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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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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Provence Fever_옛 여행기_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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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프로방스 열기에 사로잡혀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보며..
볼 때마다 내 여행 욕구를 원초적으로 건드리곤 하는 나만의 클래식,
안토니오니-빔 벤더스의 1995년작 [구름 저편에] 디비디를 또 꺼내어 보았다
이 영화 속 네 편의 이야기 배경이 되고 있는
페라라와 포르토피노와 파리와 엑상프로방스를 나는 이제 눈 감고도 그린다
하이텔 시절, 요란했던 1999년 한여름 프랑스 여행기 중
프로방스 관련 부분을 발췌해 본다
'다른 곳에 살리라'라는 제목의 글들은 떠나기 전,
'에필로그'는 다녀온 후의 기록이다
나는 그때 참으로 용감하고 열정적이었구나..
다른 곳에 가서 살리라 3 - 1999. 6. 21 -
여행에 영감이 되어줄 영화들을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다. 프랑스산
이었거나 프랑스가 배경이었다고 기억되는 영화, 불어로 말해지는 영
화들로서 대개가 다시 보는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 아아, [구름 저 편
에]를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안토니오니가 늙고 병들어 빔 벤더
스의 도움으로 완성한 바로 그 영화. 내가 꿈꾸는 유럽 여행은 더함
도 덜함도 없이 이 영화 속의 풍경, 이 영화 속의 정서와 일치한다.
처음 [구름 저 편에]를 봤을 때 존 말코비치, 소피 마르소, 피터 웰
러, 화니 아르당, 장 르노, 뱅상 페레, 이렌느 야곱, 잔느 모로, 마르첼
로 마스트로얀니와 같은 호화로운 연기진들과 그들이 이룬 순서쌍들
에 눈길을 빼앗겼었다. 그러나 이번엔 이 화려한 배우들을 침몰시키
고 있는 도시를 본다. 페라라, 포르토피노, 파리, 엑상프로방스, 이들
도시 안에서 배우들은 서서히 용해되어 간다. 물거품이 되어 허공 중
에 사라지고 만다.
안토니오니는 촬영에 있어서 언제나 로케를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
다고 한다. [정사]에서의 그 황량한 섬을 기억하는지. 그 영화의 주인
공은 말없이 사라진 여인도, 그녀를 찾는 약혼자도, 그녀의 친구도,
여인의 실종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피서객들도 아닌, 바로 그 섬이었
다.
사실 [구름 저 편에]의 배경이 되고 있는 네 개의 도시 중에서 각
별히 내 마음을 뒤흔든 곳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그려진
이탈리아의 도시들이다. 이 도시들은 우울하다, 치명적으로 우울하다.
이런 종류의 우울함에 접하고 있으면 매혹 반, 겉멋 반인, 그래서 엄
살 떨며 그런 대로 즐길만한 우리의 우울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
다. 늦가을 청회색의 페라라, 소실점에 이르도록 뻗어있는 길과 길 옆
회랑의 궁륭들이 만들어내는 무섭도록 멀고 아득한 화면의 심도. 그
어느 모퉁이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난들, 세월이 흘러 우연히
재회한들 그들 마음의 거리는 화면만큼이나 멀고 아득하다.
이어서 두 번째 에피소드로 넘어가기 전의 인터메쪼. 황량한 해변
에 존 말코비치가 그네에 앉아 있다. 그는 휴양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본다. 유투의 음악이 아련히 들려온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은 포르토피노이다. 언젠가 이영수님의 소
설에서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묘사된 장소이던가. 난 이곳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여행책자를 들춰 보았다. 동리비에라로 불리우는 지중
해변의 자그마한 어촌이었다. 요새 와서 유럽 각국의 백만장자들이
몰려와 별장 짓고 요트 타는, 떠오르는 이탈리아 휴양지라지만 아직
때가 덜 탄 곳인가 보다. 여기 그려진 해안도시의 그 형언하기 어려
운 고품격이란!
