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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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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북쪽거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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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배수아 책 4권의 후기이다
2000년대 중후반 작품들인
<북쪽거실>(2009)
<올빼미의 없음>(2010)
<서울의 낮은 언덕들>(2011)
여기에 더해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2016)을 읽었다
읽은 순서대로 <북쪽거실>부터
1장 목소리의 내부
2장 목소리의 콜라주
3장 목소리의 유령
4장 북쪽 거실에서 온 여인
배수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자주 접한
낭송극 전문배우 또는 오디오북 성우가 나오며
배경으로 그 직업 세계가 스케치된다
주인공인 낭송극 전문배우의 이름은 수니이고
그녀가 선호하는 낭송 텍스트 장르는 긴 호흡을 가진 산문시이다
서사 중심의 본격소설과 극도의 언어압축인 시의 중간 장르
이것은 배수아 문체의 시그니처가 되는 호흡법과 리듬이기도 하다
수니 말고도
간호사인 순이, 그리고
수용소의 ‘그 남자’에 의해 불리는 이름인 수알란이 있다
수니 순이 수알란
이들 셋은 동일인의 쪼개진 정체성일까
(배)수아의 분열된 세포일까
북쪽 거실에서 온 울부짖는 a여인은 또 누구인지..
이전에 읽은 배수아 작품에서도
시간차가 있는 동시대적 존재들로 중첩된다든가
간혹 선대의 여인이나 사후 자아 등과도 중첩되는
여성 주인공의 정체성 분열이 자주 다루어졌었다
이것이 독자에게 안겨주는 어지럽고 황홀한 착란을
이 작품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타난
카프카의 꿈의 모티프가 강력하게 지배하는 소설로
3장 후반부 희태인 듯한 ‘나’가
수니의 환각의 일루전, 혹은 수알란의 꿈속에 들어간 장면과
마무리까지 긴장감을 끌고 가는 4장의 흡인력이 백미이다
독서 기념으로
2장에 나온 린의 국어선생이 설파하는 문학론을 옮겨 본다
린은 희태의 여인들 중 하나인 대학원생으로
학창 시절 국어선생의 이 꿈의 문학론, 환상 문학론에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린은 작품의 주요인물도 아니고
린의 기억 속에 잠깐 등장한 이 국어선생이라는 작자 또한
사춘기 여학생의 감수성을 볼모로 멘토연하던
우리 시절 음침한 중년 남교사를 떠올리게 하는,
허풍스럽고 미덥지 않은 캐릭터이지만
이 과장된 웅변에서 배수아의 작품 세계에 면면히 흐르는 철학이랄까
문학관의 베이스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았다
p.116~120
이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아직 린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린이 될 것이다. 꿈속에서 그 소리를 듣는 린.
꿈에서 깨어난 린은 당장 꿈 내용을 정리하여 국어 교사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앞으로 꿈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니 꿈을 꾸지 않는다면 삶은 벽에 갇힌 수용소나 다름없을 거야. 감시병은 없지만 달아날 수도 없다는 기분 나쁜 소문의 그곳. 현대의 질병 자체라는 악명의 그곳. 꿈의 내용을 글로 정리할 충분한 언어와 문장이 없다면, 그건 어떤 유형의 인간에게는 질병일 뿐 아니라 혹독한 형벌이나 마찬가지지. 그 언어나 문장이 형체나 소리가 없는 꿈의 장면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수많은 내용이 서로 중첩된 꿈의 고통과 색채와 떨림을 현실에서 다시 불러일으키며 꿈을 지배하는 그리움, 다른 해안에 대한 그리움의 성질과 증상을 증폭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예술적으로 문명화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리하여 언어를 통해 살아난 꿈의 그것들을 현실로 투입하여, 마침내 현실을 꿈으로 채색하고 현실이 꿈을 통해 호흡하도록 만들 수가 없다면. 그리하여 잠들지 않고도 꿈을 바라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으며, 마침내 잠 없이도 꿈의 상태에 머무는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어떤 유형의 인간에게는 혀와 눈이 있더라도 혀와 눈을 뽑힌 것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 꿈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지로 보낼 하나의 주소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결코 산다고 할 수 없다. 오직 숨 쉬고 있는 살갗의 몸통일 뿐. 오직 욕망을 알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눈먼 육체일 뿐, 어떤 유형의 인간에게는.
