.. 이런 게 참 좋았어요. 경주가 이와 비슷하죠..
음, 이렇듯 남의 것을 보면서 틈틈이 우리 것을 연상해 줘야하는 이유는..
이래봬도 국가와 민족을 잊지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야야 그렇게 좋으면 아예 가서 살아라 살아.. 이러실까 봐 쫄아서.. ^_^
제일 유명한 트레비 분수를 빼먹었는데..
해신 넵튠과 트리톤의 웅혼한 박력이 돋보이는, 소문대로 근사한 분수였습니다.
이왕이면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에서 아니타 에크버그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난리부르스 끝에 그 분수 앞에서 맞은
몽롱한 새벽, 그런 시간대를 경험할 수 있다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그러긴커녕 하도 사람이 많아 사진 찍을 겨를도 없었어요.
분수 순례 사이사이로 틈틈이 교회에 들어가 그림과 조각들을 보았습니다.
교회 이름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리고 이를테면
교회1에서 카라바지오의 성 마태 3부작을,
교회2에서 미켈란젤로의 십자가를 진 예수상을,
교회3에서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을,
다시 말해 살아가는 데 그다지 실익은 없는,
주로 내 삶의 장식적 경험일 뿐인 그런 작품보기였습니다.
하긴..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러하군요, 실익은 없는 장식적 경험.
그것이 너무 황홀해서 문제지만. 결국 그게 실익일까요..
많이 걷고 지쳐서 이날은 오후 세 시 경 집에 돌아와서 좀 쉬었어요.
그리고 해가 지고나서.. 서울에서 떠나기 전에 조사해 갔던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해 빌라 첼리몬타나라는 공원에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http://www.villacelimontanajazz.com/agosto.htm
그날 프로그램은 마씨모 다볼라라는 시실리 출신 재즈 뮤지션이 이끄는
콰르텟인지 퀸텟인지의 한밤의 야외무대였는데
짐작하다시피 그런 곳에 버스 타고 오는 인간은 별로 없더군요.
저는 남보다 조금 일찍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12시면 버스가 끊기거든요.
조금 무서운 밤이었습니다만.. 나흘째인 그때까지도 여행지에서 다반사로 겪는
전면적인 패닉 상황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라르고 아르젠티나에서 내려 무사히 호텔로 걸어들어왔습니다.
첫 번째 패닉은 다음 날 찾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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