어느 저택에서 뛰쳐나와 황망히 젖은 골목길을 돌아내려 가던 젊은
여인,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해변의 부띠끄였다. 고기잡이배나 정박해
있을 법한 비릿한 선착장에 아르마니 매장이라니. 나지막히 자리잡은
검박한 가게의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소피 마르소와 존 말코비치의
눈길이 강렬하고도 불안하게 얽히던 장면, 그 아침의 이상한 색조와
공기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열두 번 찔러 죽였다는
젊은 여인의 공격적인 고백과 자폐적인 몸짓은 이 적막한 장소와 어
우러져 낯설고 아름다운 대위법을 창조한다.
그러나 나는 이상의 두 도시로부터, 그 치명적인 우울의 늪으로부
터 속히 벗어나야만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이탈리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이탈리아를 감당할 수 없다. 그 지역
은 충분히 숨을 고른 연후에 찾아갈 예정이다. 자, 이탈리아를 잠시
맛본 걸로 하자. 식사 전에 마시는 아페리티프쯤으로 해두자. 그러나
이 맛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식사의 정찬이라 할 프랑
스 여행의 코스는 이렇게 짜여질 수 있다. 프랑스의 심장인 파리에서
부터, 프랑스/이탈리아 경계인 프로방스와 코트다쥐르 지역까지 이어
지는 루트.
여기서 나는 편의상 남불의 중심지인 마르세유에 방점을 찍겠다.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수직의 선분이 그어진다. 니스도 괜찮겠지만
그곳의 고급스런 해안보다 마르세유의 번잡한 해안에 더 이끌린다.
뭐랄까, 여기엔 생활의 소음들이 존재할 것만 같다. 이프 섬을 바로
앞에 둔 마르세유의 구항. 아프리카의 관문, 들뜬 태양. 어느 해 여름,
남해로 가는 도선을 기다리며 먼 바다를 내다보던, 생선 냄새 비릿한
삼천포항과 그곳은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를까.
숙소에 짐을 풀고 그 저녁엔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부야베스를
먹을지 모른다. 어둠이 내릴 것이다. 지치도록 항구를 돌다가 숙소에
돌아와 잠이 들 것이다. 나의 상상 속에 그 바다는 침묵하는 바다이
다. 파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밤. 아늑한 지중해의 품에 안겨, 아
프리카의 꿈을 꾸는 밤.
한여름, 유럽의 피서객들로 북적댈 니스의 해안은 그럼에도 불구하
고 아름다운 청남색으로 출렁일 것이다. 그 바다색을 보고 싶다면 마
르세유에서 하루쯤 시간을 내어 다녀올까 한다. 니스의 바다와 함께
도시 중앙의 근현대 미술관에 걸려있을 위브 끌랭의 울트라블루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만 하면 니스에서 할 일은 끝이다. 그 유명하다는 나
체 해수욕장에도 구경가고 싶어질까. 글쎄, 지금은 아니다. 내 본위의
여행 계획, 이라기보다는 여행 판타지에 온 정력을 탕진하고 있는 나
머지, 벗은 몸들의 잔치에 호기심이 전혀, 전혀 생기지 않는다.
니스까지는 마르세유에서 세 시간이면 족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현지 사정이 나의 소망과 각본에 호응해 줄 것인가. 이를테면 마르세
유에서 니스까지 가는 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열차일 것인가.
영어도 자신없고 불어는 더더욱 못하는 내가 이놈의 열차를 시간 맞
춰 탈 수 있을 것인가. 역은 어디며 티켓은 어찌 끊을 것인가. 마르세
유는 파리가 아니다. 배낭족도 드물고 아랍인들 득실거리는 저 낯선
항구에서..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하물며 니스 근교에 있다는 르느와르의 집에 다녀올 수 있을까. 나
는 르느와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 펼쳐져 있다는 올리브밭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버스를 대체 어디서 타야 한단
말인가. 몸짓 발짓으로 물어보면 누가 가르쳐 줄래나. 재수없게 오지
로 빠져 국제 미아가 될래나.. 여행에서의 각종 이동과 먹고 자고 싸
는 제반 문제들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에라, 이런
생각은 밀어두기로 한다. 용감해지자. 용감은 꿈꾸는 여행자의 특권이
다.
마르세유에서 지내며 반드시 가보리라 다짐하는 곳이 하나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 깊이 꿈꾸어 오던, 엑상프로방스이다. 공교롭게도,
[구름 저 편에]의 나머지 에피소드의 배경이 나의 남불 여행 루트와
일치하고 있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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