린의 국어 교사. 당시에 이미 50이 넘었고 1미터 60이 채 되지 않는 왜소하고 작은 체구에 염소수염을 기른 골초. 오직 화려한 수사와 달변으로 어린 소녀들을 휘어잡는 희열 하나로 살아가며 자기 체구의 두 배나 되는 아내와의 사이에 네 명의 아이를 낳은 남자. 린은 이미 예전처럼 그렇게 절실한 마음을 품고 그를 흠모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떤 구절, 어떤 장면, 어떤 상상이 떠오르거나 어떤 꿈을 꾸게 되면 거의 대부분 자세히 기록하여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환상을 가져라, 환상을 버리지 마라, 하고 그는 여학생들을 한 명씩 차례로 자신의 무릎에 깊숙이 당겨 앉히고는 귀에다 뜨겁게 속삭이곤 했다. 나의 소녀들, 나의 유일한 소녀들, 너희는 새벽의 꿈꾸는 나무가 되어라, 안개의 베일을 쓰고 숲 속을 산책하는 환상의 신부가 되어라, 환상 말고는, 그 어떤 남자와도 절대 결혼하지 말아라. 그러면, 내가 환상을 가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하고 린은 재떨이의 악취를 풍기는 그의 입을 향해 차분하게 물어보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핵심은 바로 네가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는 거지. 세상이 달라지든 달라지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환상은 잠시 동안만 나타났다가, 자기 마음대로 사라져버리곤 해요. 나도 어린아이가 아니라서, 이제는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세상의 주성분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요. 그 누구의 환상과도 모두 무관한 객관적 사물들로 이루어졌다는 것도요. 사람들이 제3의 사물이라 부르는 것의 집합이 바로 실제의 세상이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사실적 존재 방식은 여전히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내가 환상하는 방식이 곧 나의 실재, 내 세상의 실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에요. 나는 오직 환상을 사랑하고, 그것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시간이 흘러 나이와 이성이 나를 침범하여 나를 현실의 인간으로 만들어놓을지라도, 나는 지금의 이 환상과 헤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하고 린이 다시 물었다. 만일 네가 환상을 기록한다면, 네가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네가 꿈으로 꾸는 묘사 불가능한 것들을 기록한다면, 그런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네 언어를 만들어낸다면, 하루하루 네 꿈을 기록한 노트를 당나귀처럼 어디든 짊어지고 다닌다면, 너는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동시에 다른 모든 사물들과 안과 겉처럼 다를 수가 있지. 네 환상은 네가 기록하는 만큼 성장하고 우거질 것이며, 그래서 너만이 산책할 수 있는 검은 숲을 이루게 될 거야. 오, 나는 바란다. 네가 숲이 무엇인지 알기를...... 언젠가는 숲이 무엇인지, 그 속을 산책한다는 게 인간의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되기를 가슴속 깊이 바란다...... 그때가 되면 너는 지금의 내 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네 환상은 네가 기록하는 만큼의 육체를 갖게 되며, 네가 기록하는 만큼의 고유한 현실성을 얻게 된단다. 환상이야말로 여섯 번째 감각의 실체인 셈이지. 눈을 감고 상상해보아라, 안개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흰 나무들을, 그들의 시적인 흰 몸들을, 검은 흙과 찬란하게 너울대는 저 세계의 빛을. 무의식 속에서만 살고 있는 꿈은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고요하나, 그런 꿈을 꾼 다음, 정체불명의 매혹적인 우수와 생각에 잠긴 무거움이 네 피부 아래로 파고들어가 너의 내부에서 폭풍우 치며, 너를 근본부터 바꾸어놓을 테지. 그러면 너는 꿈의 성분으로 다시 태어나며, 네 안에서는 환상 나무가 자라날 거야. 주저 없이 가거라. 그토록 오랫동안 아무도 이름을 모르고 있었던 꿈속의 정원 파라다이스로. 너는 마침내 그 숲으로 홀로 달려갈 수가 있는 거야. 오직 너 홀로. 오직 그곳으로. 온몸과 환상으로. 그러니, 꿈을 꾸도록 노력해. 많은 꿈을, 더 많은 꿈을, 더욱더 많은 꿈을, 그리하여 꿈의 가로수 길이 네 생과 네 이름을 넘어서서 더 먼 세상까지 너를 이끌 수 있도록.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아라. 오직 그 길을 걸어. 빙하의 습지가 부드럽고도 거대하게 부풀어 죽음을 휩쓸고 간 평원을 덮어버리듯이, 그렇게 꿈이 너의 깨어 있음마저도 온전히 지배하도록 만들어! 절대로, 절대로 그 꿈에서 깨어나선 안 돼! 잊지 말아라, 삶의 목적어는 단연코 오직 꿈이라는 것을. 그러니 꿈을 살아! 꿈을 체험하고 꿈을 돌보도록 해! 그러기 위해서는, 기록해. 잊지 않도록, 깨어나지 않도록, 환상이 없는 현실로 가라앉지 않도록. 항상 이걸 생각해. 현실은 제짝을 잃어버린 쌍둥이 노인처럼 너를 붙잡아 자신과 똑같이 닮은 노예로 만들어버리려고 일생 동안 널 쫓아다닐 거라는 사실을. 그들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심술궂은지를 알아야 해. 그러니 네가 꿈꾸는 것을 기록하고, 그렇게 기록한 것을, 그것들만을 살아야 해. 언제까지나 꿈속에서 꿈꾸듯이, 그렇게만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린은 열두 살 때 이후 그 국어 교사만이 자신의 첫 남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다. 그게 아니라면 영원히 아무와도 자지 않으리라. 환상으로 건너가기 위한 단 하나의 정거장, 마지막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늙은 환승역의 플랫폼.
<북쪽거실>을 마친 후
이 작품에서 수니의 낭독 텍스트 중 하나로 언급되는
막스 프리쉬의 <몬타우크>를 디저트로 읽었다
제목의 몬타우크는,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나온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배경이던 그
대서양을 바라보는 미국 롱아일랜드의 해변 휴양지 몬타우크이다
<몬타우크>에서 막스 프리쉬의 나이 어린 연인의 이름이 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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